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열린 마을총회의 분과별 의제 발표 모습. 서울시 제공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도시재생 뉴딜과 사회적경제 연계방안’ 을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매년 10조원씩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500여 곳의 노후 지역을 재생하는 사업이다. 새 정부의 대표적인 일자리 부양, 지역활성화 정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역재생 사업이 어떤 점에서 사회적경제와 연결이 될까? 지역 활성화 사업이 어떻게 일자리 창출과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일찍이 간디는 마을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마을 공화국’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인도 전역에는 70만개의 마을이 있었다. 간디는 이들 마을이 각각 자급자족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서로 협력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작은 마을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잊혀졌던 마을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캐나다의 퀘백과 같은 크고 작은 여러 협동조합들로 이뤄진 지역 단위 경제공동체의 회복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기반의 공동체 운동의 흐름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는 당시 행정안전부의 ‘자립형 지역공동체 사업’,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마을기업’ 정책이 시행되었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일자리 창출, 복지 제공 등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움직임이었다. 정부도 시장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실업, 복지 등 사회문제를 지역주민들이 공동의 마을자원을 바탕으로 풀어가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지자체마다 다양한 마을공동체 사업을 펼쳤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을 살펴보면, 2016년까지 13만명, 서울 인구의 약 1%가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2016년 마을공동체 되돌아보기 발표 자료집’ 참고). 이러한 마을활동은 어떠한 성과를 만들었을까? 5월18일 서울시와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마을이 답하다-마을공동체 성과풀이’ 포럼에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강세진 박사는 1천만원을 지원하면 약 5천6백만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강 박사에 따르면,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요소 (주민, 커뮤니티 공간, 마을협력체, 내부·외부업체)가 상호 연결되며 마을관계망이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주민들은 마을살이의 제공자 겸 참여자가 되고 이들 사이에 우호적이거나 비경제적인 거래가 이뤄진다. 마을 내·외부 매출 증대, 주민 소득 증대, 마을활동에 참여하는 시간 등을 포함할 경우 처음 투입된 자원 대비 5.6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사회경제적효과. 자료: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마을공동체는 규모화 체계화되며 사회적경제와 연결된다
마을공동체는 이처럼 다양한 측면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거둘 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은 “마을공동체 활동이 규모화되고 체계화되면서 경제적 행위와의 결합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마을 안에서의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동아리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 마을활동들이 지속되려면 경제활동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마을공동체사업비는 초기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마중물 차원의 금액이기에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자립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과시간 이후의 만남, 자발적인 자원봉사만으로는 꾸려가기 어려운 규모가 된다. 사업을 기획하고 관리할 상근자가 필요하다. 이렇듯 관계를 기반으로 시작한 마을활동은 마을의 소비, 생산과 결합되며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경제공동체로서 사회적경제와 연결된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카페, 마을식당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지역사회가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며 만들어가는 경제, 바로 사회적경제이다.
그렇다고 마을단위의 주민들이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영업 사업체만은 아니다. 오히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접점은 공공의 영역이 더 크다. 마을 안의 부족한 사회서비스, 틈새 복지를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서 적재적소에 풀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소수의 주민들만의 필요는 아니기에 공공성이 입증될 경우 공공의 자원이 결합될 수 있다. 행정에서 일방적으로 예산을 결정하고 사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계획되고 집행되는 것이다.
예산도 행정도 비전문가인 마을 주민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유창복 자문관은 “시민 자치 역량은 어느 순간 갑자기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성장해갈 수 있다”고 한다. 공공의 자원이기에 정치적인 입장도 역량도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모여 공동의 합의점을 공론의 장에서 만들어낸다. 마을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얼마나 주민 자치 역량이 성숙했을까? 2004년부터 동작구를 중심으로 지역활동을 통해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들어오고 있는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유호근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데 따른 부담을 확실히 덜 느낀다고 얘기한다. 이전에는 마을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도 어렵게 느껴지고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는 주민이 많았다. 지금은 행정에서도 문턱을 낮추고 주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어떠한 마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으로도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활동의 양적 증대가 가져온 변화도 크다고 한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민과 관의 관계가 얼마나 바뀌었는가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을 던진다. “주민들의 자치 역량이 성숙되기 위해서는 행정이 성과에 목을 매지 않고 기다려줘야 한다. 아래로부터 의견이 올라오도록 지켜보고 소통해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탑다운 방식, 성과위주의 태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관청과 해당 전문가들이 설계한 계획은 빠르게 성과를 낼 수는 있으나 정작 시민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는 방해가 된다. 유 국장은 “시민자산화도 이러한 기다림과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십시일반 자금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공자산의 위탁 관리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역량과 책임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민관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중요한 시기
마을주민들이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마을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의 예산 수립에까지 함께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민의 역량 향상과 함께 민과 관의 관계가 변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협력적 거버넌스로서 협치(協治, Collaborative Governance)를 얘기한다. 국회에서 여야간의 협치만이 아니라 민과 관의 관계도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청책), 민관이 함께 논의하여(숙의), 공동의 계획을 수립하고(계획),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조례·기구),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협치)으로 이뤄진다. 사실 시민들이 자치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에까지 참여하며 참여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아이디어는 최근의 일은 아니다. 참여예산제는 1989년 브라질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여러 도시들, 캐나다의 토론토, 미국의 시카고, 뉴욕 같은 도시들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당시의 안전행정부가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권장했다. 그리고 2011년 지방재정법이 개정됨에 따라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의무화되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이러한 의견이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이다. 다만 “제도만으로 참여가 자연스레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두텁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경우에도 2012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시행되어 올해로 6년째이다. 지난해까지 시민들로부터 총 1만967건(3조2617억원)의 사업을 제안받았고, 이 중 심의를 거쳐 1993건(2406억원)을 예산에 편성해 집행했다. 매년 약 500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별도의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큰 금액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울시 전체 예산의 0.2%에 불과하다.
