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29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시한을 앞두고 브렉시트(Brexit)가 혼돈을 지속하는 가운데 관세·무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허브 런던’의 위상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독일·프랑스·네덜란드가 유럽 금융거점을 이참에 파리·암스테르담·프랑크푸르트로 옮겨오려는 금융패권 경쟁에 돌입하면서 ‘시티 오브 런던’으로 상징되는 기존 판도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의 타결 여부와 상관없이 금융서비스에 대한 자유로운 이동·접근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로 ‘금융 영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유로화 거래·청산 및 파생상품 트레이딩이다. 런던에는 세계 최대의 파생금융상품 청산결제 거래소인 ‘런던 클리어링 하우스(LCH·런던청산소)’가 있다. 전세계 이자율스왑(금리변동 위험 회피)거래의 90~95%가량을 소화하는 장외 파생상품 청산 거래소로, 유로화 거래 청산 기능을 거의 독점해왔다. 런던에는 국제상업거래소(ICE)·런던금속거래소(LME)·엘시에이치 같은 상품거래 청산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브렉시트 파동 국면에서 유럽집행위원회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리스왑 등 장외파생상품 청산소는 유럽지역 본토 안에 두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영국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집행위는 다만, 기존 거래계약 중단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유럽 은행들의 런던청산소 접근·이용권을 앞으로 1년간은 계속 보장하겠다”며 한시적 ‘브렉시트 금융충격’ 완화 조처를 내놓으며 안심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존 계약을 서서히 종료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뿐 유로화 청산·중개 기능이 유럽 본토로 이전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도이체방크는 작년 7월에 유로화 청산업무의 절반가량을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산소 이전에 따라 기존 거래계약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거래관계 지속을 도모하려고 글로벌 은행마다 대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런던청산소뿐 아니라 금융업 전반에 걸쳐 영국이 ‘런던 이탈’ 같은 브렉시트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은행권의 유럽연합 역내 대출금액이 1조4천억달러에 육박하고, 미국 대형투자은행들이 유럽연합 내에 고용한 인력 중 87%가 런던에 있을 정도로 런던이 유럽 금융활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미 브렉시트 불확실성을 줄이고 유럽 내 원활한 영업을 보장받기 위해 런던 이외의 유럽본토에 선제적으로 자회사 설립인가를 신청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작년 11월까지 모건스탠리·시티·노무라·다이와 등 25개 은행(비은행투자회사까지 37개)이 유럽연합 내 개별 국가 금융당국에 자회사 인가를 신청했거나 허가 필증을 발급받았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대표적 은행인 알비에스(RBS)도 기존 프랑크푸르트 지점을 본부로 격상할 예정이다.
일부 은행은 인력과 자산도 옮겨 재배치하고 있다. 런던에 본사를 둔 대형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최근 222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작년 11월까지 홍콩상하이은행(HSBC)·유비에스(UBS)·바클레이즈(Barclays) 등 80여개의 영국 은행 및 금융회사가 약 1조달러에 이르는 자산·인력을 파리·프랑크푸르트·암스테르담·더블린 등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검토중이다. 또 소시에테제너랄을 비롯한 글로벌 대형은행들도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유럽연합 본토로 총 5000여명의 인력을 이동시켰고, 주식·국채·환매조건부채권 등 유가증권 트레이딩 인프라의 상당부분을 네덜란드로 재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급기야 네덜란드 금융규제당국은 “브렉시트는 유럽 자본시장 구도 자체를 바꾸는 이벤트”라며 영국에서 이탈하는 자본거래 중 30~40%가 네덜란드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렉시트 국면이라는 ‘기회’를 맞아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유럽연합 회원국마다 런던이 그동안 누려온 금융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패권 다툼에 돌입한 형국이다.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 등 미국계 투자은행도 가세해 런던 이외에 파리·프랑크푸르트·룩셈부르크·더블린에 ‘다중 금융거점’을 구축하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외교 민간싱크탱크인 ‘스트래트포’는 “런던 중심이던 유럽 금융부문이 브렉시트에 따라 각국으로 분절되면서 금융서비스 효율성이 떨어지고 거래비용은 높아지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런던이 ‘전세계 금융 연결통로’의 중심지 기능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는 “유로화 거래 청산 등 런던이 해온 일부 기능은 유럽연합 내 다른 도시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런던은 금융허브 생태계 측면에서 볼때 우수한 비즈니스·규제환경과 인프라·언어 등 복합적이고 고유한 비교우위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유럽 영업을 위해 거점을 이동시키더라도 핵심인력과 업무는 런던에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크푸르트·파리·암스테르담 등 유럽 내 다른 도시가 런던의 위상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쪽은 “런던 등 유럽에 사무소를 두고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 및 금리스왑 거래 등을 하고 있는 국내은행들의 영업에 브렉시트가 미칠 파장을 파악해봤는데, 직접적인 파급 영향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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