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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매매집결지 여성친화 마을로…도시재생 ‘젠더’를 입히다

등록 2019-10-08 06:00수정 2019-10-08 07:17

1부 ② 진화하는 도시재생
‘성매매’ 아산 장미마을의 변신
양성평등거리·여성커뮤니티센터 추진
“지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 느껴”

성공 열쇠는 ‘주민과 소통’
사업 내용부터 원주민 정착방안까지
도시재생 흐름 ‘통합·포용’으로

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마을로
군산, 근대 역사문화 자산 거점으로
순천, 마을방송국·도서관 만들어
사진 : 아산시청, 한겨레 그래픽
사진 : 아산시청, 한겨레 그래픽

지난달 17일 오후 찾은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관광지 ‘장미마을’. 한때 충남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던 과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술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음침하던 골목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널따란 길이 생겼다. 아산시청이 유흥업소를 매입한 뒤 건물을 허물고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80여곳에 이르던 업소는 지금 5~6곳만 남았다. 이미 동네 분위기가 바뀌어 나머지 업소도 매입 문제를 놓고 시와 논의 중이다.

여성 인권 유린의 상징이던 장미마을은 더 큰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아산시가 추진하는 여성친화형 도시재생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낙후된 마을을 재생하면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산시가 처음이다. 장치원 아산시 도시재생과장은 “장미마을은 여성의 인권침해와 아픔이 존재하는 장소”라며 “완전히 지우는 방식의 도시재생이 아니라 지난 과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장미마을을 여성 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을 외면했던 기억을 남기고, 성매매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는 얘기다. 온양 원도심 여성친화 도시재생사업엔 온천동 16만225㎡(4만8천평) 면적에 국비 100억원, 지방비 67억원, 엘에이치(LH) 행복주택 1000억원 등 총 1167억원의 재정이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고 2022년 완공이 목표다.

아산이 구상하는 ‘여성친화 도시재생’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장미마을 터에 양성평등거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거리에 여성커뮤니티센터를 세워 여성의 창업과 취업을 돕는 등 여성들이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성매매 집결지였다는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한 공간도 검토하고 있다. 또 여성·청년·협동조합 등의 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화상점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장미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터에는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쉼터와 고령자 돌봄·부업 등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곳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 5개 분과 주민협의체 만들어 논의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주민과의 소통이다. 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해서 논의 중이다. 이들은 도시재생사업 내용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등에 이르기까지 상시로 만나 머리를 맞댄다.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도시재생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있다. 이현정 주민협의체 여성분과 분과장은 “10년 이상 전업주부로 있다가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지금 교육 강사를 하고 있다. 처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며 “양성평등거리나 여성커뮤니티센터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만나 고민을 나누는 등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는 그는 “여성친화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도시재생에는 처음 접목되는 것이어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주민들이 내는 의견을 실제 사업으로 어떻게 반영할지 여성 전문인력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산처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도시재생사업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사회·물리·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재개발·재건축과는 성격이 다르다. 도시재생의 다양한 실험은 세계적 흐름이다. 유엔은 20년 단위로 도시 및 인간 정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의를 진행해왔는데, 지난 40년 동안 의제는 주로 주거권과 기초서비스 분야에 맞춰졌다.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합의로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도시 등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채택되고, 2030년까지 도시 거주 인구가 세계 인구의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 유엔은 앞으로 20년 동안의 도시 의제로 사회융합, 환경, 지역경제, 사람 중심 공간계획, 도시 거버넌스 등을 포괄하는 ‘신 도시의제’를 채택했다. ‘신 도시의제’가 목표로 삼는 것은 사회적 통합과 포용력 있는 도시, 일자리 창출, 생태적이고 회복력 있는 도시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산시는 “주민소통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산시청 제공
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산시는 “주민소통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산시청 제공

