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행복나래 수펙스홀에서 열린 ‘소셜 벤처 현안점검 및 개선을 위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소셜 벤처 정책 현안을 점검하고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소셜 벤처'.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해법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사회적 기업가가 만든 기업이나 조직을 대체로 일컫는 말이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이 한국에서도 널리 퍼진 건 2009년 무렵. 당시 노동부가 ‘소셜 벤처 전국경연대회’를 연 게 계기가 됐다.
현재 국내 소셜 벤처의 정확한 규모나 실태를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다만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5월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600여 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소셜 벤처 생태계를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지원 정책도 잇달아 등장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5월 1200억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 조성 계획을 담은 ‘소셜 벤처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8월엔 소셜 벤처 지원 인프라 구축 등의 내용을 담은 소셜 벤처 육성 정책도 다시 내놓았다.
1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국내 소셜 벤처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정부의 지원책은 소셜 벤처 성장에 튼튼한 디딤돌이 되고 있을까? 국내의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셜 벤처 운영 당사자와 연구자, 임팩트 투자 분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셜 벤처 정책 현안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논의하는 ‘소셜 벤처 전문가 좌담회'가 지난 13일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행복나래 수펙스홀에서 열렸다.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가 주최한 이 날 행사엔 1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소셜 벤처의 모호한 판별기준 △과거에 비해 갑작스럽게 빠른 속도로 각종 자원과 정부 정책이 소셜 벤처로 몰리면서 생태계를 교란시켰다는 점, △소셜벤처를 중소벤처기업부가 관할하면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정책과 이원화되면서 정책 혼선이 발생한 점, △자본과 정부 정책 개입의 폭이 커지면서 생태계가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점 등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소셜벤처의 모호한 판별기준으로 인한 불필요한 혼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은애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위원은 “사회적경제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새로운 사회운동인데, 불광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그룹과 성수에 위치한 소셜 벤처가 지역이나 세대 분절로 비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각각 정책자금과 임팩트 금융의 한계를 극복하는 전국 거점망을 만들고 확산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원재 LAB2050 대표도 “사회적기업과 소셜 벤처는 각각 한자어와 영어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정부 정책이 새롭게 만들어낸 카테고리 논쟁을 넘어 근본적으로 사회문제를 재정의하고, 국가가 함께 임팩트를 만들어가는 생태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관건은 사회문제 해결 여부 자체라는 얘기다.
소셜 벤처 생태계 현장에 몸담은 관계자들한테서도 우려와 자성의 이야기가 나왔다.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는 “소셜 벤처 생태계가 점차 제도화되면서 예전에 비해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전했다. 소셜 벤처 성장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는 “사회적 가치에 목적을 둔 착한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실력 없는 소셜 벤처는 도태될 수 있다”며 “소셜 벤처 스스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소셜 벤처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유입되는 일반 투자는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는 “임팩트 투자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큰 규모의 투자와 펀드 조성과 사회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도 “통계조사를 통해 소셜 벤처 현황과 투자자 동향을 점검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날 좌담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부처 간 협업으로 통일된 정책 기조와 사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정책과제로는 △지속적인 당사자 간담회와 같은 협의체 구성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의 통일 △기업가들에 대한 안전망 구축 등이 제시됐다.
글·사진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