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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론화위가 ‘의회 패싱’이 아닌 이유

등록 2017-08-20 16:28수정 2017-08-20 19:53

한겨레·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공동기획
공론화, 성공의 로드맵을 짜자 ④한국형 공론화 모델 만들자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자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론화에 반발하는 쪽의 핵심 주장은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이 원전 정책과 같은 기술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옳지 않다”는 점과, 설혹 참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절차적 차원에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있는데 시민들이 공적 의사결정의 직접적 주체로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소수 전문가와 관료가 폐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이른바 ‘기술관료주의’에 뼈대를 둬 왔다. 시민은 단지 교육과 계몽의 대상일 뿐,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지적 능력이 결여돼 중요한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 ‘엘리트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처럼 논쟁적이고 갈등 유발적인 위험기술에 대한 정책 결정에서 직간접적 이해당사자인 일반 시민과 지역 주민, 그리고 주류 전문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전문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가 정책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위배된다. 군부 독재만이 아니라 전문가 독재도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화 시대에 들어와 빈발하고 있는 사회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여기에 있다.

“‘공론화’ 반대 바탕엔 엘리트주의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환경 등
공공정책 결정에 시민참여 확대는 대세”

그런 탓에 전세계적으로 20세기 후반부터 해법을 꾸준히 찾아왔다. 핵심은 시민 참여의 확대와 심화다. 지난 30여년 동안 공공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화를 위해 합의회의와 시민배심원회의, 공론조사, 시민의회 등 다양한 방식의 시민 참여가 고안되고 실행됐다. 이를 통해 균형 잡힌 정보가 제공되고 숙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일반 시민들도 놀라운 학습능력과 합리적 의사결정능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환경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정보공개와 공공참여를 거쳐야 한다”는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이 유엔(UN) 주도 아래 만들어지고, 많은 나라가 가입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이제 공공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있는데 시민이 정책결정에 직접 나서면 안 된다”는 주장도 생각해 보자. 물론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다. 대부분의 경우 시민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국회가 시민의 뜻을 헤아리고 대변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국회가 있어도 때에 따라서 주민투표나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전문가와 관료만이 아니라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원전 문제처럼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포괄적 이해당사자인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탈핵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게 아니듯,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게 아니다.

그동안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수많은 ‘시민 참여’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들러리’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공론화에 참가하는 시민에게 부여된 ‘실질적’ 결정권은 시민 참여,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국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공공정책 결정에서 시민 참여의 최고 형태인 시민적 통제력이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광장에서 시작한 촛불시민혁명이 원탁에서 마무리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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