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공공디자인이즘’(위 사진)과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세상’이 ‘고용조정 제로’ 선언을 한 뒤 페이스북에 올린 인증샷.
충북 청주의 사회적기업 ‘공공디자인이즘’은 이달 초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업체는 각종 전시와 축제 등을 기획하는 사업을 해온 터여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줄이는 손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사회적경제 기업다운’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로 했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확산하고 있는 ‘고용조정 제로’ 선언에 동참한 것이다.
이 회사 허진옥 대표는 “좋은 일자리를 고민해온 사회적기업으로서 회사가 어렵다고 다른 기업처럼 직원 자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고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코로나19 대응본부’가 벌이고 있는 ‘노 고용조정, 예스 함께살림’ 캠페인이 시나브로 확산 중이다. 이 캠페인은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를 사회적경제의 핵심 가치인 연대와 협동의 정신으로 극복하자는 운동이다. 캠페인의 두 축은 ‘고용조정 제로’ 릴레이 선언과 고용연대기금 조성이다. 지난달 말부터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사회적경제 조직을 대상으로 벌여온 고용조정 제로 선언에는 17일 현재 147곳이 참여했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NO고용조정’ ‘#YES함께살림’ ‘#코로나_위기극복_사회적경제가_함께해요’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캠페인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담은 글과 사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선언에 참여한 기업 외에도 사회적경제 기업들 사이에서는 경영이 어렵더라도 고용을 유지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취약계층을 많이 고용하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특성상 경제위기의 충격이 일반 기업보다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실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최근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현재의 고용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응답한 곳이 전체의 88%나 됐다.
고용연대기금은 고용조정 제로 선언에 동참하는 등 고용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인데,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모금이 진행 중이다. 18일 현재 9400만원이 모였다.
코로나19 대응본부의 간사 단체인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하재찬 지역위원장은 “경제위기가 닥치면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고용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정부 처지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들의 고용연대 선언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 등으로 호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진옥 대표도 “공공 부문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사업의 조기 집행과 선지급 등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정부 정책금융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경제 기업들에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융통해주는 나눔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사회적금융기관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지난달 말 소셜벤처들의 연대체인 임팩트얼라이언스 등과 함께 ‘다 함께 위기극복 공동행동’을 꾸려 금융지원에 나섰다. 모금을 통해 조성한 ‘재난연대기금’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회적경제 기업에 긴급운전자금을 빌려준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과 기관 등 수십곳이 이익 공유(기업 유보금의 일부 후원)나 급여 연대(급여의 일정액 후원) 방식으로 기금 조성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봤지만 정책금융 활용이 어려운 사회적경제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17일 현재 1억5000만원이 조성돼 1차로 9곳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의 정종덕 매니저는 “정부의 지원대책으로 해결되지 않는 소규모 사회적경제 기업을 지원할 필요성이 있어 기금 조성 캠페인에 나섰다”며 “상황을 봐가며 2차, 3차 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지난 19일부터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다 함께 위기극복! 비상한 펀딩!' 도 시작했다. 16일 현재 10개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