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으로 4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발표를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한국거래소가 대규모 고의 분식회계가 드러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상장유지 및 거래재개 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상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지침)에 따른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2일 금융위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은 삼성바이오의 상장폐지 가능성을 낮게 보는 발언을 거듭해왔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사실을 발표한 뒤 기자브리핑에서 “거래소에서 2009년 2월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제도 도입 이후 회계처리 기준 위반으로 실질심사를 받은 16개 회사 가운데 상장폐지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삼성바이오 주식 매매거래 정지와 관련해 “거래소가 실질심사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고, 거래소에 시장 불확실성이 오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바이오가 재무제표를 수정하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지 않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는 “2017년 말 기준으로 자본잠식 상태가 아니어서 상장유지 조건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장유지 전망을 내비쳤다.
김 부위원장의 이런 발언들이 가이드라인과 같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금융위 부위원장이 이렇게 말하는데 거래소가 어떻게 상장폐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냐”고 했다.
참여연대 쪽은 더욱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김경률 참여연대 회계사는 “김 부위원장의 발언들이 거래소에 삼성바이오 상장유지 및 거래재개를 신속히 결정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면 거래소가 고의 분식회계 결정 뒤 불과 한달도 안돼 상장유지 및 거래재개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김 부위원장의 발언이 독자적인 것일 가능성이 낮고 정무위 소속 복수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삼바에 유리해 보이는 질문을 한 점 등을 들어, 정부·여당도 무관하지 않은 사안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이런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일체의 가이드라인을 준 적 없고, 거래소가 본연의 역할을 한 것”이라며 “(분식회계 기업 중 상장폐지 전례는 없다는 발언 관련) 과거 사례를 있는 그대로 밝힌 것을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확대 해석”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답변은 “의원들의 질의가 있어서 답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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