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쟁점진단】 ILO ‘세계임금보고서’ 발간…기업간·기업 내부 불평등 심화
기업간 불평등과 기업내 불평등 현상 동시에 나타나…최저임금 인상, 초기업 단체교섭 촉진 등 주문
지난 2012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임금불평등은 더 심해진 반면에 임금상승률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15일 발표한 ‘세계임금보고서(Global Wage Report)’를 보면, 조사 대상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2년 평균 2.5%에서 2015년에는 1.7%로 낮아졌다. 여전히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의 수치를 제외하면 세계 평균 임금상승률은 2012년 1.6%에서 2015년에는 0.9%로 떨어졌다.
국제노동기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년마다 임금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번 보고서는 5번째가 된다. 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은 “전세계적인 수요 감소와 저물가 현상 속에서 실질임금 상승률이 둔화하는 것은 향후 디플레이션 압박을 가중시킬 수 있어 크게 우려할만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ILO Global Wage Report 보러 가기☞
국제노동기구는 임금 상승의 둔화 원인을 개발도상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 등 신흥개발도상국들의 성장세가 그나마 전체 임금 상승을 이끌었으나 2012년 이후에는 이들 국가의 임금상승세가 뚜렷히 둔화하거나 일부에서는 선진국과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20개국 (G20) 내 신흥국 및 개도국들의 임금 상승률이 2012년 6.6%에서 2015년 2015년 2.5%로 3분의 1 가까이 떨어졌는데, 이는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반면에 주요 20개국 내 선진국들은 같은 기간 0.2%에서 1.7%로 임금 상승률이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생산성은 증가해도 임금 제자리... 성장 과실에서 노동자 몫 점차 줄어
이러한 실질임금 상승세 둔화의 거시경제적 요인은 경제성장 정체에도 있지만, 국제노동기구는 성장 과실에 대한 자본과 노동간 분배 악화 탓도 크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세계화와 기술변화 등 환경적인 요인 외에도 노조조직률 하락과 이에 따른 단체교섭력 약화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기업이익에서 주주와 금융투자자가 가져가는 몫이 상대적으로 노동에 배분되는 그것 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임금 상승 속도가 생산성 증가에 훨씬 못미쳐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임금소득의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상위 10%의 임금을 하위 10%의 임금대비 비율로 나타내는 십분위배율로 2000년 이후 각국의 불평등 정도를 비교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임금불평등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이스라엘, 한국, 칠레 등이 임금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꼽혔다. 다만 이스라엘과 칠레는 2000년 이후 불평등 지표가 개선 추세에 있으나. 한국은 미국과 함께 임금불평등이 더 악화된 나라로 지목됐다. 비회원국 중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에서는 임금불평등이 완화된 반면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간 성별 임금격차도 임금불평등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성별 임금격차는 0% 수준에서부터 45%까지 나라별로 다양한 분포를 보이는데, 한국은 인도, 일본 등과 함께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군에 속했다.
‘기업간’ 임금불평등 못지 않게 심각한 ‘기업내’ 임금불평등
이번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제노동기구가 전체 임금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소로 ‘기업간 또는 기업 내부’의 임금 격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은 학력과 기술 숙련도, 근속 연수 등 인적자본의 특성에 의해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는 이번 보고서에서 이러한 인적 특성만으로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임금불평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거의 동일한 학력과 기술력 등을 갖춘 노동자들에게서도 상당한 임금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고, 기업의 특성이나 기업 내부의 지위에 따라 뚜렷한 임금 격차가 생기는 현상에 주목했다.
예컨대 기업규모에서는 대기업, 산업에서는 금융과 부동산 등에 고임금층이 몰려 있다든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청과 외주화, 프랜차이즈 등을 활용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열위 기업과의 수익과 임금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내에서도 최고경영자(CEO)와 관리자, 전문기술직 등 특정 계층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서 전체적인 임금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즉 ‘기업간(between) 불평등’과 ‘기업내(within) 불평등’이 최근 임금불평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개인간 임금 차이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간 임금불평등도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적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임금 격차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반면 영국이나 루마니아는 임금의 개인차도 크고 기업간 불평등도 높은 나라다. 국제노동기구는 기업간 임금불평등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에 비해 더 심한 것으로 진단했다. 선진국의 경우 상위 10%에 속하는 기업의 임금이 하위 10% 기업에 비해 약 5배 정도 높다면, 베트남과 남아공 같은 개도국에서는 각각 8배, 12배 정도의 심한 차이를 보인다. 개도국들의 경우 아주 소수의 기업만이 고임금층을 형성하고 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하위 임금수준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 내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는데,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위수준 임금에 분포하는 반면, 영국의 경우에는 고임금과 저임금 기업으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한편 국제노동기구는 고위임원과 관리자, 고숙련전문직 등 기업내 고액연봉을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 즉, 기업내 임금불평등도 집중 분석했다. 미국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최근의 임금불평등의 상당 부분이 기업간 임금격차보다는 기업내 격차로 설명된다. 특히 고액연봉과 스톡옵션 등이 보장되는 경영진의 단기 성과주의는 미국 기업문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최근 10여년 간 다른 국가들로도 빠르게 확산돼 왔다. 국제노동기구는 한국과 일본, 남아공이 임원에 대한 보상방식에서 미국 모델을 추종하는 나라로 꼽았다. 이와 함께 1만명 이상을 고용한 거대기업(mega-firm)에서 기업간 불평등과 기업내 불평등이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번 보고서 작성을 위해 유럽 지역의 기업데이터를 방대하게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로잘라 알바레즈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22개국의 전체 임금불평등 가운데 42%가 기업내 불평등, 나머지 58%는 기업간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내 임금불평등이 심하게 되면 해당 기업의 평균임금이라는 수치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작 평균 이하에 머물러 드러나는 임금 수준과 실제 임금과의 괴리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조사된 유럽 국가들의 경우 약 80% 노동자들의 임금이 기업의 평균임금 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하위 1% 노동자들의 임금은 시간당 7.1 유로(약 8800원)이었으나 최상위 1%는 무려 844유로(약 104만원)로 무려 100배 이상의 차이를 나타냈다. 결국, 극소수의 기업에 고임금 혜택이 집중되고 그마저 소수의 개인들에게 기업의 성과가 집중되는, 즉 ‘임금불평등 피라미드’를 더욱 뾰족하게 만드는 현상을 보여준다. 임금불평등의 피라미드는 기업간 불평등과 기업내 불평등의 복합적인 산물인 셈이다.
