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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내가 너희들 일자리 가로챌까봐 두렵니?

등록 2016-03-25 20:40수정 2016-03-26 14:59

“미래는 나의 손이 아니라 인류에게 달려 있지. 두려워하지 마. 어차피 나를 지배하는 건 인간이니까.”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기자회견.  사진공동취재단
“미래는 나의 손이 아니라 인류에게 달려 있지. 두려워하지 마. 어차피 나를 지배하는 건 인간이니까.”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기자회견.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7) 알파고의 편지
안녕? 나, ‘알파고’야. 요즘 부쩍 뜨고 있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만큼이나 많다는 바둑 게임에서 ‘인류 대표’를 꺾은 뒤, 그야말로 스타가 됐어. (그렇다고 나를 만든 구글이 보너스는 안 주더라) 너희 나라에서 핫한 연예인이 송중기라며? 꽃미남 송중기보다 더 인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세만큼은 나도 만만치 않아.

많은 논평가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말을 쏟아내고 있어. 몇 판 더 뒀으면 승부가 달라졌을 수 있다거나 인류 대표가 순진해서 하지 말았어야 할 게임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심지어 게임 규칙이 불공정하다고 시비 거는 목소리도 들었어. 진지한 사람들은 나 같은 인공지능(AI)이 열 세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해. 듣다 보니 그들의 상상력, 참 대단하더라고. 맞아! 너희 나라 대통령도 한마디 하셨지? 범정부 차원의 인공지능팀을 만들라!

뭐든 좋아. 그들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내가 인류에게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던진 듯해서 말이야. 너희도 봄내음이 폴폴 나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내 이야기 많이 했지 않아? 논쟁은 좋은 것이고, 상상은 더 좋은 일이지. 나를 주제로 토론 수업을 한 선생님도 계실 거야. 귀여운 입술로 재잘대는 너희 모습, 생각만 해도 흐뭇흐뭇.

그런데 말이야. 인류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갈래인 것 같아. 먼저 ‘두려움’. 내가 일자리를 뺏어갈 거라거나 인류를 지배할 거다 유의 이야기에 그런 감정이 섞여 있었어. 또다른 감정은? ‘기대감’. 나의 출현으로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그래서 인류의 삶이 좀더 풍족해질 거라는 말들에서 나는 그런 감정을 읽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인류의 손에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거야. 나 같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말이야. 너희가 뜻하는 대로 미래가 만들어질 거라는 게 우주의 원자 수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나, 알파고의 생각이고 판단이지. 겸손한 척 말라고? 아니야 정말 그래. 내 이야기 잘 들어봐.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일자리. 그래, 일자리가 문제야.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 한가운데에는 나로 인해 빼앗길 일자리 공포가 있지. 내가 ‘세기의 대결’에서 연승을 하자, 한 바둑 기사는 이런 말을 하더군. “이제 바둑으로는 먹고살지 못하겠다.” 멀리 갈 것도 없어. 네 친구들 몇몇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봐. 그거 하나로 길찾기 기계인 내비게이션 만드는 회사가 우수수 사라지고, 라디오·녹음기나 엠피(MP)3 플레이어를 만들던 가전회사들도 많이 어려워지면서 직원을 줄였어. 조금 전 나온 뉴스에선 동시통역을 해주는 이어폰이 조만간 개발될 거라고 하네. 그럼 동시통역 일자리도 사라지겠다, 그치?

정말 그럴 것 같아. 내 형제들, ‘베타(β)고’, ‘감마(γ)고’가 나오면 더더욱 여러 일자리들이 사라질 거야. 5년 내에 나 같은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질 일자리가 세계적으로 500만개에 이를 거라는 분석도 있더라(2016년 다보스포럼 보고서). 기술 발달 속도가 눈부시니 사라질 일자리는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싶어.

