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대책 긴급점검
③ 세입자 주거안정은 뒷전
마포 전세아파트 2년 새 1억↑
집값 폭등, 무주택자에 직격탄
세입자 평균 거주 3.4년 그쳐
전월세상한제·임대계약갱신권
당론 걸었던 민주, 집권 뒤 주저
집주인 의식해 임대등록제 우회
세입자 보호·집값 안정 다 놓쳐
“독일처럼 임차권 보장 강화해야
수도권 등 특성 맞춤형 대책을”
③ 세입자 주거안정은 뒷전
마포 전세아파트 2년 새 1억↑
집값 폭등, 무주택자에 직격탄
세입자 평균 거주 3.4년 그쳐
전월세상한제·임대계약갱신권
당론 걸었던 민주, 집권 뒤 주저
집주인 의식해 임대등록제 우회
세입자 보호·집값 안정 다 놓쳐
“독일처럼 임차권 보장 강화해야
수도권 등 특성 맞춤형 대책을”
서울 영등포구의 18평(전용면적 41㎡) 아파트에 사는 김동주(가명·36)씨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이맘때는 아이가 태어나기 때문에 더 큰 집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큰 집은 고사하고 서울 바깥으로 밀려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전세보증금 1억9500만원을 내고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김씨의 월급이 오르는 속도에 견줘 집값이 뛰는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소형 주택이어서 집값이 폭등한 지역에 견주면 나은 편이지만, 그가 사는 아파트의 매맷값도 최근 반년 새 5천만원 가까이 올랐다. 전셋값도 지금은 2억2천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그는 내년에 전세보증금이 얼마나 오를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고삐 풀린 서울 집값을 잡으려고 총력 대응에 나선 상황이지만, 뛰는 집값을 바라보며 전월셋값 상승을 우려하는 세입자들은 정책당국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등록 제도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세입자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등 좀더 강력한 정책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집값 상승으로 인한 타격은 무주택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임대료 폭등으로 무주택자들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2016년 서울 전셋값은 10년 전인 2006년에 견줘 무려 79.8%가 뛰었다. 같은 기간 32.3% 오른 매맷값 인상 속도보다 훨씬 더 가팔랐던 셈이다. 집값 오름세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뒤이어 임대료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간 것이다.
최근 집값 급등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미 가격이 크게 뛴 일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전셋값 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최근 이사철을 맞아 2년 전 6억원대였던 전셋값이 1억원 이상 올랐다. 지난 2월 이후 넉달 연속 내림세였던 서울 전세가격지수도 7월에 0.06% 오르더니 8월에는 상승폭이 0.2%로 확대됐다. 8월 매맷값 상승폭(0.63%)에 견줘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향후 집값 상승분이 전셋값에 반영되면 가파른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집값이 오르면 주택 마련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게 되고 이에 따라 전세 수요가 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셋값도 많이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입자들의 불안심리가 커지면 당장 주택을 살 생각이 없던 이들도 대출을 받아 매수에 나서게 하는 등 가수요를 끌어올려 집값 불안을 더 촉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전체 가구 중 절반가량이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독일의 경우 세입자의 평균 거주기간이 12.8년(2009년 기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3.4년(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수도권 전체 가구의 40%가 2년 이내에 주거를 옮기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현재 2년 단위인 임차기간이 만료된 뒤 세입자에게 1~2회 계약을 갱신할 권리를 줘 최소 4~6년 정도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하고,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상승을 연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하지만 집권당이 된 뒤엔 이런 세입자 보호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는 대신 집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임대주택 등록을 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전국 가구의 55%에 이르는 주택 소유자들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조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자발적 등록을 유도해 등록임대주택이 많아지면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집주인은 4년 또는 8년간 임차인의 거주를 보장하면서 임대료 상승률을 연 5%로 제한당한다. 대신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임대소득세, 건강보험료를 감면받고 신규 대출 등에서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시행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부작용이 드러났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혜택이 과도해 오히려 투기세력에 악용되고 있다”며 신규 주택에 대한 혜택을 일부 축소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등을 통해 양도세 중과 등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를 강화한 상태에서 등록임대주택이 이런 규제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 것이다. 정공법 대신 우회로를 택하면서, 임차인 보호와 집값 안정이라는 두 토끼를 모두 놓쳤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등록을 의무화하거나 전월세상한제 등 임차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쪽으로 대책을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불필요한 특혜를 줄 것 없이 임대 등록을 의무화하면 다주택자의 임대주택을 제도권 내에서 관리하는 동시에 임차인의 주거권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전체적인 세입자 보호정책이 어그러졌다”며 “계약갱신을 한두차례 인정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임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대주택 문제가 심각한 수도권 및 대도시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임차인 보호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길 필요성도 제기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시장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제도를 중앙에서 만든 뒤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주는 정도로 하면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선 이 제도가 일시적인 임대료 폭등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소 임대차계약 기간을 2년까지 보장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1989년 통과된 뒤 전셋값이 1년 만에 16.8% 폭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선후관계가 바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셋값은 1988년 13.2%, 1989년에 17.5%가 상승하는 등 이미 폭등하는 상태였기에 법 개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경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임대차 제도가 도입될 경우 단기간에 임대료가 급등하는 부작용이 나타날지 여부는 도입해보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며 “여러 요소를 고려해 제도 설계를 정교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
허승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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