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권 뒤 줄곧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데다 최근 경기둔화와 고용부진 사정을 고려해, 내년 일자리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애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해마다 7.5%씩 감축하기로 한 계획을 일부 수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정부가 주력산업 부진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정비하는 데 미진하고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위한 중장기 일자리 정책도 부실한 상황에서 ‘땜질식 처방’만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2%(4조2천억원) 늘어난 23조5천억원에 이른다. 노인 일자리 61만개와 여성 친화적 일자리 13만6천개, 장애인 일자리 2만개 등 취업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90만개 이상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보육교사와 성폭력 피해 지원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9만4천개와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3만6천명도 확충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영세 사업주의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예산은 내년에 2조8200억원 잡혔다. 올해 예산(2조9700억원)보다 1500억원 정도 줄었지만, 대상(노동자 기준)은 30인 미만 사업장 기준 월급 210만원 미만으로 확대했다. 예산이 줄었는데도 지급 대상이 늘어난 것은 올해 관련 예산이 과잉 산정된 탓이다.
2015년 이후 감소세인 산업 예산은 내년에 14.3% 늘어, 정부가 분류하는 12개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산업위기지역 지원 예산을 5958억원에서 1조875억원으로 82.5%(4917억원) 늘렸고, 낡은 산업단지 23곳을 청년이 일하고 싶은 공간으로 지원하는 데도 올해보다 4배 늘린 6522억원을 투입한다. 재정이 민간 투자·고용을 촉진할 마중물 구실을 하겠다는 의도다.
전통적 의미의 토목·건설 에스오시 예산을 줄여가기로 한 애초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정부는 내년에 에스오시 예산을 올해(19조원)와 비슷한 수준인 18조5천억원 배정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공공주택 등의 건설투자에다 도서관·체육시설 등 지역밀착형 사업(생활 에스오시)까지 잡혀 있어, 사실상 에스오시 예산은 올해 32조8천억원에서 내년에 36조6천억원으로 11.6% 늘어난다.
이처럼 정부가 나라 곳간을 푸는 배경에는 고용 부진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30만명을 웃돌던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 2월부터 10만명대로 감소했고 지난달에는 5천명으로 주저앉았다. 임시·일용직, 영세 자영업자 등 저임금 일자리 위주로 고용이 줄어들자 정부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가 두드러지는 건설투자와 직접 일자리 확대를 해법으로 내세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정지출을 크게 확대했는데도 명확한 정책 방향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지난해와 올해 이미 일자리 예산 38조원을 집행하는데도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산업 예산 증가율이 제일 높은데, 산업은 애초 재정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재정은 본연의 기능인 복지와 교육, 의료, 주거 등에 더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자리 확충을 위한 종합계획을 내놓고 있지 않다. 연령·직종별로 세부적인 대책을 마련한 뒤 그에 맞게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자영업이 힘들다고 하면 자영업자 비용을 줄여주는 대책에 돈을 일단 넣고 보는 식으로, 전체적인 방향성 없이 땜질식으로 재정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은주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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