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삼성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대외 행보를 가속화하며 ‘삼성 역할론’을 더욱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핵심 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이) 챙겨야 할 일이 태산 같다”며 “한-일 외교 분쟁 고조에 따른 반도체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글로벌 네트워킹을 복원해서 오너(총수) 경영자로서 신사업과 미래 먹거리도 챙겨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당분간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을 위한 기업결합(M&A) 발표는 예정돼 있지 않다고 이 인사는 덧붙였다. 지난 한 달 새 삼성은 약 18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월6일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약속한 사안들에 대한 이행 여부도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당시 자녀에게 승계를 물려주지 않을 것과 노동3권 보장, 시민사회와의 소통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지만 준감위는 이 부회장의 발표 직후 “구체적인 실천 방안 등 좀 더 자세한 개선안을 마련해달라”고 재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열린 준감위 회의에서 삼성전자 등 7개 계열사가 내놓은 이행 방안도 그동안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이사회 중심 경영이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문제 해결 등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담기지 않아 원론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준감위는 “이행방안을 수행하기 위한 세부적 과제선정과 구체적인 절차, 로드맵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전달한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시각이 나왔다. 이날 케이비(KB)증권의 김동원 애널리스트는 영장 기각 뒤 낸 보고서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 관련된 삼성 계열사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기업가치 향상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중장기 경영 전략에 초점을 맞추며 풍부한 현금(2020년 1분기 현재 순현금 97조5천억원)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기업결합(M&A) 시도가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와 3분기 실적 전망은 비교적 나쁘지 않다. 지난 1분기 실적은 영업이익 6조4473억원으로 견고했으나 2분기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며 실적 악화가 예상됐었다. 삼성전자도 지난 4월 실적발표회(IR)에서 2분기 실적 악화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2분기 실적 전망치는 9일 기준으로 매출액 51조1267억원, 영업이익은 6조2895억원으로 1분기 실적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3분기 전망치는 더 높다.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하나금융투자)도 있다.
이 부회장은 이러한 삼성전자 실적과 투자 여력을 기반으로 ‘삼성 역할론’을 더욱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오는 11일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여부를 결정할 ‘부의심의위원회’를 연다. 여기에서 수사심의위 소집이 결정되면 시민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들이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오더라도 검찰이 반드시 이 권고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심의위 소집을 마지막 승부수로 선택한 이 부회장으로서는 ‘삼성 역할론’을 통한 심의위원 설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처지다.
한편,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9일 삼성전자 주식은 상승세로 출발한 뒤 등락을 반복하다 전일 종가(5만4900원)보다 1.09% 오른 5만5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