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부문 일자리의 양과 질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연말까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근무하는 약 1만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향후 지어질 제2청사 포함)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과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 또는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는 간접고용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간접고용은 사용자(기업)와 제공자(근로자) 간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사용자 간 외주 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업체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간접고용의 대표적인 예로는 용역, (하)도급, 위탁, 사내하청 등을 들 수 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근로자의 불법 파견을 막고자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사용자의 관리 책임과 사용 범위 등을 두고 논란은 여전하다.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소속에 따라 급여를 차별하거나 제도에 명시된 직무 외에 다른 일을 시키는 등 지시 및 관리·감독 규정을 어기는 일이 많아 간접고용은 ‘불평등한 일자리’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방문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기업 가운데서도 간접고용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3월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파견, 용역, 하도급 등 간접고용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85%를 상회한다. 비정규직으로 대상을 좁히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6932명 가운데 공사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단 29명에 불과하다.
공기업의 간접고용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기업 전반에 퍼진 오랜 관행이다. 3월 현재 전체 공기업의 94%가 간접고용을 위한 외주 용역 계약을 맺고 있다. 간접고용에서 비켜서 있는 이른바 ‘간접고용 청정 공기업’은 한국가스공사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두 곳에 불과하다.
이번 문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약속을 두고,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해 있는 간접고용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해석이 전문가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회 불평등 해소와 공익 증진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기업이 오히려 근로자 간 불평등과 양극화를 야기하는 간접고용을 확대한 이유는 뭘까?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노조원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화 대책회의 발족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건 후퇴 없는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미래세대정책연구소가 공기업 35곳이 공공기관 경영공시 시스템 ‘알리오’에 밝힌 임직원 현황 자료를 조사한 결과, 3월 말 현재 국내 공기업에 일하는 근로자는 모두 17만3521명이었다. 이 중 정규직 근로자는 11만4632명(66%), 비정규직 근로자는 5만5775명(32%)이었고,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4만9152명이 파견, 용역, 하도급 등 간접고용 근로자였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간접고용의 비중이 88%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년 전인 2015년에 견줘 공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약 3600명 늘어났다. 정규직 근로자와 간접고용 근로자가 각각 3600여명, 4200여명 늘어난 데 반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은 4500여명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가운데 일부는 정규직 그리고 일부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데 따른 결과다. 결과적으로 공기업 내 직접 고용 근로자의 근로여건은 나아지고 있는 데 반해 고용여건이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지속해서 늘어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35개 공기업 가운데 간접고용 근로자 수가 가장 많은 공기업은 한국전력공사였다. 모두 7715명이 간접고용 근로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뒤를 한국수력원자력(주)(7054명), 인천국제공항공사(6903명) 등이 잇고 있다. 간접고용 근로자의 수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간접고용 근로자 비중이 가장 높은 공기업은 단연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일하는 근로자 10명 중 8명(85%)이 간접고용 근로자였다. 정규직 근로자에 견주면 6배가 많았다. 같은 기준으로 한국공항공사와 한국마사회의 간접고용 근로자 수도 정규직 근로자보다 각각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업이 간접고용 인력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경영 환경 악화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래가 어둡거나 정규직 인력을 직접 고용할 재무적 여력이 안 되는 경우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관리 비용에서 자유로운 간접고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접고용 비중이 높은 공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미래세대정책연구소가 상대적으로 간접고용 근로자가 많은 5개 공기업의 지난 3개년 간 재무성과를 조사해 본 결과, 경영수지 악화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우수한 재무적 성과를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마사회를 제외한 4개 공기업의 지난 3개년 간 순이익률은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특히, 간접고용 근로자 비중이 가장 높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2016년 순이익률은 일반 영리기업에서는 보기 어려운 숫자인 43%였다. 국내 굴지의 통신서비스 업체인 SK텔레콤의 지난해 순이익률은 10%였다. 정부가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순이익의 1/3을 상회하는 3400억원을 배당금으로 가져갔다.
