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2020년 6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또 역대 최대 기록을 깼다. 서울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상담 창구. 연합뉴스
“1년 이상 5인 미만 사업장에 다녔습니다. 코로나와 비수기가 겹치면서 5월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해고예고수당을 얘기하니 해고를 철회하고 기약 없는 무급휴가를 일방적으로 명령하네요.”(직장갑질119 상담 사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로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의 고용안전망이 우리 사회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이어진다.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이 5월10일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밝히면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2020년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일련의 움직임에도 고용안전망 강화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여전히 높지 않다. 왜일까?
기능부전의 고용안전망
고용안전망이란 “고용의 유지, 창출 그리고 신규 진입 또는 복귀 등을 위한 안전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용보험, 실업부조, 공공근로 사업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지금과 같이 실업이 급증하는 시기에 가장 긴요한 소득보장형 사회보장제도다. 시장에 자동으로 많은 돈이 풀리게 하는 자동 안정 장치 기능을 해 경제제도 성격도 띤다. 이렇듯 고용안전망 강화는 경제와 사회 정책의 호혜적 융합을 지닌 전형적인 ‘웰페어노믹스’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고용안전망의 주축인 현 고용보험제도가 고용 불안 해소책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용 불안과 소득 불안이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코로나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목소리가 분출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취업자 중 절반 이상이 실업 상태에 놓여도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이런 기능부전과 부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대한민국이 불안사회로 명명되는 까닭에는 이처럼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비롯되는 고용 불안 요인이 크다. 전체 취업자 2700만 명 중 고용보험의 실질적 가입자는 1352만 명(49.4%)에 그친다. 공무원 등 특수직역연금 대상자 140만 명(5.4%)은 애초 이 제도와 법적으로 무관하다.
나머지 취업자 중 비정규직 370만 명(13.8%)은 가입 대상이지만 신고 기피 등으로 가입돼 있지 않다. 여기에 65살 이상 고령자(117만 명)와 15시간 초단시간 노동자 등도 고용보험 적용에서 원천적으로 빠져 있다. 바로 실업과 생계 위협을 받는 비공식 노동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무려 1천만 명 이상이 고용보험에서 배제됐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충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는 이들은 K(케이)-방역이라는 빛나는 대한민국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노동’ 현장에 놓여 있다.
코로나발 경제위기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동시에 개혁을 위한 기회의 창이다. 고용보험의 제도적 흠결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이 구조적이고 끔찍한 고용 불안을 해소할 절호의 기회다. ‘전 국민 고용안전망 확립’을 위한 몇 가지 핵심 논점을 적시해본다.
첫째, 고용보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공론은 충분히 모였다. 핵심은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것이다. 낡은 틀은 새 틀이 뚜렷이 정립될 때 비로소 해소된다. 가장 주목받는 새 틀은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선임연구위원이 내놓은 ‘소득 기반 전 국민 고용보험제 방안’이다. 이 안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명실공히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취업자로 확대한다. 보험료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부과하고 사업주는 법인세 과세 기준인 순이익에 일정 요율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노동계와 학계, 시민사회 등에서 높은 지지를 받지만 정부 밑그림에 이 안은 고려되지 않았다.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기반을 다져야 한다. 정부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220만 명 가운데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한 77만 명에게 2021년까지 적용을 넓히는 “단계적 확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 안이 실행돼도 나머지 특수고용 등 상당수 비정규직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장’의 아우성을 고려하면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조처는 시급히 해야 한다. 사용자의 고용보험 피보험 대상 근로자 신고 기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의 자발적 신고를 제약하는 문제도 풀어야 한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 근로자 범위의 협애한 정의 또한 손질해야 한다. 이들 조처는 “의지만 있으면 법 개정을 통해 추진할 수 있는 것”(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다. 자영업자 적용을 위한 소득 파악 인프라 확보, 자영업자 소득신고 세부 방안 마련, 적용과 징수 기반 국세청으로의 일원화, 저소득 가구를 위한 보험료 지원, 공무원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의 고용보험 적용 등도 속속 풀어야 할 중요한 기초다.
셋째, 지속적인 사회적 대화다. 추진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벽은 높고 넓다. 이 때문에 이견을 조정하고 합의하려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력과 노동정치를 지속해야 한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자료: 장홍근(한국노동연구원), 2020 한국사회비전회의 자료집
끝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 사회 불안의 구조적 뿌리는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에서 비롯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와 직접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2730만여 명) 가운데 고임금에 비교적 안정적인 이른바 1차 노동시장에 들어가 있는 이가 약 500만 명(18.7%)에 이른다. 민간 대기업 정규직 300만 명에 공공부문 정규직 150만 명, 여기에 고용원이 있는 괜찮은 자영업자 50만 명 등이다. 이들은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다.
문제는 2차 노동시장이다. 약 218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무기계약직 42만 명, 민간 대기업의 비정규직 184만 명, 민간 중소기업의 정규직 758만 명, 민간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554만 명, 공공부문 비정규직 24만 명에 더해 비임금 노동자에 가까운 영세자영업자 633만 명 등을 가리킨다. 2차 노동시장의 절반 이상이 고용보험의 실질적 혜택 범위 밖에 놓여 있다. 그 수가 1천만 명을 훌쩍 넘는다. 우리 사회 고용 불안의 뿌리이자 불평등과 양극화의 뿌리다. 궁극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고용안전망 강화 정책 실패는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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