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사회혁신 교육자 네트워크’(ENSI)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찾은 식스(SIX)의 줄리 멍크 총괄매니저.
“안전한 공간이다.”
“사회혁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글로벌 사회혁신가 네트워크인 ‘식스’(SIX. Social Innovation Exchange)의 총괄매니저 줄리 멍크가 지난 2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힘차게 들려준 말이다. ‘안전한 공간’은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새로운 도전과 그에 따른 실패도 용납되는 공간을 말한다.
멍크 매니저가 ‘안전한 공간’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 변화는 결코 특출난 한 사람이나 사회혁신 전문 기관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스는 사회적기업 육성 기관의 원조 격인 영국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 내의 한 프로젝트로 2008년 시작했다가 2013년 별도 기관으로 독립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며 그 성과를 평가한 결과, 변화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전문 기관의 노력과 더불어 기업·정부 등 다양한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은 결과다.
“분야 간 통역이 제일 중요하다.” 협력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소통의 벽을 허무는 게 급선무였다. 분명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도, 비영리나 사회적 경제 조직, 기업, 학계 등 저마다 몸담은 분야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식스는 여기에 주목했다. ‘서머 스쿨’(Summer School), ‘웨이 파인더’(Way Finder), ‘언유주얼 서스펙트’(Unusual Suspect) 등 참석자나 진행 방식, 기간이 다른 사회혁신가들의 만남의 장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꾸준히 여는 이유다. 이런 소통 노력은 혁신가들이 상대방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고민을 나누며 장벽을 낮춰, 서로서로 지지하는 동그라미 안에 들어오게끔 했다.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몰랐던 이들도 자신을 ‘사회혁신가’로 자각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이들이 특히 주목한 건 대학이다. 멍크 매니저는 “안전한 공간은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실패를 무릅쓰고 사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란 두가지 뜻이 있다”며 “대학은 이 두 역할 모두가 가능할 뿐 아니라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대학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은 단순한 학점 따기 공부에서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게 됐다. 연구자들도 극소수만 읽는 논문이 아니라 세상에 쓰이고 읽히는 연구를 하는 기쁨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공존하고, 지역 사회에도 기여하며 평판과 경쟁력을 올리게 됐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등 다양한 지역의 대학이 식스 네트워크에 참여해 ‘사회 혁신 랩’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혁신은 해법(Solution)이 아니라 답(Answer)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빠르고 쉬운 해법을 찾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찾는 각자의 질문에 ‘따로 또 같이’ 답하는 먼 여정 자체가 혁신이란 뜻이다. 성과를 단기간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도 경험으로 배웠다. ‘성공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단기적·양적 측정 방식은 사람들을 위험을 감수하며 ‘안전한 공간’ 밖으로 나올 수 없게 한다. 먼 여정을 떠날 용기를 없앤다. “각자가 안락한 영역에서 나와 도전하고, 실패해도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쌓이면 결국 사회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것이다.” 멍크 매니저의 조언이다.
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