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주요국 총통화(넓은 의미의 유동성)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보다 약 2배가 늘었다. 그리고 그 위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주저 없이 또 많은 돈을 풀었다. 지금 전세계 유동성의 탑은 그렇게 높이 쌓여 올라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 천문학적 돈들이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에 쏠려 있는 건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풀린 돈의 일부는 계속 잠길 테고 일부는 어떤 경로로든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다.
특히 이번에 각국 통화당국은 예전과는 달리 돈을 급하게 풀었다. 최근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또 가장 공격적으로 푼 미국을 보면 경제규모(국내총생산) 대비 총통화 비율이 조만간 15%포인트나 오를 전망이다. 참고로 금융위기 때는 이 정도의 유동성 증가에 7년이 걸렸다. 돈의 힘이 단기에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주목할 점은 최근엔 시중에 도는 돈의 유속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는 사실이다. 실제 찍어 낸 돈이 시중 통화로 불어나는 정도는 10년 전의 절반 이하 수준인데 향후엔 더 낮아질 것이다. 통화정책의 약발이 예전보다 일찍 약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돈과 주가의 관계의 관계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처럼 돈이 풍년인 시기에 보인 증시의 반응이다. 이런 의미에서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주가는 2009년부터 떴는데 통화량은 그 이전이나 그 이후 공히 쭉쭉 늘었다. 주가상승을 도운 건 분명 유동성(돈)이었지만 주가 ‘반등 시점’을 좌우한 건 유동성보다는 경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올해는 정말 바이러스로 특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경기가 돌아섰다는 안도로 국내외 주가가 모두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바이러스가 몰고 온 경기침체는 공황 그 이상이었다. 경기의 수직하강만큼이나 곧 나타날 경기반등 또한 가파를 것이다. 다만 그 회복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잠시 멈춰버린 세계경제가 상상 초월로 꺾인 뒤, 단지 턴어라운드를 넘어서 코로나 이전보다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더 높이 개선될지가 다음 증시를 결정할 핵심 변수다.
가령 4월에 14.7%까지 뛴 미국 실업률이 지난달 13.3%로 개선됐고 앞으로 경제활동이 추가로 개선된다면 연말께는 10%, 내년엔 7%대로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올 초 3.5%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실업률이다. 대부분 국가의 소비나 생산, 기업이익도 이와 비슷한 추세일 것이다. 즉 일단 경기 방향성은 의심할 바 없으나 그 개선 수준에는 아직 의문이 있다.
최근까지 주가는 무조건 방향성만 우선시해왔다. 통상 현재 주가를 결정하는 건 미래의 경기나 기업이익 추세니까. 다만 만약 현재 주가와 앞으로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커지면 시장은 이를 보정하거나 속도조절을 보일 것이다. 참고로 지금 국내외 주가는 코로나19 전 역사적 최고 상황의 경기와 기업실적이 단기에 충족돼야만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점이 앞으로 증시가 넘어야 할 산이자 과제다.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