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불평등 연구’ 브랑코 밀라노비치
‘불평등 연구’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1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이 탐욕스러운 월가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인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객원석좌교수는 불평등 연구 분야의 세계 최정상급 학자로 꼽힌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 선임학자이기도 한 밀라노비치의 대표작이 최근 국내 번역출간됐다. <한겨레>는 불평등 문제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1년 10월 세계 곳곳에서 열린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에 즈음해 서울 대한문 앞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1%만을 대변하는 자본주의는 고장났다’는 문구가 쓰인 펼침막을 들고 있는 모습.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99%를 배제하는 극단적 불평등 확대
세계화 30년 분석한 ‘코끼리 곡선’ 제시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과 맞아떨어져 불평등은 기술·개방·정책 모두와 연관
‘성장→불평등 완화’ 전통적 해석 한계
불평등은 상·하방 순환 반복하는 파동
교육과 노동조합의 역할 줄어들 수도 -쿠즈네츠 파동이라는 개념은 정말 흥미롭다. 그러나 이 파동을 상방·하방으로 만들어내는 힘들은 첫번째 파동과 두번째 파동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구 고령화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첫번째와 두번째 쿠즈네츠 파동에서 몇몇 힘들의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구요인이 그중 하나이고, 교육이 또 다른 예다. 194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첫번째 쿠즈네츠 파동의 하방 국면에서 교육의 확대는 고숙련과 비숙련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평등화 역할을 했다. 당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의 평균 교육연수는 6~7년에서 13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수준의 상승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는데, 교육연수를 최대로 늘려봐야 평균 13년에서 예를 들어 14~15년 이상으로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소규모 집단의 교육 수준이 더욱 높아져도 불평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노동조합은 과거에 불평등을 줄이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더욱 소규모 단위의 서비스로 변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고용구조에서는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더욱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노조의 역할, 고용주와 노동자 간 단체협상의 역할이 덜 중요하게 될 것이다.” 핵심 선진국의 중산층 소득은 정체 -세계화, 브렉시트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을 당신의 책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자. 이 사건들은 당신이 말한 ‘코끼리 곡선’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이 사건들이 선진국에서 세계화 패자들의 반란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건들은 특히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미약하고 소득 불평등이 높은 영미권 국가에서 일어났는데, 다른 선진국에서는 불평등과 세계화의 미래가 다를 것인가? “‘코끼리 곡선’이 생생하게 보여준 선진국 중산층의 소득 정체가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 당선의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증분석의 증거에 기초해 볼 때, 나는 중산층의 소득 정체가 정말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브렉시트에서 큰 구실을 했던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 등과 같은 몇몇 다른 요인도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코끼리 곡선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선진국 중산층의 소득 증가도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선진국들의 중산층 소득 증가는 개도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정체된 것이 사실이며 이것이 코끼리 곡선의 모양을 만들었다. 또한 미국, 일본, 독일 등 규모가 가장 큰 선진국들에서 중산층 소득은 분명 정체했다.” -포퓰리스트들은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비난하고 많은 이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세계화나 정책은 정부에 의해 어느 정도 통제될 수 있는 반면, 기술은 상대적으로 외생적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아마도 기술이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기술은 다른 요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을까? “원칙적으로 기술이 외생적으로 ‘보인다’는 것에 동의한다. 초음속 여객기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기에 필요한 기술을 적어도 50년 전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술의 사용은 콩코드기 추락(이는 기술 자체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이후 언제나 제한적이었고 더 이상 초음속 여객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초음속 여객기는 수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처럼, 우리는 현실에서 도입되는 기술이 우리가 가진 정치경제 체제의 종류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가격에 좌우되는 많은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화는 이 둘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종류의 기술은 세계화로 인해 수익성이 높고 다른 기술은 세계화가 없을 때 수익성이 높을 것이다.” -21세기 미국의 불평등에 대한 전망과 관련하여, 당신은 자본 몫의 증가, 상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연관, 부자의 정치적 권력 강화 등으로 퍼펙트스톰이 올 가능성을 우려한다. 당신은 재분배와 교육의 효과에 관해서도 회의적이다. “당신이 지적한 대로, 미국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완화에 관한 단기적 전망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비관적이다. 이제 트럼프의 집권을 목도하며 나는 더욱 비관적이다.(이 책을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전에 집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009년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뉴욕의 한 행사장에서 금융위기에 관한 연설을 하는 동안, 행사장 바깥에 모인 사람들이 ‘월스트리트부터 개혁하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왼쪽)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오른쪽)브랑코 밀라노비치
포퓰리즘 주장에 힘 실리는 배경
자산 등 기초자본 불평등 완화가 관건
‘1차 분배’ 개선하는 정부 역할 필요 특히 빈곤층 소득성장에 해롭다는 게
최신 불평등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
로봇이 일자리 없앤다는 우려는 과장
고숙련·저숙련 임금격차 줄어들 수도 -이 책에서 당신은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깊이 논의하지 않는다. 다만 중산층 감소가 소비패턴과 사회지출의 변화로 이어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다. “소득 불평등과 성장 사이의 관계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떤 학자들은 불평등이 성장에 바람직하다고 보고했고 다른 학자들은 뚜렷한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불평등이 성장에 나쁘다는 연구도 있다. 과거의 연구들은 매우 개략적이었다. 그것들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지니계수 혹은 또 다른 총계적인 불평등 변수와의 관계만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장기적 시간대를 포괄하는 더욱 자세한 미시 데이터(가구 수준)를 가지고 있다. 최근 한 논문에서 나는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빈곤층 사이의 그리고 부유층 사이의)을 검토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소득계층의 소득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좀 더 발전된 데이터를 사용한 여러 연구들은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특히 빈곤층의 소득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짓는다.”
2011년 10월 서울역 광장에서 빈곤사회연대 회원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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