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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문·안, 복지 늘린다며 ‘증세’엔 머뭇…지출 구조조정만 강조

등록 2017-04-19 21:46수정 2017-04-20 14:35

[대선공약 검증]
‘복지공약’ 재원조달 방안 분석

기초연금 인상·아동수당 도입 등
매년 수조원 드는 공약 쏟아내고도
비과세 축소·중복사업 정비 등 열거
명목세율 언급없어 재원대책 ‘흐릿’
박근혜 ‘증세 없는 복지’ 비판하더니
문·안, 박빙 판세에 ‘증세’ 유보적
전문가 “증세없인 확보재원 2조뿐
국민들 설득이 올바른 정치 리더십”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기초연금액 월 30만원으로 인상.’ ‘아동수당 월 10만원씩 도입.’ ‘육아휴직 급여 확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보·보수 후보 가릴 것 없이 주요 후보들이 모두 복지와 일자리 확충 등을 앞세우며, 공약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만큼 소득 불평등과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긴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후보들이 공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공약 경쟁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재정 공약에선 후보별 선명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과세기반 확대가 필요하지만 세금을 더 걷자는 증세 방안에 있어선 유력 후보일수록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19일 <한겨레>가 원내 5당 대선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낸 ‘10대 공약’을 분석해 보니, 세부 실행 방안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다섯 후보가 공통적으로 기초연금 월 30만원 지급과 아동수당 도입을 약속하는 등 재정 소요가 큰 공약들이 적지 않다. 두 공약(기초연금·아동수당)에만 연간 7조원(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안 기준) 안팎의 돈이 필요하다. 또 각 후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때 적용되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공약하고 있는데, 이를 전면 폐지하는 경우엔 연간 10조원가량이 든다.

전문가들은 복지공약 경쟁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데 비해, 재원 조달 방안은 세출 구조조정 등 과거에 의존해온 방식을 답습하는 경향이 짙다고 평가한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2일 ‘제이노믹스’를 발표하면서 중기재정운용계획상 연평균 7%씩 재정 지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5년간 150조~160조원 남짓 총지출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에서 50조원을 조달하고 법인세 실효세율을 조정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지만 상당 부분은 나랏빚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증세에 대해선 세수가 부족할 때 국민 동의를 전제로 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비쳤다. 10대 공약 자료에서도, 문 후보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드는 데 5년간 21조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주된 재원 조달 방안으로는 ‘재정지출 개혁과 세입 확대’를 통해 마련한다고만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안 후보는 ‘선거공약서’를 통해, 복지(12조2천억원), 교육(4조5천억원), 주거(3조7천억원) 등의 공약 이행을 위해 연간 총 40조9천억원의 재원을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조달 방안으로 ‘세수 초과징수 예상분 활용’(7조3천억원), ‘국세 비과세·감면 정비’(11조1천억원), ‘공평 과세의 구현’(12조6천억원), ‘세출 구조조정 등 재정개혁’(9조9천억원) 등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의 임금을 지원하는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 관련 예산은 기존 일자리 예산을 조정해서 충당하겠다는 식이다.

물론 두 후보 모두 증세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문 후보는 “증세에는 순서가 있다”며 우선 부자 증세를 하고, 이후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도 “증세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먼저 모범적으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 후보는 명목세율 인상 등 본격적 세수 확충 방안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기존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하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대책으로는 늘릴 수 있는 재원이 한정적이라는 점에 있다. 한 예로 두 후보 모두 줄인다고 공언한 법인세 비과세·감면의 경우,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2조원 안팎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솔직하게 증세 계획을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라고 권고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빈약한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을 고려하면 각 후보가 내놓은 공약의 방향성은 옳다고 본다”면서도 “국민들이 복지의 효능을 체감하고 증세에도 동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올바른 정치 리더십의 자세”라고 말했다. 복지 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꼴찌에 가까운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대통령 선거 뒤 곧바로 집권에 들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재원 마련 방안을 미리 밝혀 국정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유 “증세없는 복지 반성”, 심 “복지목적세 걷자”…홍 ‘나홀로’ “감세”

유 “중부담 중복지 위해 포괄적 증세 고려”
심 “부자·불로소득 과세로 조세정의 실현”
홍 “세금 감면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유력 대선후보에 견줘 지지율이 낮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복지 공약 등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에서 증세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유 후보의 경우, ‘증세없는 복지’가 허구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선을 긋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기자협회와 <에스비에스> 공동 주최 대선후보 토론에서 그는 “일단 법인세를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올리고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그리고 필요하다면 부가가치세도 건드릴 수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역진적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유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선 명시적으로 증세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재원조달 방안을 “중부담 합의에 의한 재원 확보”라고 적어놨을 뿐이다. 다만 ‘중부담’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세부담률을 지금보다 높인다는 의미라서 사실상 증세를 공약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심 후보의 경우, 증세 방안을 10대 공약에 상세히 명시한 유일한 후보로 꼽힌다. 복지에만 사용되는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는 것이 주된 방안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납부액에 일정 비율(10~20%)을 추가로 부가하는 방식으로 사회복지세를 걷으면, 복지재정만 연간 21조8천억원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리고 소득세율의 누진성을 강화하는 한편, 주식 양도차익 등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비하겠다는 방안도 밝혔다. 심 후보는 이런 재정 공약을 바탕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복지공약 등에 걸맞는 제대로 된 재원조달 방안을 밝혀야 한다”고 공격해왔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단지 돈이 필요하니 세금을 걷겠다는 것을 넘어 과세 자체를 통해 실질적인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라며 조세정책의 질적 전환이라고 평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우, ‘나홀로 감세’ 주장을 펴고 있다. 홍 후보는 ‘기업 기(氣) 살리기’ 공약을 내놓고 ‘일자리 창출 기업 및 비정규직 줄이는 기업에 법인세 등 조세감면 확대’를 약속했다. 10년 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과 닮았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보면 첫머리에 ‘기업규제 완화 및 감세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등장한다. 친기업적인 사회가 되면 고용이 살아난다는 논리다.

허승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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