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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서 ‘신공항 갈등’…“정치 논리 빼야 풀린다”

등록 2019-02-19 04:59수정 2019-02-19 07:14

계획 재검증 가능성 높은 김해
입지 심사 조작 주장 나온 제주2
유령 공항 전락 우려 큰 새만금
군 공항 통합 반대하는 무안·광주
시민들 의견 갈린 대구 통합 공항

전문가 “정치 논리 너무 커선 안돼”
“지방정부는 공항 유치만 하고 ‘뒷짐’”
“지방정부 책임감 갖게 비용 분담”
“주민과 정보 공유해 갈등 줄여야”
“새만금 등 수요 없는 공항은 안해야”
현재의 김해공항.
현재의 김해공항.
부산과 제주, 새만금, 무안, 대구 등 전국에서 추진 중인 신공항 사업들이 중앙-지방 정부 간 이견이나 주민들의 반대, 주민 간의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김해신공항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총리실의 사업 검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다시 뜨거워졌다. 문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고 애초 부산이 요구한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공항 입지 선정 설명회가 주민 반대로 무산된 제주 제2공항 사업은 자칫 ‘제2의 해군기지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1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로 허용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은 지방에 또 하나의 유령 공항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무안, 대구 통합공항도 지역 간, 지역 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공항 건설 같은 대규모 사업을 경제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정치 논리만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은 부산을 방문해 “(김해신공항과 관련해)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로 넘겨 결정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하느라 다시 사업이 표류하거나 늦어져서는 안 된다. 가급적 이른 시일에 결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김해신공항과 관련해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김해신공항은 애초 계획한 2026년 개항이 불투명해졌다. 부산·울산·경남과 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을 두고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현 김해공항 2개의 활주로 서쪽으로 40도 틀어서 브이(V)자 모양의 새 활주로 1개를 신설하는 김해신공항 계획안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부·울·경은 김해신공항 계획을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결과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무총리실에 재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김해신공항 조감도. 국토교통부
김해신공항 조감도. 국토교통부
부·울·경에서 김해신공항을 반대하는 이유는 북아메리카·유럽 등 장거리 노선 운행을 위한 24시간 공항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장거리 노선이 운행하려면 활주로 길이가 3800m 이상이어야 하는데 김해신공항은 3200m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소음 피해 규모도 연구기관이 예측한 2700가구가 아닌 3만가구 이상이며,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왼쪽으로 22도를 꺾어서 비행하면 사고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애초 국토부는 김해신공항의 추진 계획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특히 영남권 신공항은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절충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지난해 6월 기자간담회에서 “(김해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김해신공항에 대해 문 대통령이 총리실에서의 검토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국토부로서도 김해신공항의 전면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강정기지 갈등 연상시키는 제주2공항

제주 제2공항은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밀어붙여 심각한 후유증을 빚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국토부는 2015년 2월 현 제주국제공항의 포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4조8700억원을 들여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온평리 등 일대 496만㎡에 연간 2500만명의 항공수요 처리를 위한 제주 2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업 초기부터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 5년째 진통이 이어진다.

지난 14일 국토부는 성산읍 성산일출봉농협 2층 대회의실에서 권용복 항공정책실장 등 국토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 제2공항 도민설명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반대 주민들이 행사장을 봉쇄해 무산됐다.

제주도청 정문 맞은편 인도에는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여러 단체의 천막농성장이 설치돼 제2공항을 반대하고 있다.
제주도청 정문 맞은편 인도에는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여러 단체의 천막농성장이 설치돼 제2공항을 반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와 제주 제2공항 반대 범도민행동은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산 후보지 선정은 부실과 조작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사전타당성 최종 평가 결과에서 사전타당성 용역팀이 신도2 후보지 위치를 이동시키는 바람에 성산 후보지가 89점으로 1위, 신도2 후보지가 70.5점으로 2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반대 단체들은 제주도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국토부의 제주 설명회가 끝나면 제주도의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설명회가 무산되면서 입장 발표도 늦어지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는 마을대책위원회가 내건 제2공항 반대 펼침막이 여러곳에 나붙어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는 마을대책위원회가 내건 제2공항 반대 펼침막이 여러곳에 나붙어 있다.
■ 잘못된 시작, 새만금국제공항