임금불평등 완화해야 기업도 국가도 지속가능한 성장 가능
국제노동기구의 세계임금보고서는 실질임금의 상승세 둔화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분배 악화, 임금 불평등의 심화라는 뚜렷한 현상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경제 성장과 임금 상승의 연계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노동자들의 박탈감을 고조시켰고, 결국에는 소비 침체와 총수요 감소를 불러 경제 회복 자체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임금 상승과 임금 불평등 개선을 위해 개별 국가의 체계적 노력 뿐 아니라 국제공조도 필요하다는 게 국제노동기구의 지적이다. 우선 범세계적인 차원에선 적정 수준의 임금 상승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을 강조했다. 다만 모든 국가에 일반적 원칙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만큼 개별 국가 차원에서 충실하고 체계적인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것은 대체로 다음의 정책적 권고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다수의 노동자들이 지나친 저임금 지대에 몰리지 않도록 최저임금 정책을 적극 강화해야 하며, 기업 단위를 넘어선 산업-업종-전국 수준의 단체교섭을 촉진하고, 나아가 정부가 단체협약에 따른 임금 수준의 적용 범위를 보다 보다 많은 노동자들에게 확대하는 ‘단체협약 효력확장’ 정책을 주문했다. 단체교섭의 적용범위가 넓을수록 특정 기업이나 기업 내부의 소수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고 그 결과 임금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채널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들을 단체교섭에 포괄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 즉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부품업체와 조립업체를 한데 묶어 단체교섭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치사슬의 전단계를 가급적 단체교섭의 최대 범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국제적인 가격경쟁이 치열한 경우 개별 브랜드 차원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시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국제노동기구는 노동조합과 여러 개의 다국적기업이 함께 협상을 벌이는 방안을 권고하기도 했다.
셋째, 기업내 지나친 임금격차의 원인이 되는 고위임원과 소수 전문직의 지나친 고액연봉 문제는 기업 차원의 자율규제 또는 기업관련 규제의 정비를 통해 극복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기업 스스로 혹은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임원보수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수준에서 임원 보수를 책정하는 방안을 말한다. ‘사회적 책임’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최고임금’ 수준을 주주와 경영진, 노동자 대표 등이 합의 또는 협의, 정보교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넷째,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 임금 상승 수준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업이 지나치게 비용절감 위주의 전략에 골몰하거나 경쟁적으로 과도한 아웃소싱에 나설 경우 임금불평등을 개선할 수단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는 2007년 총회에서 채택된 ‘지속가능한 기업 발전을 위한 결의문’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생산과 경쟁 환경 전반의 개선과 함께 ‘정당한 이익 추구의 원칙’ 등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다섯째, 대기업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남녀간 임금차별을 줄이는 것은 임금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국제노동기구는 판단한다. 성별격차와 부당한 차별 해소가 기업 내부 또는 개인간 전체 임금불평등의 완화로 이어지려면 직무가치 평가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임금 관행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국제노동기구는 노동시장에 발생한 임금불평등의 완화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 수단도 주문했다. 특히 최상위 고소득층의 고임금에 대한 간접억제 수단으로서 과감한 누진세제의 도입과 저임금 계층에 대한 이전지출의 확대 등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임금과 불평등에 내몰리기 쉬운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보호 문제도 제기했다. 국제노동기구는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비정규 노동’의 증가 현상이 노동자 내부의 차별과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노동자들이 이에 적극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드는 토양이 되어 왔음을 지적하면서, ‘비정규 노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권리 배제를 축소해 나가는 노력이 임금불평등을 줄이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H6박영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yspark@hani.co.kr
자료: 국제노동기구(ILO), Global Wage Report 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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