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코앞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및 증거인멸 의혹 수사가 치고 들어오는 가운데 삼성그룹은 내부로부터 요동치고 있다. ‘이건희 체제’의 경직된 조직이 정상화되어가는 반면 총수 일가만을 위한 구태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으면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재계와 법조계를 종합하면,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 진술’이다. 증거인멸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결정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 아래 공용서버를 숨겼다”는 취지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실무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이었다. 바이오 계열사에서 그룹 중심인 삼성전자로 수사가 확대되는 데에도 ‘내부 고백’이 바탕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리급 보안책임자가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의 지시를 받았다”고 언급한 것이다. 결국 수사당국이 ‘1차’ 지시자로 지목한 삼성전자 백아무개(54) 사업지원티에프 소속 상무와 서아무개(47) 보안선진화티에프 소속 상무가 지난 11일 구속됐다. 사업지원티에프는 과거 그룹을 총괄했던 삼성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서아무개 상무는 그룹 보안 업무를 책임져왔다.

백 상무는 구속 전까지는 자신보다 더 ‘윗선’의 존재를 부인하다가 구속 뒤 검찰에서는 ‘윗선의 지시’를 인정하는 쪽으로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상무의 직속 상사는 이 부회장의 최측근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팀장(사장)이다. 백 상무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커머셜본부 임원을 맡다 이례적으로 지난해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로 옮겨,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의 ‘뒷수습’을 맡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안에서는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임원과 실무진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행한 실무진은 사업지원티에프의 지시를 인정하지만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지난 22일 김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결정을 내릴 때도 내부 문건 제보가 ‘스모킹건’이 됐다.

이는 ‘일사천리’ 조직적 대응과 총수 일가를 위해 불법까지 일삼는 ‘무한 충성 경쟁’이 상징하던 과거 삼성그룹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를 비롯해 과거 삼성은 여러차례 사법당국의 칼날 앞에 놓였지만 이번처럼 총수 일가에 불리한 진술이 돌출된 적은 없었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본격 데뷔하자마자 불법 승계 논란을 겪고 구속되는 와중에 조직 장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이건희 시대’와 달리 시대상과 기업문화가 많이 달라졌음에도 총수 일가를 위한 증거인멸 등 과거 행태를 밀어붙이면서 내부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이상 불법을 불사하며 총수를 ‘보위’하는 기업문화가 삼성에서도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계 한 임원은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일이 까발려지고 그들이 재판까지 받게 되는 상황을 밑에 사람들이 실행 당시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삼성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 구속 사태를 겪으면서 느끼는 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증거인멸’ 행태에도 시대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들이 공장 바닥을 뜯고 숨긴 회사 공용서버 등은 최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됐다. 좀 더 ‘확실한’ 증거인멸이 시도되지 않은 점에 대해 삼성의 한 관계자는 “시스템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다 연결돼 있어 나중에 다시 연결시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 그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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