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티드항공 최고경영자 오스카 무노즈 (AP/연합)
바다에 ‘내린다‘는 말로 순화해 쓸지언정 ‘추락’은 항공사에서 한사코 쓰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자사 승무원을 태우려고 승객을 거칠게 끌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유나이티드항공 오스카 무노즈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9㎞ 상공에서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기분일지 모르겠다. 무노즈 CEO와 유나이티드항공은 일시적 비난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에 부적절하게 대응해 회사 평판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9일 유나이티드항공 3411편에서 얼굴에 피를 흘리는 한 동양인 남성이 보안요원에 질질 끌려나가는 영상이 비판여론에 불을 붙였다면 여기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은 다음날 공개된 무노즈의 이메일이었다. 편지에서 무노즈는 해당 승객을 “파괴적이고 호전적”(disruptive and belligerent)이라고 묘사했지만 이런 조치를 한 승무원은 “표준 규정에 따라 행동했다”고 칭찬했다. 이 편지가 공개된 뒤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온·오프라인의 비판 수위는 비등점을 향했다. 끌려나간 베트남계 전 의사 데이비드 다오(69)가 처음에 중국인으로 알려지면서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는데 1억명 이상이 보는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파이낸셜타임즈> 등 언론들은 이를 두고 ‘PR 참사’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고 미국 의원들은 이 건으로 청문회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나이티드항동의 주가는 급락해 11일에는 시가총액이 2억5천만 달러(약 2900여억원) 증발했다. 결국 주가하락이 두드러진 이 날 무노즈는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어떤 승객도 이렇게 잘못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바로 잡기를 바라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런데 무노즈 CEO가 불과 한 달 전 만해도 소통의 달인으로 칭송받은 경영자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유명한 홍보 전문지 <피알위크>는 지난 달 무노즈를 2017년 ‘올해의 커뮤니케이터’(Communiatior of the Year)로 지명했다. <피알위크>는 “(무노즈가) 소통의 가치를 이해하는 명석하고, 헌신적이며, 뛰어난 리더임을 보여줬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한마디로 내외부 소통을 매우 능숙하게 해서 회사 실적을 개선한 유능한 경영자라는 뜻이었으나 이제는 CEO 자리마저 흔들리는 처지가 됐다.
수만~수십만의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에 위기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특히 SNS의 발달로 관련 소식이 순식간에 전파되는 시대여서 위기는 순식간에 불어나 기업의 존속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은 평소에 위기가 일어나면 어떻게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할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상세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숙지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허위나 왜곡이 없이 정보가 신속히 의사결정자에게 보고되고 구성원에게 공유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잘못이 드러나면 바로 책임을 인정하고 솔직히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것도 사안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정면대응한다는 자세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책임 인정과 사과의 타이밍은 매우 중요한데, 머뭇거리다 여론에 떠밀려 사과를 하면 시민과 언론은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은 기업이 위기상황에서 전형적으로 범하는 커뮤니케이션 실수를 저질렀다. 먼저,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는 처음에 이 일이 항공업계의 관행인 ‘오버부킹’에서 파생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회사 대변인은 공식발표에서 “우리는 절차를 지켰다”며 문제가 내리기를 완강히 거부한 승객에게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늦게 도착한 승무원 4명을 태우려 했기 때문이란 게 무노즈의 이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승무원을 태울 계획이 있었다면 ‘오버부킹’문제는 예약한 고객이 비행기를 타기 전 카운터에서 해결해야 마땅하다. 실재 거의 모든 항공사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결국 자신들의 태만을 업계 관행인 오버부킹과 표준 규정 준수 여부로 ‘호도’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사과도 때를 놓쳤다. 이미 여론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하고 주가가 폭락한 뒤 거듭거듭 사과했지만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긴 몰렸구나! ”할 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무노즈와 유나이티드 항공은 무엇이 사안의 핵심인지를 직시하지 않았다. 해당 동영상을 본 많은 사람이 갖는 공통적인 생각은 “어떻게 대표적인 서비스업이라는 항공사에서 승객을 저렇게 짐짝처럼 대하는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누군가 비행기에서 내려야 하는 게 항공업계 경영상 필요악인지, 해당 항공사가 그런 경우 지켜야 할 규정을 제대로 따랐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규정을 따르다 보면 손님을 짐짝처럼 취급하게 돼 있다면 그런 업무환경을 만든 기업 경영진에 책임이 있고 바로 그걸 전면적으로 고치겠다고 해야 제대로 된 대응이다. 그런데도 무노즈는 직원을 두둔하는 아둔한 선택을 했다. 그는 ”우리 직원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표준 규정에 따라 행동했다 “며 ”여러분에 대한 내 열렬한 지지는 변함이 없다. 아울러 여러분이 올바른 항공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도 칭찬하고 싶다 “고 그는 편지에서 밝혔다.
