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와 상장 준비가 이뤄지던 시기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고위 임원이 삼성바이오 내부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임원은 그룹 쪽 지시를 삼성바이오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금융당국과 삼성바이오 쪽 얘기를 종합하면, 김용관 삼성전자 부사장은 2014년 10월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감사가 됐다. 삼성바이오 경영 및 회계 장부 등을 감사하는 역할이다. 당시 김 부사장은 삼성그룹 미전실 전략팀 임원이었지만 이때부터 2016년 8월까지 삼성바이오 감사를 겸임했다. 당시 미전실 전략팀은 인수합병(M&A)이나 그룹 지배구조 문제 등을 조율하는 일을 했다.
김 부사장은 2년 가까이 삼성바이오 감사를 맡다가 삼성바이오가 주식시장에 상장되기 직전인 2016년 8월 그만뒀다. 삼성바이오 쪽은 그가 “상근 감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이 삼성바이오 감사를 맡은 시기는 삼성바이오가 회계장부를 고의로 조작한 시기와 겹친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말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4조5000억원 규모의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금융당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정적인 그룹 지배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추진됐고,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사장이 미전실 소속이라는 점과 삼성바이오 감사를 맡은 시기 등을 볼 때, 그가 단순한 감사 임무 이상을 수행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삼성바이오는 고의 분식으로 판정된 ‘콜옵션 평가’ 회계처리 방안을 2015년 11월 그룹 미전실에 전자우편으로 보고한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미전실 고위 임원이 주력인 전자 계열사 감사로 가는 경우는 있지만, 소규모 비전자 계열사 감사를 맡는 건 이례적이다. 한 삼성그룹 임직원은 <한겨레>에 “미전실 소속 김용관 부사장이 그룹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 직접 삼성바이오로 지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오랜 검찰 수사를 받은 경험으로,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 중 민감한 것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조사한 금융감독원은 김 부사장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기도 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김 부사장이 삼성바이오 감사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 부사장에 대한 징계를 검토했다. 그러나 관련 법령이 구비되지 않아 징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분식회계에 대한 징계 규정을 담은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보면, 대표이사 등과 달리 내부 감사에 대한 징계 규정은 2016년 6월에야 도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회사 대표와 외부 회계법인 등만 징계할 수 있었다.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에 그룹 미전실의 관여 여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의 핵심적인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지난주부터 삼성바이오와 삼성물산 등의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대규모로 확보했다. 김 부사장은 지난 5월 투기자본감시센터에 의해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당한 26명 중 한명이다. 김 부사장은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외국 출장 중”이라고 했고, 문자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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