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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이건희, 반도체로 ‘초일류 삼성’ 무노조·승계 ‘초법적 경영’

등록 2020-10-25 19:03수정 2020-10-26 23:06

이건희 회장 걸어온 길 ‘빛과 그림자’

신경영 ‘뚝심의 승부사’
반도체와 스마트폰 기술 앞세워
연 매출 230조, 세계적 기업 성장
취임사에서 ‘초일류 기업’ 선언 뒤
글로벌 인재 영입등 쉼없는 개혁

탈법과 일탈의 ‘흑역사’
에버랜드CB로 편법승계 첫 단추
노조 설립 탄압 등 ‘무노조 경영’ 악명
정·관계 인사 돈으로 관리 ‘X파일’
차명재산 비자금, 대국민 사과까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줄곧 기업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그 ‘특별함’의 배경엔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가 상당 부분 겹쳐 있다. 2014년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가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을 이끈 27년간 삼성의 행보는 곧 한국 경제의 위상 변화를 상징했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과 편법·불법 승계, 정경 유착 등, 그가 한국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과제로 남아 있다.

■ 품질경영과 인재경영…‘쌍끌이 신화’의 씨앗 뿌려

삼성그룹의 주력 회사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230조원. 정부 예산(469조원)의 절반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가전 분야에서 금성전자(현 엘지전자)에도 밀리던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티브이(TV), 디스플레이 분야 글로벌 최강자로 우뚝 서는 과정에 이건희 회장의 뚝심과 결단이 결정적 구실을 했음을 부인하긴 힘들다. 1987년 12월,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을 이어 그룹 총수에 오르며 취임사에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던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1942년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3남으로 태어난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과 삼성물산에 이름을 올리며 경영수업의 첫발을 뗐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뒤 그가 가장 힘을 쏟은 분야는 반도체다. 199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64MB 디(D)램 개발에 성공한 게 첫 신호탄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때로는 매서운 경영자의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1993년 6월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기업 체질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실제로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에 시중에 판매 중인 휴대전화 15만대 전량을 쌓아놓고 ‘화형식’을 거행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무선전화기의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자 충격요법을 가한 것이다.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의 성공에도 그의 빠른 판단은 힘을 보탰다. 제품 전환 주기가 빨라 신속한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수인 이 분야의 특성을 잘 살린 ‘이건희 경영’이 주효한 것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 노릇을 하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쌍끌이 신화’의 탄생 배경이다. 철저한 실적 위주 인사도 이건희 시대의 특징이다. 그는 이미 1990년부터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글로벌 전문인력을 키우며 국제화 시대를 준비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11년 “지역전문가 제도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공한 핵심 비결”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 편법·불법 승계와 무노조 경영…한국 경제에 그림자 남겨

하지만 거침없는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이건희 시대는 법과 상식이 자리잡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었을뿐더러, 동시에 탈법과 일탈의 연속이기도 했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를 위한 탈법·편법 승계의 첫 단추를 끼운 것도 그의 시대다.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탄압해온 무노조 경영, 뇌물과 정치자금으로 권력을 관리하고 대가를 누려온 정경 유착의 상징이 국내 최대 그룹 삼성이 된 과정에도 그의 행보는 깊숙이 관여돼 있다.

법의 심판대에 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전두환·노태우 특검 재판에서 100억원 상당의 뇌물 공여 사실이 밝혀져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5년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이학수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간 대화를 도청한 ‘엑스파일’을 통해 삼성이 돈으로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포섭하고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나 온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삼성 쪽의 뇌물 공여자는 무사했지만 ‘삼성 떡값 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이어 2007년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삼성의 광범하고 조직적인 불법 비자금과 로비, 차명재산 의혹이 드러났다. 이듬해 ‘삼성 비자금 특검’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삼성 경영에서 잠시나마 손을 떼야 했다.

삼성을 특징지은 탈법·초법적 행위의 씨앗은 세금 없는 상속·승계와 총수 일가의 변칙적인 계열사 지배력 유지 욕구에서 비롯됐다. 이건희 회장 자신이 공익법인을 통한 변칙 증여를 받은 데 이어, 이 회장 역시 아들 이재용 부회장 등 세 자녀에게 세금 없는 대물림의 악습을 이어갔다.

2008년 당시 이건희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회사 전환을 약속했다. 숨겨왔던 차명재산의 실명 전환 뒤 벌금과 세금을 내고 남은 조 단위의 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하지만 2년 뒤 ‘위기론’을 명분 삼아 슬그머니 경영 복귀에 나선 이후 아직껏 지켜지지 않은 게 많다. 이건희 회장이 숨지면서 풀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게 됐다. 편법과 탈법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이루려던 ‘비책’이 후계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물론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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