김상철 위원이 지적한대로 참여는 비용을 수반한다. 형식적인 문턱을 낮추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은 정보, 시간, 역량을 갖춘 이들이다. 따라서 주민참여예산을 지역에서의 특정한 그룹의 민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주민들의 제안이 실제 집행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시민들의 역량이 쌓이고, 행정에서도 주민들의 참여를 이해하고 서로간의 신뢰가 쌓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신뢰의 근간으로 김 위원은 개방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그룹을 위한 제도 설계가 아닌 열린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열린 공간에서 공공성에 대한 입증, 역량의 입증을 토대로 토론하고 합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형에 따라 특정 그룹을 배제하기 위한 제도적 설계는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협치는 이미 시작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는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내 국민참여기구인 국민인수위원회를 두고 5월25일부터 50일간 ‘광화문 1번가’를 운영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현장접수를 받고, 온라인, 전화, 우편으로도 의견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국정과제로 총 15만건의 의견을 접수받았다.
신고리원전 5·6호기 최종 결정 역시 전문가나 행정, 국회가 아닌 시민의 공론에 달려있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최대 3개월 동안 여론 수렴을 거칠 예정이다. 공론조사 방식은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에 기초하는, 소위 ‘참여적 의사결정’의 한 형태이다.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사안에 대해 투명하고 충분한 정보제공과 공정한 숙의 과정의 공론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을 뽑았으니, 시장을 뽑았으니, 이제 알아서 하라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의견을 내고 감시를 하고, 함께 계획을 세워 나가고 정답이 없는 문제를 결정해간다. 정치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로서 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간다.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참여민주주의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행정도, 예산도, 사업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엇을 논하고 결정한다는 말인가?”라고 손사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주권자들이 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는 비전문가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끼리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대부분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지적된 것처럼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시도에는 여러 과제들이 있다. 서울연구원이 펴낸 <지역사회 기반 지역협치 모델 정립방안>에서도 협력적 거버넌스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시정주도 하방적 정책추진구조로 사업 효과 저해 △사업 중복되고 사업 간 분절화로 정책 비효율 △공공주도 협치사업 추진으로 불합리성 노정 △지역사회 역량 취약하고 주민 참여기회도 부족 △협치사업 형식주의화로 사업 실효성 약화 등이 지적되었다.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 달성을 위한 다양한 과제. 자료: 서울연구원 <서울형 협치모델 구축방안>(2015)
무엇보다도 행정의 성과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해진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주민이 동원되거나 빠르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제한된 주체들만의 참여로 이뤄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마을공동체사업이자 사회적경제사업인 ‘도시재생뉴딜’ 정책 역시 이러한 민관 협력적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도시재생시민활동가네트워크 준비모임은 지난 27일 ‘현장에서 바라본 도시재생뉴딜정책’ 포럼을 열었다. 네트워크는 포럼에 앞서 “1년에 100개, 10조원이라는 빠른 속도와 규모로 경쟁을 하면 엄청 느리고 또 느릴 수밖에 없는 지역주민과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시되거나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며 관주도로 흘러갈 수 있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300명의 지역공동체,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관련 시민단체와 활동가그룹, 관련기업 및 주민대표 등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속도에 대한 경계와 방향성에 대한 고찰이였다. 지역공동체가 점진적이고 자생적인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 현장의 목소리와 경험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웠던 ‘참여정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 참여는 단시간 내에, 일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참여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정보제공, 교육, 경험의 과정이 필요하다. 답을 정해놓고 진행되는 구색 맞추기식, 동원식 참여는 참여자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지난 한해 촛불집회를 거치며 국민들이 원한 것은 더 작은 단위에서 이뤄지는 더 많은 민주주의였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jusu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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