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항공기. 위키미디어 커먼스
‘인위적 인력감축 없는 항공산업 구조조정’
정부와 산업은행이 생사기로에 몰린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이 인수·통합하는 방식으로 국내 항공산업 재편의 큰 틀을 짜면서 내건 약속이다. 통상 대규모 인수·합병 이후엔 중복 부분을 통폐합해 조직을 효율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력감축을 동반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그런데 정부와 산은은 국내 1·2위 항공사를 통합한 단일 국적항공사 출범을 추진하면서도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과연 현실성 있는 방안일까?
정부와 산은은 우선 계약 당사자인 한진그룹의 ‘약속’을 내세운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 1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한진그룹의 확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칼 보유 지분을 담보로 잡고 이런 확약과 경영 악화 시 퇴진하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낸 만큼, 조 회장을 압박해 인력감축 없는 통합을 관철할 수 있다는 게 산은의 생각이다.
인력이나 항공편 재배치 등을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도 “여유 인력이 있겠지만 촘촘한 운항스케줄을 확보하고 미취항 노선을 개척하는 등 항공서비스 개선에 이들을 투입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같은 시간대 두 항공사 노선을 다른 시간대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정부와 산은의 이런 해법을 완전히 현실화하기엔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통합 이후 기존 아시아나항공의 모든 노선을 그대로 운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두 항공사가 운영하는 115개 노선중 48개 노선이 중복으로 운영되면서 일부 공급 과잉인 측면이 있어서다. 아시아나항공만 운항하는 노선은 14개에 그친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선 노선 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대한항공 관계자는 “노선을 유지해야 계속 보유할 수 있는 슬롯(시간당 운항 가능한 횟수)도 항공사 경쟁력이라, 수익성 때문에 쉽게 노선을 축소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 수요 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신규 노선 확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글로벌 항공 여객 수가 2024년은 돼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규 취항지 등을 개척하려면 수요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최소 1~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력 구조상 아시아나의 기존 노선이 모두 유지되지 않을 경우 일부 인원 감축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한국항공협회에 공개된 지난 3월 기준 국내 항공 종사자 인력 현황을 보면, 아시아나항공과 계열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3곳의 항공종사자(객실 승무원·조종사·항공정비사·운항관리사)는 총 8744명이다. 이 가운데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이 77%로 가장 많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이 5668명, 에어서울이 847명, 에어부산이 305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항공정비사와 운항관리사도 각각 1491명과 123명으로, 대한항공이 보유한 인원(항공정비사 2852명·운항관리사 155명)의 절반이 넘는다. 이들 인원은 아시아나 계열 비행기가 모두 운영되지 않으면 일정 부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관리직 등 회사 경영을 지원하는 간접 부문 종사자도 있다. 산업은행은 각사 중복 인원이 약 800명에서 1천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대한항공직원연대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적자 덩어리인데, 비용 감축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으면 굳이 인수할 이유가 없다”며 산은과 한진 쪽의 약속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두 회사에 예약관리자 등 중복 인력이 있어 구조조정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을 그대로 내버려둬 파산했을 경우 벌어질 고용 충격을 생각하면 일부 인력 감축을 하더라도 대한항공과의 통합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신다은 박수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