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2020 예산안을 평가한다’ 토론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부는 지난 8월 말 총지출 513조5천억원 규모의 2020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9.3%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과 견주면 3년 사이 무려 28.2% 증가한 수치다. 그럼에도 내년도 예산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세밀한 평가는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2020 예산안을 평가한다: 확장재정과 사회정책’ 토론회는 집권 중반기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 전반을 다각도로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좋은예산센터, 한국사회정책학회, 에스에스케이(SSK) 저발전복지국가 연구사업단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 주최했다.
내년도 예산안의 주된 특징은 재량지출 증가율(11.9%)이 의무지출 증가율(6.8%)을 크게 웃돌면서 총지출 증가의 배경이 된다는 점이다. 복지지출 등 법률에 따라 쓰임새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의무지출 비중이 높은 게 일반적이다. 정부 재량에 좌우되는 재량지출을 의무지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린다는 건 정부가 상당히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회 분야(10.0%), 행정 분야(5.8%)에 비해 경제 분야(15.4%) 지출 증가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이와는 달리 세입 확대와 관련해선 알맹이가 빠져 있다. 이렇다 보니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3.6%에 이른다.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올해 39.4%에서 2023년엔 48.7%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5년 새 이례적으로 9.3%포인트나 오르는 셈이다.
이날 행사에서 기조발표를 맡은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는 특히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 내용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와 달리 기조 변화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는 5년 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김 교수는 “한 정권에서 작성된 재정운용계획의 기본적인 기조와 방향은 일관성을 지니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제한 뒤 “정부가 집권 중반기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 설명이 부족하다”며 “최소한 공개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하나의 해법으로 다음해 지출 규모가 집권 첫해 설정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지출 한도+알파(α)’를 벗어나게 변경하려면 정해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토론에 나선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출 증가율이 경상성장률의 2배를 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경기 둔화로 중앙정부 세입도 줄어들고 증세 노력도 하지 않아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나는 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대의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는 “지금은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부문의 구조조정과 경제적 민족주의 흐름 등 구조적 위기를 겪는 시기로 봐야 한다”며 “중소기업이나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과감한 지출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도 “경기가 어려울 때 증세에 너무 집착해선 안 된다”며 “비록 세입 확대 계획이 부족한 건 맞으나 지금은 재정의 과감한 역할로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