지난 1월29일 예타 면제 대상으로 발표된, 사업비 8천억원 규모의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은 오랫동안 전북도의 숙원이었다. 도는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국제공항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지만 그에 대한 우려 역시 높았다. 전북도는 국제공항을 통해 새만금에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하고,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권용석 전주대 교수는 “전북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지엠(GM) 군산공장이 잇따라 폐쇄돼,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새만금 국제공항의 건설과 상용차 사업 등의 유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새만금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새만금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그러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매우 크다. 공항의 여객 수요부터 전북도와 국토부가 3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전북도는 새만금 공항의 여객 수요를 2030년 402만명으로 예상했지만 국토부는 133만명으로 예측한 것이다. 바로 옆에 국내선 전용인 군산공항이 있고, 2시간 거리에 국제공항인 무안공항, 청주공항이 있어 새만금 공항에 그만한 수요가 있을지가 무엇보다 불투명하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새만금 국제공항의 수요 조사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것이다. 기업 유치 부진 등 상황을 고려하면 다른 지방 공항처럼 불 꺼진 공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 통합도 어려워…무안·광주, 대구 공항

무안-광주와 대구의 공항 통합도 가시밭길이다. 2007년 개항한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은 당시 광주공항의 국제·국내선을 모두 이전하기로 했으나 광주시의 반대로 국제선만 옮겨갔다. 이후 두 공항이 따로 운영돼 무안공항은 1년 이용객이 10만~30만명에 그치고 있다. 적자 규모도 2013년 76억원에서 2017년 139억원으로 2배로 늘었다.

공멸 위기를 느낀 광주-전남-무안은 지난해 8월 광주-무안 공항의 국내-국제-군 공항 통합에 합의했다. 이를 위해 354억원을 들여 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를 늘리기로 했다. 남창규 전남도 도로교통과장은 “통합 이후 한해 이용객을 23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제는 군 공항 이전을 무안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점이다. 무안 주민들은 지난달 30일 광주의 군 공항 이전에 반대하는 대책위를 꾸리고 “후손들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며 반대운동을 선언했다.

지난 61년 개항한 대구공항은 군 공항과 활주로를 함께 사용하고 있고,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돼왔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7월 대구공항과 군 공항의 동시 이전 계획이 발표됐고, 국방부는 지난해 3월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을 후보지 2곳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대구 시민의 의견이 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변 주민들은 “소음 때문에 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나, “공항을 밖으로 옮기면 이용이 불편하다”는 시민도 적지 않다. 대구공항을 그대로 두든지, 아니면 소음의 주범인 군 공항만 이전하자는 의견이 나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 “정치 논리 줄이고, 갈등 관리해야”

항공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공항 건설과 이전 결정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종 한국항공정책연구소 고문은 “정치적 판단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 활용되지 못하는 공항이 만들어진다. 무안공항과 양양공항 등 많은 지방 공항이 그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공항 사업은 국토부가 짓고 공항공사가 운영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유치만 하면 책임질 일이 없다. 앞으로 공항 건설 남발을 막으려면 지방정부도 건설 예산을 투입하거나 운영비를 대는 등 참여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항 건설 과정에서 갈등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제주 2공항은 처음부터 국토부와 주민 간에 심각한 갈등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제주도에 2공항이 필요한지를 다시 판단해야 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김해신공항 문제도 국토부와 주민, 전문가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안-광주 통합 공항이나 대구 통합 공항 역시 갈등 해소가 최우선 과제다.

예타 면제를 받은 새만금 공항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반대 의견이 강했다. 허 고문은 “누가 보더라도 공항 수요가 없는 곳이고, 공항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지역 숙원이라고 무조건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허 교수도 “전국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10곳이 적자다. 전문가들이 볼 때 새만금 공항은 실패할 가능성이 100%”라고 말했다.

허호준 구대선 안관옥 박임근 김광수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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