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적십자사 직원들이 몬드라곤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유통업체인 에로스키사가 전달한 구호물품을 차량에 옮기고 있다. 에로스키는 스페인 적십자사와 손잡고 공공시설에 격리된 노숙자 500명에게 의류 등을 후원했다. 몬드라곤협동조합 제공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 우리 연봉의 70%를 삭감해달라. 깎인 연봉은 구단 일반 직원들의 급여를 보전하는 데 쓰였으면 한다.”
지난달 30일 스페인 축구 명문 FC바르셀로나의 주장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선수들이 자진해서 연봉 깎기에 나섰다. 연봉 삭감으로 마련된 재원은 일반 구단 직원들이 기존 급여 100%를 지급받도록 투입될 예정이라고 구단은 밝혔다.
스페인은 이달 11일 기준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코로나19 확진자(16만9496명)가 나온 나라다. 사망자도 1만7489명으로 미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아 경제·사회 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바르셀로나 구단 선수들의 연봉 삭감 결정은 스페인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런 결정에는 선수 개인의 가치관 외에 FC바르셀로나의 역사와 정체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899년 설립된 FC바르셀로나는 축구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이다. 현재 국내외 17만5천명의 조합원을 둔 FC바르셀로나는 2년 동안 150유로를 내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살 이상 조합원은 이사회에도 참석할 수 있다. 클럽 회장도 6년마다 조합원 이사회를 통해 선출된다. 대기업이 소유한 대부분의 축구클럽과는 소유와 운영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클럽 그 이상’. FC바르셀로나의 슬로건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수들의 연봉 삭감 결정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에는 FC바르셀로나를 비롯해 2만2천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 협동조합들이 어떻게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스페인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이니고 알비수리 란다사
발 부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 회장이기도 한 란다사발 부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화상통화를 통해 1시간가량 진행됐다. 란다사발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는 협동조합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사람 중심 기업을 표방하는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인 연대와 협력에서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전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스페인 현지 협동조합들의 피해는 어떠한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한달 반 정도 지났다. 몬드라곤협동조합과 같이 규모가 큰 협동조합들은 재정이 튼튼한 편이라 잘 버티고 있지만 작은 협동조합들, 특히 유통이나 서비스 분야 협동조합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이번주부터 정부의 봉쇄정책이 완화되고 있어 몬드라곤도 제조업 생산공장을 중심으로 운영을 재개하고 있다.”
―스페인이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중 세 가지만 꼽자면, 초고령사회인 인구구조, 공공의료 시스템 및 관련 인프라 부족,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특성이다. 봉쇄정책으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지만 특히 사회 취약계층들은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피해가 큰 편이다. 스페인 협동조합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협동조합들의 활동에는 어떤 게 있나?
“제일 중요한 건 감염 예방 활동이다. 감염 차단을 위해 필수적인 의료기기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피해를 키웠던 게 사실이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일찍이 의료기기 생산 지원에 나섰다. 몬드라곤부품회사와 파고르공업과 같은 제조회사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 민간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 제조업 역량을 활용해 마스크를 생산하고 인공호흡기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주요 산업은 금융, 유통, 제조, 연구개발(R&D) 4개 분야이며, 모두 264개 기업체로 이뤄져 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몬드라곤부품회사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는 의료기기 생산회사인 벡센메디컬과 손잡고 지난 4주간 일회용 마스크를 대량 생산하는 기계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매달 약 22만장의 일회용 마스크 생산이 가능한 이 기계는 다음주 중반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생산된 마스크는 정부와 지역사회에 공급돼 스페인 내 마스크 수급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니고 알비수리 란다사발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불거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대·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몬드라곤협동조합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실업 사태가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협동조합도 이러한 위기를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협동조합들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수입 보전을 위해 여러가지 대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유급휴가인 여름휴가와 연말휴가를 우선 활용하고, 실업·무급휴직 등으로 수입이 끊기지 않도록 노동자들과 협의해 단기적으로 급여를 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2011년 금융위기 당시, 255개의 사업장을 운영하던 몬드라곤협동조합도 2개의 기업이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몬드라곤은 파산 기업에 근무하던 130명의 직원들을 퇴직시키지 않고 재교육을 통해 다른 기업에 재배치했다. 직원들이 선뜻 임금 조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과거 경험으로 조합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 속에 경영활동에 지역사회 지원까지 하려면 큰 부담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원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뭔가?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는 연대와 협력이다. 지금과 같은 언택트(비대면) 환경에서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간의 연대와 협력이 없이는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통해 보면 오히려 이런 위기 속에서 협동조합의 가치는 빛을 발했다. 스페인 내전 직후 설립됐던 몬드라곤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예다. 조합원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없이는 협동조합은 생존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 협동조합을 비롯해 사회적 경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 유통·물류의 어려움, 기후변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협동조합한테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협동조합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합원과 노동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은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일의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사람 중심 경제를 항상 염두에 둔다면 우리에게 미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란다사발 부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 한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방식만큼 한국 협동조합들의 빠른 성장과 열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직 역사가 짧고 영세한 협동조합들이 많아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겠지만, 연대와 협력에 기대어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만큼 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이니고 알비수리 란다사발 부회장이 <한겨레>와 화상통화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