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의 대립 구도와 관련해 기본소득론자들은 자신을 ‘개혁적 복지국가론자’라 하고, 사회보장 강화를 우선시하는 이들을 ‘전통적 복지국가론자’라고 한다.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대립 구도는 잘못된 설정이란 인식에서다. 그러나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기본소득론자 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론자’라고 한다. 연합뉴스.
기본소득 논의가 화두다. 무릇 논의는 쟁점으로 뜨거워진다. 2020년 9월, 기본소득 논의의 쟁점은 무엇인가?
기본소득 논의는 이 물음의 답부터 간단하지 않다. 실제, 복지·노동 분야 전문가들에게 “기본소득 논의의 핵심 쟁점을 말해달라”고 요청하니 답이 제각각이고 꽤 복잡하다.
A교수는 기본소득의 금액 수준, 재원, 대상 범위, 기존 제도와의 관계를 제시했다. B교수는 재원, 수혜와 부담, 대상을 꼽았다. 연구자 출신의 C대표는 재원, 효과, 기존 제도와의 관계, 기본 시리즈(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등) 간의 우선순위를, D교수는 재원, 사각지대, 소득보장, 소비증대, 공유 문제 등을 짚었다.
E교수는 학술 공간에서 △소득보장제도로서 기본소득인가? 대안체제로서 기본소득인가? △생산체제 △정치적 기반(권력자원) △공유부(富) 문제 △탈상품화냐, 탈노동화냐 등을 살펴야 한다고 했고, 대중적 공론장에는 증세, 재원 기본소득 수준, 대상, 사각지대, 디지털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전망 등이 논점이라고 했다. F교수는 “쟁점은 사실상 재원 하나이며, 나머지는 사소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곱씹어도 ‘논쟁의 각’을 세우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물론 다수가 꼽는 공통분모가 없는 게 아니다. 증세를 포함한 조달 방법과 규모 등 재원 문제, 사각지대·소득재분배 등의 효과 문제다. 적잖이 언급됐지만 기본소득 논의의 ‘쟁점 살펴보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한 세션 테이블 위에 쓰인 기본소득 문구.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독일 등 유럽에서는 기본소득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REUTERS
① 핵심 쟁점 1: 재원은 어떻게?
대표적 기본소득론자인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재원은 기본소득 논쟁의 모든 것”이라고 토로한다. 이는 기본소득 논쟁의 핵심 논점이며, 이 논쟁의 가장 큰 딜레마다.
기본소득은 낮은 수준에서 도입한다고 해도 본질에서 돈이 많이 든다.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 창립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도 애초 자신이 제안한 국내총생산(GDP)의 25%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고, 낮은 단계에서 조금씩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국내 기본소득 찬성론자들도 국내총생산 10%를 중기 목표로 삼는 등 낮은 수준(부분기본소득)이나 청년 등 특정 대상(범주형기본소득)을 상대로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예컨대 기본소득 찬성론자인 유종성 가천대 교수(사회정책학)는 <예산춘추>(59호, 2020년)에 실은 글에서 “GDP의 10%인 월 30만원이나 GDP의 15%(월 45만~50만원 수준)의 생애주기형(연령에 따라 지급액 수준에 차등을 주어 가령 아동은 월 15만원, 75살 이상 노인은 월 60만원) 전 국민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을 재분배 기능 없는 소득비례의 소득보험으로 개편하며, 공적부조 중 상당 부분을 대체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표적인 기본소득 비판론자로 평가받는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단돈 1만원짜리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해도 6조4천억원이 소요되고, 10만원이면 62조4천억원이 든다.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면 GDP의 10%인 약 189조3천억원이 든다”면서,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월 10만원(연 120만원)의 기본소득을 위해 대략 60조원이 필요한데, 2019년 보건복지 전체 예산이 162조원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현금복지를 다 합해도 약 100조원으로 추정된다”면서 “월 30만원 기본소득은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불가능” 또는 “감당할 수 없는 재원 소요”란 지적에 대해, 유 교수는 기본소득 재원인 GDP의 10~15%는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맞선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출 개혁, 공유부 과세 등 여러 재원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다수 시민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증세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정지출 구조 개혁으로 GDP의 5%를 확보하고, 보편증세와 부자증세를 통해 5~10%를 추가로 마련하는데, 이때 기존 소득세의 비과세·공제·감면을 폐지하거나 최소한만 남겨두자고 제안한다. 여기에다 21세기형 사회보장 재원으로 ‘국민소득세’를 도입해 GDP의 5%를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이 제안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경험상 지출 구조조정은 증세보다 힘들며, 새로운 세금은 고민할 수는 있으나 추가로 거둔다고 해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말하는 효과가 극히 낮은 적은 금액의 부분기본소득을 해보는 것에 그치며, 월 30만원 같은 ‘의미 있는 기본소득’을 하려면 개인과 법인 모두 지금보다 세금을 58%쯤 더 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반론이다.
