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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서 속시원히 공개 안해
5월초부터 ‘예산시즌’ 일정 촉박
대책 미리 나와야 관료들도 협조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금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5년간 200조원이 든다. 돈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이냐. (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얘기한 것과 거의 똑같다.”(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문재인 후보가 많은 공약을 냈는데 재원 마련에 대한 입장을 안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따라가는 게 아니냐?”(심상정 정의당 후보)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 19일 <한국방송> 초청 토론에서 재정 사업 공약을 뒷받침하는 재원 마련 대책을 속시원히 밝히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았다. 복지 지출에 쓰기 위해 걷는 세금인 ‘사회복지세’ 도입을 공약으로 밝힌 심 후보와 법인세 등 세율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유 후보는 이런 두 후보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후보가 공약 실행을 위한 재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먼저 관가에서는 대통령 선거 이튿날 막바로 정부를 운용해야 하는 촉박한 정치 일정을 감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 정부는 대통령 선거 뒤 5~6월 동안 신규 내각 구성, 추경 편성, 2018년도 본예산 편성 등의 일정을 동시다발로 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권 뒤 빠른 시간 안에 5년 동안 운용할 ‘국정 어젠다’를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닥친 하반기 경제정책운용 방향,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등 단기적인 정책 방향도 결정해야 한다. 5월부터는 내년 예산안을 마련하기 위한 일정도 시작된다. 각 부처는 5월26일까지 예산요구안을 마련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경기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경우, 늦어도 6월 초까지는 관련 예산안이 나와야 한다. 이런 일정들을 소화하기 위해선 주요 재정 사업과 이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의 얼개가 미리 나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목차만 갈아끼워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예산추계 및 재정사업 등을 점검해둬야 한다”며 “문제는 지금 수준의 사업 공약과 재원조달 방안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문·안 두 후보는 기초연금 인상·아동수당 도입 등 각각 수십조원의 재원이 소요되는 공약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한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재원조달 방안을 공개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참여정부가 밝혔던 ‘비전 2030’ 어젠다를 부실한 재원조달 구조 탓에 실패한 아쉬운 국정과제로 손꼽았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한 이 청사진은 2010년대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2020년 세계 일류국가로, 2030년엔 ‘삶의 질’ 세계 10위에 오른다는 동반성장과 복지국가의 비전을 담았다. 문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50가지 과제를 선정했지만, 1100조원에 이르는 재원마련 방안은 하나도 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전 2030’은 공허한 청사진이라는 비판과 이어진 증세 논란 끝에 추진력을 잃게 됐다. 한겨레 대선정책자문단인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비전 2030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담은 훌륭한 중장기 성장전략이었지만 재원마련 방안을 빠뜨려 사상누각으로 끝나고 말았다”며 “적어도 정상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정치세력이라면 재원조달 방안까지 확실히 밝혀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