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파티와 위기를 만드는 레시피는 늘 비슷하다. 그 기본재료는 돈, 빚, 그리고 이들이 몰려서 만든 투자상품, 3가지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꾸준히 불어난 시중자금과 부채(주택담보대출), 그리고 파생투자상품이 거품의 주연이었고 거기에 물려 손해를 본 금융회사들이 사고를 쳤다. 어쩌면 지금도 비슷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작년까지 미국 등 선진국의 총통화량은 40%나 늘었고 이들 4대 중앙은행들이 찍어낸 돈은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대비 4%에서 12%로 치솟았다. 실물보다 3배속으로 돈이 풀렸단 얘기다.
빚은 어떤가? 지금 빚 문제는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기업과 가계, 그리고 국가 단위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빚(debt)이 빛(light)의 속도로 늘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금융기관 제외)는 2008년 대비 약 2배 늘었고 지디피 대비로는 260%에 이른다.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난 돈과 부채는 그간 여러 자산가격을 끌어 올렸다. 주식과 주택은 물론 상업용 부동산, 낮은 신용등급의 회사채, 자산유동화 증권, 재정 부실국의 국채까지, 다양한 자산에서 적지 않은 과열이 있었다. 저금리 환경이라 더욱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를 멈춰 세우자 그간 유동성 쏠림이 컸던 부채현장에서 먼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한 단계 이상 떨어진 회사채는 1조달러가 넘고 투기등급으로 강등당하는 기업이 계속 늘고 있다. 원래 투자등급 맨 아래인 BBB가 미국, 유럽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었는데 상황이 나빠지니 부채 돌려 막기가 어렵고 멀쩡한 기업까지 영향을 받아 경기가 나락으로 빠질 기색이다. 지금 모든 통화당국이 신용시장 안정에 필사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이유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놓은 2조3천억 달러 유동성 공급 대책도 그 일환이다.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물론 조금씩 다르게 반복한다. 이번 감염병이 부풀어 오른 부채를 타격하고 그 영향으로 경기가 주저앉는 건 12년 전 서브프라임 사태와 판박이다. 하지만 2008년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였고 지금은 지구촌 전반의 위험이라 더 골치가 아프다. 이는 어쩌면 바이러스는 잡혀도 부채는 잘 잡히지 않고 세계 경제 회복도 더딜 수 있음을 뜻한다. 위기는 늘 비슷한 패턴을 띈다. 위기로 인한 패닉 다음, 이어지는 반사적 반등은 늘 단골 메뉴다. 하지만 그 다음이 진짜다. 이 국면은 위기의 크기와 경제의 내성, 또한 정책대응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시장에는 아직 많은 우여곡절이 남아있다. 경기와 부채조정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건 코로나19 전에 원래 이 둘이 꽉 차서 조정압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풀었다 해서 곧 바로 돈이 돌고 경기가 예전수준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경기와 부채조정, 그리고 자산가격 조정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곧 코로나19의 맹위가 잦아들면 세상은 크게 안도하겠으나 본질은 감염병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경제체질과 기저질환과 맷집임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부채조정과 경기 부진을 특징으로 하는 이 디플레이션이란 이름의 과도기는 또 다시 그 다음 경기회복과 자산랠리를 위한 준비기간이다. 시간이 걸릴 뿐 기회는 또다시 온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