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방공항의 입지는 정치적 투쟁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지역개발 논리와 선거를 앞둔 중앙정치의 필요에 따라 서둘러 지어진 지방공항은 국가재정 운용에 부담이 되고 있다.
역대 정부는 지역개발 사업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공항 건설을 약속해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경북 예천공항이 개항했고, 김영삼 대통령 땐 강원 양양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됐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경북 울진공항이 들어섰다. 총선과 대선 등 정치 행사를 앞두고 내놓은 공약을 이행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들어선 지방공항의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이 완공된 뒤 예천공항은 수요를 찾기 어려워 2004년 결국 공항 간판을 뗐다. 지금은 군시설로 공군에 편입된 신세다. 울진공항은 천억원대 재정을 투입하고도 개항을 차일피일 미루다, 한국항공대학교 등이 비행훈련센터로 사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2002년 문을 연 양양공항은 개항 6년여 만인 2008년 정기노선이 하나도 없는 공항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국책사업의 ‘잔혹사’인 셈이다. 장밋빛 수요예측이 이 과정에 동원되곤 했다. 국토교통부가 2015년 발간한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등을 보면, 대표적인 적자 공항인 전남 무안공항의 사업 시행 전 수요예측치(1999년)는 연간 992만명에 이르렀다. 착공이 결정되고 수요예측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완공을 앞두고 시행된 수요예측(2006년)에선 연간 206만명의 이용객이 무안공항을 찾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난해 무안공항의 연간 이용객은 43만2천명에 그쳤다. 최초 수요예측치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적이다. 양양공항도 2000년 수요예측에서 200만명대 연간 이용객이 예상됐다. 지난해 양양공항의 실제 이용객은 3만7천여명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전국 지방공항 14곳은 애물단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지방공항 14곳 가운데 흑자를 기록한 공항은 김포·김해·제주·대구공항 등 4곳뿐이었다. 그나마 대구공항은 2015년까지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다 2016년에야 흑자로 돌아섰다.
182억6천만원의 운영 비용이 투입된 무안국제공항은 43억5천만원의 수익을 거둬 139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했다. 운영비가 각각 154억5천만원, 128억4천만원 소요된 여수공항과 양양공항의 공항 운용 수익은 26억3천만원과 9억8천만원 수준이었다.
상대적으로 배후 인구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는 영남권 공항 역시 적자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울산공항은 비용 139억4천만원 투입에 수익 23억3천만원을 거뒀고, 포항공항은 비용 112억7천만원을 들여 수익 6억3천만원을 올렸다.
이에 정부는 수차례 지방공항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수요를 늘리려 노력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2015년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지방공항 활성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고, 중국인 관광객 급감에 대응해 2017년 4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또 2017년 12월에는 지방공항 활성화 티에프(TF)를 구성해 항공 수요 개발과 노선 다변화를 추진했다. 정부는 지난해 신규 국제선을 취항하는 항공사에 지원하는 금액을 노선당 최대 8억원으로 확대했다. 공항별 맞춤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무안공항의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남도 한바퀴’ 등 관광순환버스를 개발하고, 청주공항 활성화를 위해 ‘내륙의 바다 호수 여행’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광주·목포·대전 등 지방공항 배후 도심지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셔틀버스를 증편하는 등 교통대책도 마련했다. ‘한류’를 활용한 프로모션도 검토됐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는 미지수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지방공항의 경우 배후 수요가 미비한 상황인데다 도로·철도 등 광역교통망이 발전하면서 국내선 수요가 갈수록 줄어드는 점에서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부담을 공유하거나 민간자본이 참여해 활용도를 다각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저비용항공사 등에 의한 국내선 수요 창출이 상당히 이뤄진 상황에서 신규 항공 수요를 개발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교통학)는 “장래 인구 추계 등을 감안할 때 새만금공항 등 신규 검토되는 지방공항의 수요가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선 여객 비중이 높은 지방공항의 현실에서 전국 단위 광역교통망의 연결이 수요 감소를 부채질한다는 점 역시 예측 가능한 미래다. 실제 케이티엑스(KTX) 개통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던 대구공항은 1989~2003년까지 김포~대구 노선 이용객이 연평균 10.8% 증가하다가, 2004년 케이티엑스 개통과 함께 이용객이 82.8% 급감했다. 그 뒤 2007년에는 이 노선이 없어졌다. 2002년 4월 개항한 양양공항도 영동고속도로 확장 개통의 영향으로 일부 국내선 노선이 중단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는 항공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수요예측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국내 입지를 중심으로 한 수요예측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일본과 중국의 항공운송산업 정책 변화 및 공항개발 현황’ 보고서는 공항의 국제선 수요 개발을 위해서는 수요예측에 있어서 네트워크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세계 각 공항은 항공사들이 개발 운용하는 수만개 노선의 네트워크에 놓인 한 점이기 때문에, 국내 입지 조건뿐만 아니라, 전체 항공망 네트워크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를 수요예측의 주요한 요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는 “외국은 공항, 철도 역사 등 교통 결절점을 중심으로 오피스 단지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 일부에 모든 금융, 기업과 상권이 집적돼 있는 한국 현실에서는 지방에 공항을 짓는다고 이들 기능이 옮겨갈 가능성은 낮다”며 “국토균형발전을 근거로 지방공항을 건설하는 구상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간 유치 경쟁과 소모적 갈등을 매듭짓기 위한 제도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제안한 국책사업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선거 때마다 대규모 토건사업 공약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제적 타당성과 전문가들의 객관적 검증을 토대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선거철에 무분별하게 이뤄진 공약이 국책사업으로 굳어지고 향후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검증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개별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수요예측이 부풀려지는 경우도 많고 새만금공항처럼 예타 면제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어 최소한의 전문가 검증을 거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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