■ 도시 노후화에 마을도 소멸, 도시재생 절실

우리나라도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3월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청년창업, 혁신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감소, 고령화 등으로 인해 30년 안에 84개 시·군·구(전체 37%), 1383개 읍·면·동(전체 40%)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 대도시도 건축물 노후화가 확산되고 있어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미 진행된 도시재생사업 중에선 전북 군산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등 근대 역사문화 자산을 문화거점시설로 만들면서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2014년엔 군산 월명·해신·중앙동 일대 도심의 상가 공실이 100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전남 순천도 2년 연속 도시재생 최고 등급을 받는 등 평가가 좋다. 마을방송국, 도서관 만들기 등 꾸준히 진행된 도시재생으로 2014년 187채에 달했던 빈집은 지난해 7채로 줄었고, 주민 만족도도 90%를 넘는다. 도시재생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곳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은 역시 ‘주민 참여’다. 주민이 참여해서 주민이 만족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열쇠란 얘기다.

물론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도시재생에 뛰어들면서 천편일률적인 양상도 보인다. 한옥마을과 벽화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기념관 설립도 도시재생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는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사업기간이 3~5년인데, 생각보다 촉박하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고, 사업 방향에 땅·건물 매입 등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이라 논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시간에 쫓기다 보면 기존에 다른 지역에서 하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간에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장은 “도시재생은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핵심”이라며 “양성평등, 사회적 약자의 배려 등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최 실장은 “아산시가 여성친화를 전면에 걸고 도시재생에 나선 것은 굉장히 진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 ‘빈집 뱅크’ 만들고 마을 카페·놀이방 재활용

독, 낡은 양조장 새단장 ‘저리 임대’…트위터 입주

미, 민간개발사업 때 공공시설 의무화 ‘공헌 협약’

도시재생사업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활발하다. 나라마다 도시가 처한 상황이나 주택 문제가 달라 재생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정부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고령화·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은 ‘빈집’이 큰 골칫거리다.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비슷한 고민에 처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일본 총무성 자료를 보면, 일본의 빈집은 846만채(2018년 기준)로 전체 주택의 13.6%를 차지하고 있다. 5년 전보다 26만채가 늘어나는 등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도쿄에서도 빈집이 90만채가량 된다.

일본에선 빈집을 허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빈집을 허물면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에도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도쿄의 세타가야구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빈집, 빈방, 정원 등을 커뮤니티 시설로 만든다. 지역에서 필요한 공익시설이나 주민 교류 활성화를 위한 마을 카페, 커뮤니티센터, 놀이방 등 다양한 시설로 바꿔 지역 활성화에 이용한다. 일본은 정부가 빈집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해 매매·임대를 지원하는 ‘빈집 뱅크’를 만든 데 이어 빈집 조례(2014년), 빈집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2015년) 등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도시재생을 통해 청년이 모이는 혁신거점으로 새롭게 변신한 독일 ‘팩토리 베를린’도 모범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베를린 주정부는 2011년 미테 지역의 낡은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사무공간 단지를 만든 뒤 기업 유치에 나섰다. 저렴한 임대료와 대출 혜택을 제공하면서 유럽 각국의 젊은 인재들을 모았고 베를린을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로 바꿔놨다. 트위터를 비롯해 온라인 유통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 등 대형 아이티 기업들이 입주했다. ‘팩토리 베를린’에서는 창업가, 프리랜서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멤버십을 통해 수준 높은 강의, 설명회도 활발히 진행된다.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도시재생에서 ‘지역사회공헌협약’(Community Benefits Agreement, CBA)이 주목받고 있다. 김지은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쓴 ‘지역사회는 경제기반형 재생사업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공헌협약은 공공지원을 받는 대규모 민간개발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협약에는 지역주민 우선채용 비율, 생활임금 보장, 부담 가능한 주택 확보, 공공시설 확충 등에 대한 목표치와 실행계획이 포함된다. 이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며, 지역 비영리단체는 이행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김 연구원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공헌협약은 공청회나 설문조사 등 소극적 주민 참여의 한계를 넘어 지역사회가 협상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주민 참여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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