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비치 불평등 연구의 시사점
불평등은 ‘상하 순환 반복’ 주장
기존의 ‘쿠즈네츠 명제’에 반기
기술변화 강조하는 주류와도 거리
포퓰리즘·금권정치 폐해 막아야
불평등은 ‘상하 순환 반복’ 주장
기존의 ‘쿠즈네츠 명제’에 반기
기술변화 강조하는 주류와도 거리
포퓰리즘·금권정치 폐해 막아야
지난해 경제학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그래프는 단연 그 모양이 코끼리를 닮은 ‘코끼리 곡선’이었다. 이 곡선은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전세계 시민의 실질소득이 소득집단별로 얼마나 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중국의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소득분포 상위 약 50% 집단의 소득이 가장 크게 증가한 반면, 선진국 중하위층 노동자로 대표되는 상위 20% 집단의 소득이 가장 심각하게 정체했다. 즉 선진국 노동자들이 세계화의 패자였던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으로 표출되자 전세계가 이 곡선을 제시한 브랑코 밀라노비치 교수의 연구에 더욱 주목했다.
밀라노비치 교수는 각국의 가구자료를 모아 세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의 변화를 선구적으로 연구해온 불평등 연구의 권위자이다. 그는 오랫동안 세계은행에서 불평등 연구를 주도해 왔고 현재 뉴욕시립대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책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는 세계적 차원에서 불평등의 역사적 변화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한다.
그는 먼저 ‘쿠즈네츠 파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오래전 국민소득과 불평등 사이에는 ‘역 U자’의 관계가 있다는 ‘쿠즈네츠 곡선’을 보고했다. 소득과 불평등 수준이 낮은 농업사회에서 산업화가 진전되면 불평등이 심해지지만, 경제가 성숙된 뒤에는 성장의 혜택이 퍼지고 교육과 사회복지의 발전으로 불평등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여러 선진국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밀라노비치는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상하로 순환을 되풀이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쿠즈네츠 파동이라 부른다. 밀라노비치에 따르면 최근 선진국에서는 불평등이 상승하는 2차 쿠즈네츠 파동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기술혁신과 세계화의 진전 그리고 정책 변화 때문이다. 그는 특히 각각의 요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효과를 따로 분석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기술 변화를 불평등 심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하는 주류적인 설명과 거리를 둔다.
그렇다면 전세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은 어떨까. 그는 그것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 간 불평등이며 전세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은 2000년대 이후 하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중국과 최근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고도성장 덕분이었다. 21세기 불평등의 미래와 관련해 그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소득의 몫과 집중도가 높아지고 노동소득을 많이 버는 이들이 자본소득도 더 많이 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교육 수준이 높고 세계화가 진전된 상황에서 더 많은 교육과 과세를 통한 불평등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그는 불평등의 개선책으로 교육 평준화와 자산소유의 집중 완화 등으로 기초자본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불평등의 심화가 포퓰리즘과 금권정치 등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실제로 몇몇 선진국들의 정치 상황은 그의 우려대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코끼리 곡선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우울한 ‘코끼리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 노력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의 말처럼 미래는 많이도 불확실하지만, 우울한 코끼리의 시대를 이해하고 이러한 노력을 발전시키는 데 밀라노비치의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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