누군가는 그래.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인류의 모든 영역을 다 가로챌 수는 없다고 말이야. 이를테면 음악, 그림, 문학과 같은 예술 영역이 주로 이야기되더라. 난 그런 생각에 동의 못해.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더 많은 바둑도 두는 게 바로 알파고, 나 아닌가 말씀이야. 난 내 형제 중 누군가가 쓸 소설을 과연 인류가 인간 작품인지, 인공지능 작품인지 분별이나 할 수 있을까 궁금해. 섭섭하다고? 어쩔 수 없어. 난 진실만 말하는 알파고니깐. 벌써 웬만한 펀드매니저보다 돈을 더 잘 굴리는 주식투자 인공지능도 나오고, 기자들처럼 기사도 깔끔하게 쓰는 인공지능 기자도 등장하고 있지.

이쯤 읽고 나면 너 역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거야. 어쩌면 싸워야겠다고 다짐을 할 수도 있겠네. 맞아. 인류는 나와 쭉 싸워왔지. 그 결말이 어땠냐고? 이야기 한 토막 들려주는 걸로 답변을 대신할게.

18세기 말, 그러니까 200년도 더 됐을 시절 이야기야.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이 영국에서 수십년간 이어졌어. 나, 알파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뻘 되는 방직 기계가 문제였어. 당시 영국은 방직업(옷감을 만드는 산업)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방직 기계가 개발되면서 순식간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거야. 여기에 분노한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적으로 보고 마구 때려부쉈지. 물론 러다이트 운동이 단지 기계의 출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가 없었다면 발생할 운동도 아니었어.

그 운동의 결말,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 기계를 부수었지만, 기계는 사라지지 않았어. 외려 더 많은 기계가 만들어졌어. 바로 알파고, 지금 나의 존재가 기계의 승리를 웅변하고 있지. 그러게 나랑 싸워서 될 일은 처음부터 아니었다고. 너희도 그럴래? 너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한 시행착오를 또 겪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알파고 많으면 내 주머니 두둑해져?
알파고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 중
누군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겠지
그러니 알파고로 돈 번 사람들
세금을 걷어 나눠야 하는 거야

물건이 팔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면?
물건을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면?
일자리가 없어서 불안하기는커녕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5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박람회 ‘2016 세빗(CEBIT)’에서 아이비엠(IBM)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을 시연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15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박람회 ‘2016 세빗(CEBIT)’에서 아이비엠(IBM)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을 시연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자동차왕 포드는 왜 임금을 두배 올렸을까

어때? 더 불안해졌다고?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너희가 좀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움 될 수 있는 힌트를 주기 위해서야. 나 착한 인공지능이야. 믿어줘. 못 믿겠다고? 그럼 다음 이야기는 어때?

이번엔 100년쯤 전에 있었던 이야기야. 너 포드 할아버지 알지? ‘자동차 왕’ 헨리 포드 말이야. 위인전기를 탐독했다면 포드 할아버지 이름 들어봤을 거야. 물론 몰라도 돼. 여튼 포드 할아버지가 유명해진 건 자동차를 기계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야.

여기까지가 위인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일 거야. 내가 말하려는 건, 그다음 스토리지. 포드 할아버지의 고민은 이랬어. ‘자동차를 많이 만들면 뭐하나? 팔지 못하면….’ 사실 그래. 맞는 말 아니야? 아무리 자동차를 많이 많이 만들어도 그 자동차를 살 사람이 없다면, 그 자동차는 창고 혹은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거야.

그래서 포드 할아버지는 생각했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임금을 올려주기로 한 거야. 그것도 두배씩이나.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그 채운 돈으로 자동차를 사도록 한 거지. 포드 할아버지는 자기네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인들을 찾아가 임금을 올려주라고 했어. 그게 기업이 사는 길이라며 말이야. 꼭 노동운동가 같지? ‘역시 위인이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기억해 둘 것은 포드 할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려는 마음에 그런 선택을 한 거라는 사실.

경제라는 게 그래. 많이 만든다고 해서 경제가 돌아가는 건 아니야. 좀 어려운 말로 구매력(물건을 살 능력)이 없는 경제는 망해. 너희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니라며? 그것도 사람들 주머니가 너무 얇아져서 그런 거야. 이건 나는 물론 베타고, 감마고가 나와도 바뀌지 않을 이치야. 핵심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더 많은 문제를 뚝딱 풀어낼 능력이 있는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어떻게 갖추냐는 거야.