그러자 이번엔 기본소득론자들은 “비판론자들 주장은 전형적인 재정 건전성 프레임이자 예산 제약 프레임”이라고 맞선다. “이 프레임으로는 비판론자들이 말하는 사회보장 강화나 사회보장제도의 재구조화 등 복지개혁 자체도 가능하지 않다”면서, “한국의 재정 여력과 증세 여력에 객관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백승호 교수)고 강조한다. 특히 백 교수는 “2019년 경기도 기본소득에 대한 숙의 포럼 방식의 여론조사를 보면 증세에 시민 동의가 커지는 등 한국의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단순 주장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논쟁은 필연적으로 증세 이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정학자인 전용복 경성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기본소득론자 대열에 가세하면서 재원 논쟁은 재정정책 논쟁으로 심화하는 양상이다.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는 파격적인 제목의 책을 내놓은 전 교수는 “정부 재정은 가계 재정과 다른데다, 정부 부채가 오히려 민간경제 저축을 늘려준다는 점 등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면서 정부의 재정정책 등으로 (기본소득) 재정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재정 논쟁은 이처럼 찬반론자 사이에서 타협 지점을 찾기 힘든 첨예한 논점이다. “아직 시도되지 않은 일이라 검증할 수 없기에 계속 평행선을 달리는 주제”(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다. 좀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도돌이표 이슈’이지만 복지국가의 핵심 이슈인 재정 논쟁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는 최근 정부의 재정정책 역할 논쟁, 조세개혁과 증세정치 등의 이슈로 논의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필연적으로 예산 제약을 전제로 한 정책 간 우선순위 논쟁으로 파생되기도 한다. ‘기본소득이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냐’ ‘기본소득이냐, 상병수당이냐’ 등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강화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의 논쟁이 그것이다.
경기도가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의 현장 신청이 시작된 2020년 4월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접수창구 앞에 시민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② 핵심 쟁점 2: 효과 ‘있다? 없다?’
기본소득에서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이른바 ‘효과’ 논란이다. 기본소득이 사각지대 해소와 소득재분배 등에서 정책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상반된 평가를 하면서 벌어지는 논쟁이다.
기본소득은 현 사회보장제도의 ‘약한 고리’를 제기한다. 바로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 문제, 이른바 사각지대 문제다. “현행 복지체제가 불안정, 비정규직 등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보험 지위를 최근 고용에서 소득 기반으로 전환하자는 이른바 ‘소득보험’ 방안이 주목받는 것도 사각지대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사각지대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는 게 기본소득론자들이 내세우는 기본소득 도입의 주요한 근거다.
그러나 양재진 연세대 교수 등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양 교수는 <동향과 전망> 최신호에 게재한 글에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최근 들어 정치인들이 사각지대 해소에 실효성도 없고, 소득보장이나 재분배 효과, 소비증대 효과도 기존 복지급여만 못한 기본소득을 들고나온 게 남미식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반대편에 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양 교수는 “n분의 일로 모두에게 나누니 충분한 급여를 줄 수가 없어 가성비가 너무 낮다”면서 “사각지대 해소는 기초연금이나 의료급여처럼 조세 기반 복지로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일한 액수를 전 국민에게 나누면 소득재분배 등 양극화 해소 효과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증대 효과도 없다고 일축한다.
이 매체에서 양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유종성 교수는 “기본소득은 기존 사회보험이나 공적부조보다 정의롭고 복지증세를 용이하게 해서 더 높은 재분배 효과를 갖는다”며 180도 다른 주장을 펼친다. 백승호 교수 또한 “비난 회피 정치론에 근거할 때, ‘n분의 일 복지 대체형 기본소득’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복지제도의 개혁과 함께 실현될 수밖에 없고, 이런 기본소득은 사회적 취약계층의 복지를 더 효율적으로 높인다”고 맞섰다. 그는 이어 “2018년 기준 현행 조세복지 모델의 지니계수 감소 효과는 16.2%이고, 여기에 현행 복지수급자에 대해서만 30만원을 추가하면 지니계수 감소 효과가 23.6%로 나타났는데, 현재 사회보장제도에서 기본소득 30만원을 추가하면 24.1%의 지니계수 감소 효과가 나타나, 결코 가성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은가? 기본소득 효과 논란도 아직은 딱 부러진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경험과 실증 영역이 아닌, 이론과 추정의 영역에 가깝다. 이 논의도 재원 논쟁만큼이나 찬반 논자들 사이에서 ‘타협’ 지점을 갖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기본소득과 관련한 ‘정책실험’은 이런 맥락에서 나름의 의미를 띤다.
