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간연구기관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19 지속가능발전보고서’를 보면,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우리나라는 성평등,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과 함께 기후변화대응 목표에서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9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1천여명의 시민이 모여 정부와 기업의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9개월.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발표한 지 9개월이 흘렀다. 2015년 유엔이 전세계적으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별로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내놓았고, 이에 발맞춰 각국 정부도 저마다 나라별 실정에 맞춘 후속작업을 진행해 왔다. 한국의 경우,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등 지속가능발전 논의 자체가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꽤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성과를 판단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법에 따라 2년에 한차례씩 지속가능발전 이행 성과를 평가·보고해야 하기에 중간 점검 정도는 필요한 시점이라 할 만하다. 때마침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 디엠시(DMC)타워에서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대토론회’가 열린다. 주최자인 환경부를 비롯해 외교부·교육부 등 주요 부처 관계자가 시민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담당하는 행정 부처들이 지금까지의 추진 현황을 발표하기로 해, 실질적인 중간 점검의 자리가 될 예정이다.
“기업,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과연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무엇보다 국내 주요 기업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업은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다. 기업은 경제성장, 산업혁신 및 기반시설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기후변화, 에너지 등 환경 분야, 건강 증진과 웰빙, 지속가능도시 등 사회 분야에 이르기까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유엔도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해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실제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유엔 고위급 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기업 협회들을 파트너로 초대하는 등 각국 정부에 버금가는 핵심 이해관계자로 대우했다. 이에 화답하듯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도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다. 구글과 알리바바는 지난달 유엔 및 세계은행과 협약을 맺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에 필요한 데이터 취합과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글로벌 데이터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과 대조적으로 국내 산업계의 움직임은 아직 더딘 편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국책연구원을 비롯한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 민간 관계자들로 구성된 작업반 그룹, 그리고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노조·기업·장애인 등 목표별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을 조직한 바 있다. 시민단체 90여곳, 민간 전문가 192명, 23개 행정부처가 참여한 이례적인 민관학 대국민 협력 프로젝트였으나, 기업 관계자들은 좀체 찾기 어려웠다. 124명의 민간 이해관계자 중 기업 협회로는 유엔 산하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와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참여했고, 기업 관계자로는 삼성과 포스코의 실무자가 참여했을 뿐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데는 지난 정부 시절의 국정농단 사태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대기업들이 연루된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전경련 사회공헌팀을 중심으로 주요 대기업 사회공헌팀, 사회책임경영팀들이 불법 자금을 대는 통로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 이후 관련 조직 대부분 규모가 줄어들거나 활동이 축소됐다. 기업의 지속가능활동 정보를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에도 이러한 추세가 반영돼 있다. 지속가능경영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66건이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는 2014년(117건)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보고서를 발행한 곳은 절반 정도다.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민간 작업반과 기업 부문 이해관계자 그룹 대표로 참석한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책임연구원은 “국내 이행 성과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 기후변화나 생태계 보전,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 등의 목표는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라며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글로벌 국가와 기업들의 국제적 합의로서, 국내 기업들도 규제 정책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사업 기회와 효율적인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이런 소극적인 자세는 시민단체들이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작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여성, 장애인, 이민자 단체를 아울러 4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5개월의 의견 수렴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윤경효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무국장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가치와 활동 목표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 기업 등 사회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유용한 소통 도구로 활용되려면 유엔 지속가능보고서의 기본가치인 협력과 포용성의 가치가 담긴 목표와 추진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8일 국민대토론회 열어
지속가능발전목표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서둘러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추진체계와 의견 수렴 과정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핵심 가치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No one left Behind)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순회 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한 바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초안은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 노조, 장애인, 기업 등 17개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에서 목표별 의견을 담은 입장 문서를 받아 수정 작업을 거쳤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자들이 목표별로 이행 현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상시 운영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경효 사무국장은 “
지난해 이해관계자들이 입장 문서를 검토하고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별로 국제개발협력, 사회복지, 자활 등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고르게 수렴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내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 정립을 위해 지속가능발전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목표별로 정부 부처의 담당 영역이 중첩되기 때문에 해당 정책과 이행 주체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담당해야 할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 산하에 있다 보니 국무조정 기능이 전무한 상태다.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로 지위를 격상하는 안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며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고 추진하는 지방 정부의 역할과 의무도 개정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8일 열리는 국민대토론회를 비롯해 이달 개최되는 분야별 이해관계자 집중 토론 자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지속가능발전목표 내용과 데이터를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2015년 미래세대를 고려해 현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발전 방식으로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는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포털 누리집 갈무리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