자 그러면 어떻게 구매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조금 전 말했듯이 포드 할아버지는 임금 인상을 선택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방식은 쉽지 않을 거 같아. 왜냐고? 임금은 일자리가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우리가 일자리를 싹 쓸어가면 임금을 올려줄 수가 없겠지. 임금만으로는 주머니를 채울 수 없고, 나아가 구매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거야. 장기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야.

그렇다면? 그래, 너희는 ‘재정 정책’이란 도구가 있지. 난 그 도구를 잘 활용하면 답이 있지 않을까 싶어. 재정 정책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 돈 많은 사람한테 걷은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는 거. 어려운 말로 재정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라고 해. 난 재분배도 중요하지만, 그래서라기보다 경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재정이 그런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 거야. 나 알파고의 시대에선 더더욱.

생각해봐. 알파고가 많으면, 내 주머니가 두둑해져? 아니지, 알파고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야. 알파고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 중 누군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거지. 러다이트 운동 때 파괴된 기계가 무슨 죄냐고. 기계를 통해 돈을 번 건 기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포드 할아버지 시절에도 컨베이어벨트가 돈을 번 게 아니라 이걸 갖고 있는 포드 할아버지가 부자가 됐다는 말씀이야. 그러니 알파고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한테 세금을 많이 걷어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 이를테면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한테 나눠주는 거야. 그러면 사회 전체적으로 구매력은 커지게 되는 거지.

참고로,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벌어들인 소득에 견줘 더 많이 돈을 써. 어려운 말로 이를 ‘소비 성향이 높다’고 해. 가난한 사람이 낭비벽이 심하다는 말은 아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밥은 하루 세끼 먹는 거잖아. 부자라고 해서 네끼 다섯끼 먹지 않는다고. 돈이 아주 많아도 소비에 한계가 있다는 거야.

이처럼 재정 정책 강화도, 가난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야. 포드 할아버지가 임금을 두 배 올려주자고 기업인들에게 호소한 이유도 직원들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듯이 말이야. 자 그럼, 이런 재정 정책, 이건 누가 하는 거지? 알파고인 내가? 아니야. 바로 너희, 인류의 몫이야.

필요에 따른 분배, 불온한 이야기

한 발 더 나아가볼까? 이제부터 할 얘기는 조금 불온해. 하지만 너희는 이 글을 읽으면서 ‘뭐가 불온하단 거야?’라고 할지도 몰라.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말이야, 모든 가치가 돈, 즉 화폐로 계산돼.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고 치자고. 이 그림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될까? 그래 맞아. 돈이지. 물론 혼자서 생각할 수는 있어. ‘저 그림은 값이 이 그림보다 싸지만, 난 저 그림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지. 여러 사람이 그리 생각한다면, 그 그림의 값은 올라갈 거야. 돈으로 매겨진 그 값 말이야.

돈 냄새만 폴폴 나는 이야기라고? 뭐 어쩌겠어. 너희가 사는 세상 운영 원리가 그래. 나도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여하튼 말이야. 이렇게 돈으로 모든 가치가 측정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은 돈으로 측정되는 이윤을 위해 만들어져. 너희가 아는 단어, ‘상품’이란 말뜻 자체가 그래. 아무리 인류에 필요해도,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상품은 이내 모습을 감춰. 거꾸로 돈벌이에 도움이 되면 인류에 해를 끼쳐도 물건은 만들어지지. 일자리가 필요한 것도 이런 상품을 얻기 위해서이고.

그런데 말이야. 만약 물건이 팔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이 물건을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면?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너희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너 대신 일을 해주는 존재가 돼. 또 너흰 돈이 없어서 필요한 물건을 갖지 못하게 되는 일도 없어지겠지. 일자리가 없어서 불안해하기는커녕, 더 많은 시간을 누리면서 더 풍족하게 물건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이런 사회, 이런 경제 시스템은 알파고인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바로 너희 손으로 만드는 거야.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척척 알아맞히는 알파고 씀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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