③ 제언:
과녁은 분명히, 논쟁은 더 치열하게,
절박한 아우성에 대한 응답이어야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점은 두 핵심 쟁점 외에 많다. 기존 복지제도와 관련해 “대체재냐 보완재냐” “경제정책이냐 복지정책이냐”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문진영 서강대 교수)등이 제기되는가 하면, 누가 이를 추진할 것인가란 차원에서 정치적 기반, 즉 주체의 문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철학적 이슈를 다양하게 내장하고 있다. 이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향후 바람직한 논의를 위해 이쯤에서 논쟁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학자들의 평가는 의외로 부정적이다. 기본소득 논쟁이 “소모적”(백승호 교수)이며, “오해와 왜곡이 되풀이되고 있다”(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논쟁 참여자나 어쩌면 관전자까지 머릿속에 두고 있는 기본소득의 상이 서로 다른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을 두고서, 윤홍식 교수는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실질적 기본소득, RBI) △한국형이라는 수사가 붙여진 완전기본소득(FBI) △낮은 수준의 급여를 전체 시민에게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PBI)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전환적 기본소득(TBI) 등 넷으로 나눈다.
현실에서는 좌파 버전과 우파 버전으로 나누는 게 이해가 손쉬울 듯하다. 대표적인 우파 버전은 ‘국민의 힘이 내놓은 안이다.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2020년 기준 약 88만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공공부조 확대 안에 가깝다.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크게 두 갈래다. 자본주의 체제 변혁의 관점을 강조하는 유형과 소득보장제도의 하나로서 제안되는 유형이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기본소득은 소득보장제도의 한 유형으로서 낮은 수준의 부분기본소득과 범주형기본소득, 두 종류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우선 다양한 주장과 갈래, 유형 가운데 어떤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반대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논의의 예각화를 위해 경청할만하다.
“편의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비판하거나 상이한 기본소득 형태를 취사선택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말자”는 지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하나가 아니라 ‘기본소득들’이기 때문”이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의 제언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도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오 위원장은 <복지이슈>(서울시복지재단 발간, 2020년 8월호)에서 논쟁 대상의 “기본소득 유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화살이 어떤 과녁을 향하는지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본소득 논의에 뛰어든 모든 이가 이런 오해 속에 논쟁을 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내의 기본소득 논쟁은 2000년대 초 몇 편의 논문으로 처음 소개된 이래 기본소득론자들 내부의 ‘구상 논쟁’을 거쳐 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학술 공간을 필두로 구체적인 도입 안을 놓고 다투는 ‘실행 논쟁’의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이후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이 앞다퉈 나왔고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대중매체에서도 심심찮게 찬반의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한국 복지발달사’란 큰 흐름에서 보면, 작금의 기본소득 논쟁은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이 논쟁은 무엇보다 2010년 무상급식을 계기로 불거진 보편적 복지 논쟁에 이어 10여 년 만에 폭발한 사회정책 논쟁이다. 또한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변화에 따른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장 바람직한 새로운 복지제도의 대응은 무엇인가 등 복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불러들인다. 복지국가의 복지정치의 맥락에서 엿볼 지점도 적잖다. 찬반 입장을 떠나 이 논쟁을 지속해야 할 이유다.
바야흐로 전환기다. 우리 사회는 누구도 소외됨이 없는 담대하고 혁신적인 복지국가가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급변에 따른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재구조화, △감염병 등 보건환경 변화에 따른 보건의료체계의 새로운 재편, △노동빈곤층의 소득보장강화를 위한 전국민 사회보험 체계로의 전환, △돌봄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시급한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 등 과제가 산적하다.
하여, 작금의 기본소득 논쟁은 이렇듯 숱한 복지개혁을 위한 과제를 이뤄내기 위한 복지개혁 논의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더 치열하고 더 뜨거워야 한다. 궁극에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숱한 절박한 아우성에 대한 실질적인 응답이길 바란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