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관리 초읽기…현대상선, 정상화 절차
한진, 사태파악 늦어 자율협약 지연
‘인수한 회사’ 인식에 자구안 소극적
후계구도 영향, 자산 매각 쉽지않아
한진, 사태파악 늦어 자율협약 지연
‘인수한 회사’ 인식에 자구안 소극적
후계구도 영향, 자산 매각 쉽지않아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여부가 30일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9일 “한진그룹에서 특별한 대책을 30일까지 내놓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두달가량 먼저 자율협약을 신청했던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가입, 채무 재조정과 유상증자 등의 절차를 끝내고 정상화 절차를 밟아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1·2위 국적 선사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온다.
우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월 말 이동걸 케이디비(KDB)산업은행 회장과 만나고 나서야 한진해운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부터 산업은행과 자구안 마련을 논의하는 등 일찌감치 생존 고민을 시작했다. 이 같은 차이는 자율협상 신청 시점은 물론 자구노력에 대한 의지도 다르게 만들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까지 내다팔며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은 반면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신청 당시부터 자구안이 미진해 한 차례 반려를 겪기도 했다. 현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담당한 적이 있는 한 고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첫 출발점은 손실 인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출발이 늦었고 그 결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지난 28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위기에 선 것과 관련해 “법정관리를 피하려면 (채권단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연말까지 부족한 자금 7천억원 가운데 4천억원을 내겠다는 자구안이 퇴짜를 맞은 뒤 내년에 1천억원 추가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방안을 얹어서 자구안을 제출했지만 재차 거절당하자 오히려 채권단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한진그룹의 이런 태도는 조양호 회장이 부실경영에 원죄가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달리 2014년 최은영 전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구원투수’라는 점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한진그룹 쪽은 줄곧 “경영권 인수 뒤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유상증자 참여 등 2조원 가까이 지원해 더이상 지원할 것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후계 구도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조 회장의 삼남매는 이미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은 대한항공·진에어 등에서 대표이사를, 막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진에어 부사장과 한진관광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도 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로 경영에서 물러났다지만 국외 호텔사업에는 참여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자녀들이 향후 승계해야 할 계열사나 자산을 매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란 얘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살릴 의도가 있다면 서울 경복궁 옆 부지를 비롯해 매각할 수 있는 그룹 내 자산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자구안이라고 매각한 것도 모두 한진해운 자산이었는데, 한진그룹이 제대로 된 자구안을 내놓지도 않은 채 법정관리를 막아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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