한국전력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과 2016년 2년간 20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의 상장사와 견주더라도 삼성전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이익을 낸 기업으로 기록됐다.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기재부는 2년 연속 수조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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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여건과 관계없이 지속해서 공기업의 간접고용이 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는 기재부가 고시하는 공공기관 인건비 통제를 들 수 있다.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매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을 마련한다. 여기엔 다음연도 공공기관의 인건비 상승률을 고려한 총인건비도 포함된다. 공공기관의 당해 연도 실적과 임금 인상률, 그리고 산업 평균 임금 등을 고루 따져 다음 해 인건비를 정하는데, 규정을 지키지 않는 공공기관의 경우 이듬해 경영평가에서 나쁜 등급을 받게 된다. 지난해 12월 기재부는 2017년 공공기관 인건비 상승률을 3.5%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이후, 공공기관 인건비 상승률은 대략 3~5% 내외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인건비 산정 대상에서 용역, 파견, 하도급 등 간접고용 근로자의 인건비는 제외된다. 간접고용 근로자의 인건비는 외주 용역비 즉 사업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같은 비정규직을 뽑더라도 직접고용이 아니라 간접고용 근로자를 채용하는
편법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기재부의 인건비 제한은 정규직 채용 제한으로 이어졌다. 간접고용 근로자 비중이 높은 5개 공기업의 경우 보통 5%에서 많게는 15%까지 정규직 정원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력이 있는 정규직 정원 대부분이 4급 이하 하위직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규직 근로자가 할 일까지 간접고용 근로자에게 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내 일자리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기재부가 2015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오히려 간접고용 근로자 양산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2015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간접고용 근로자는 인건비 산정 때와 마찬가지로 정규직 전환 대상 비정규직 근로자에서도 제외된다. 공기업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와 달리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는 아무리 숫자를 늘리더라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평가의 부담은 줄고, 관리 및 감독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운 탓에 비용 감소 효과도 누릴 수 있는 이른바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직접고용은 줄이고 간접고용 확대에 열을 올린 공기업의 노력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보답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세대정책연구소가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양과 비중이 높았던 공기업 5곳의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살펴본 결과,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마사회는 가장 높은 ‘A’등급을 받았고,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공항공사는 그 아래 등급인 ‘B’를 받았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우수한 과실은 직접고용 근로자들의 높은 급여 상승률로 이어졌다. 지난 3년간 간접고용 인력 채용이 많았던 공기업의 급여 인상률은 기재부가 고시한 급여 인상률(2015년 3.8%, 2016년 3.0%)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2014년에 견준 2015년 급여 인상률이 기재부 고시 인건비 상승률보다 낮았지만 2016년에 이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급여 인상이 이뤄졌다. 여기에는 공기업 기준 월 급여의 250%까지 지급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성과급이 큰 영향을 끼쳤다. 반면, 경영성과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신입 사원의 급여는 2014~15년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하면 기재부가 정한 인건비 인상률을 하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국내 공기업 35곳의 공기업 정규직 직원 1인당 연평균 급여 7900만원은 상장사 100대 기업 평균 급여(약 7300만원)를 웃도는 금액이다. 공기업 무기계약직 직원의 연평균 급여 4900만원도 임금 근로자 상위 20%(약 4600만원)에 속한다. 반면, 간접고용 근로자의 연평균 급여는 공기업이 외주업체에 인건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용역비에서 통상적인 업계 기준으로 통하는 실 지급률 약 70%를 적용하면 평균 3000~4000만 원 정도다. 직접고용 근로자와 견줘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는 물론 경영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나 근속 연차에 따른 합리적인 급여 인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요컨대 공공기관 내 간접고용이 확대된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9년 간 이어진 효율성 중심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즉 부채 관리 강화를 위한 복리후생비 축소, 인건비 상승률 제한, 비정규직 전환 등에 간접고용 근로자를 늘리는
편법으로 대응한 결과다. 공공기관 정규직 근로자들은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은 급여에 공무원과 견줄만한 고용 안정을 보장받지만 이는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거둬들인 성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기관이 일부 정규직에만 ‘신의 직장’이어서는 지속할 수 있지 않다. 공공기관의 주인은 일반 시민이고 존립 기반도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불평등과 양극화 등 시민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일은 간접고용과 같은 조직 내부에 처진 울타리와 장애물을 걷어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서재교 미래세대정책연구소장, 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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