세 번째로 유나이티드 항공과 무노즈 CEO는 작은 물결이 회사의 과거 행적 등 어떤 조건을 만나면 ‘해일’이 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하필 제비뽑기에서 내려야 할 승객으로 선정된 4명 중 3명이 아시아인이었는데, 이 회사가 과거 몇 차례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린 것과 연결돼 이번 사건이 크게 증폭될 여지가 있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2015년 6월에는 음료수를 요구한 이슬람 여성에게 “캔이 무기로 쓰일 수 있다”며 거부해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통해 미디어가 되는 세상에 자극적인 소식은 빨리 퍼져나가 회사를 집어삼키는 파도가 된다. 이런 데 대한 위기감이 없었다면 나태한 조직이고, 일선의 위기감이 책임자들과 공유되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11일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의 유나이티드항공사 창구 앞에서 승객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신화/ 연합)
유나이티드 항공과 무노즈의 경우는 기업 위기관리의 대표적 반면교사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 사례와 여러 가지로 유사하다. 200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에서 도요타 렉서스 승용차를 타고 가던 일가족 4명이 가속페달이 빠져나오지 않고 브레이크도 듣지 않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가 나자 미국 언론은 운전자가 급박한 순간에 911에 걸어 통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렉서스 차량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는 “가속페달이 차 바닥의 매트에 끼였거나 운전자의 미숙으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차량 결함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자 언론이 더욱 강하게 급발진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직접 사고 차량의 조사에 나섰다. 911에 신고하는 목소리를 방송에서 들은 소비자들의 감정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고, 자동차 급발진이 제대로 규명된 적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불만까지 겹쳐 도요타에 대한 소비자의 이미지는 급격히 악화했다. 여기에 도요타가 자동차의 결함을 축소, 허위 보도한 일까지 밝혀져 당국의 수사를 받게 됐다. 사고 전만 해도 미국 내 1위를 달리던 도요타의 판매 순위는 미국 자동차회사에 밀려났다. 결국 완강히 버티던 도요타 자동차의 회장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고 피해자와 미국 소비자에게 직접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도요타는 미 법무부로부터 1조28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희생자 가족에 대한 보상으로 115억원을 내놔야 했다.
이와 달리 미국 기업 존슨 앤드 존슨은 위기에 신속히 근본적인 대처를 해 상황을 역전시킨 사례다. 1982년 자사가 판매하는 진통제 타이레놀을 먹은 소비자가 연쇄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7일 만에 미전역에 있는 타이레놀 3100만병(약 1억 달러 규모)을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아울러 생산과 판매, 광고를 전면중단하고 생산과정을 면밀히 재점검했다. 다행히 유통과정에 청산가리를 누군가 넣은 사건이고 제조과정의 결함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진솔한 대응을 인정받아 소비자의 신뢰가 한층 굳건해지게 됐다.
진부한 말이지만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단 자신의 기업문화를 점검하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서 책임경영을 내면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때만 그렇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 경제센터 연구위원 (경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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