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후 파업 주간인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 1가 사거리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기후 위기가 다가오면 생존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미세먼지 등 주변에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비싼 아파트, 답이 나오지 않는 교육, 불안한 일자리 등을 생각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 휴학 중인 김수미(가명·22)씨는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도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중간층 정도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혼자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면 더 나은 삶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미래를 암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국민 10명 중 2명가량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60대에서 비율이 가장 낮았다. 대다수 국민이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데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미래세대와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노년세대가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한 위기의 징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으로 9월25~27일 실시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보면,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해 21.7%만이 ‘낙관한다’고 응답했다. ‘비관한다’는 응답은 2배쯤 많은 42.1%, ‘보통’은 36.1%로 조사됐다.
미래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는 세대와 계층에 따라 뚜렷했다. 20대(19%)와 60대(14.8%)에서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고 선택한 사람이 가장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치·경제·사회보장·환경·외교 등 5개 분야별로 지속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했다. 이 중 미래세대인 20대만 따로 살펴보면, 다른 연령과 견줬을 때 환경분야만 낙관한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나머지 분야에선 대체로 낮아 20대의 미래 불안감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향후 귀하의 삶의 질은 어떨 것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에 20대의 30.4%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사회 구조에 대한 암담함을 느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격차가 상당히 컸다. 부유한 20대(중간층 이상)는 57.6%가 사회구조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봤지만, 가난한 20대(중하층 이하)는 23.1%에 그쳐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전체 계층별 분석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간층 이하에서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해 19.3%만 낙관한다고 응답해 가장 낮았다. 중간층 이상과 중간층은 각각 24.5%, 24%로 조사됐다.
분야별로는 대기오염, 에너지 등 환경적 측면의 지표가 가장 나빴다.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는 응답이 12.4%로 경제 등 5개 분야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연령별로는 40대(7.9%)와 50대(9.7%), 성별로는 여성의 낙관 비율이 한자릿수로 낮았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박미영(44)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둘 있는데,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심하다. 최근 조금 좋아졌지만 미세먼지 심한 날은 무서울 정도”라며 “당장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없고, 중국 등 외부 변수도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문제는 내 삶에서 조금 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피부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을 사회관계망(SNS)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다, 최근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적 측면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32.6%가 낙관한다고 답해 가장 높았다. 2016년 촛불혁명 등 시민의 힘으로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하야시킨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미래와 관련해 가장 불안한 점을 묻는 질문에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25.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우선 저출산·고령화는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재정을 전폭적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1명대가 무너지면서 세계 유일의 ‘0명대’ 국가가 됐다. 고령화도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노인빈곤율도 45.7%에 이른다.
‘자산·소득·교육 양극화 등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25.2%)도 고질적인 불안요소다. 특히 20~30대가 저출산·고령화보다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가 더 불안하다고 선택했다는 점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금수저’ ‘흙수저’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세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을 묻는 질문에 43.9%가 ‘계층 간 갈등’을 꼽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념(29%), 지역(6.4%), 세대(6.1%), 성별(6%), 남북(5.6%)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64.4%가 ‘경제성장, 좋은 일자리 등 경제분야’라고 응답했다. 성별, 연령, 계층에 상관없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분야가 13.7%, 환경분야 9.7%, 남북관계 등 외교 6.4%,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보장분야는 5.7%로 조사됐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경제와 성장,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없이는 우리의 미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뿌리 깊게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좀 더 지속가능해지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점도 바로 이 성장 중심의 경제관”이라며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같은 생태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만을 숭배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챙기는 극단적 시장주의가 두 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2015년 지구촌 193개 나라가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합의했다. 기후변화 대응, 불평등 감소 등 17개 목표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달성해 나가면서 경제·사회·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한겨레신문사는 오는 23~24일 ‘대전환 :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을 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 용산 서울드레곤시티호텔에서 열리는 포럼에선 세계적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특별강연을 하고, 도시 및 노동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 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포럼에 앞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기업, 도시, 금융 등 3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나 문제의식을 담은 1부 기획기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국민 여론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분석한다. 이어 2부는 제러미 리프킨, 리처드 세넷 등 주요 연사의 사전 인터뷰 기사를 마련한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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