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 행사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에는 백화점 71곳, 대형마트 398곳, 편의점 2만5400곳 등이 참여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6) 블랙프라이데이
(6) 블랙프라이데이
블랙프라이데이! 이달 들어 보름간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 상점에서 물건을 매우 싸게 팔고 있어요. 구름처럼 사람들이 상점에 몰려든다는 소식, 할인율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거나 사고 싶은 물건은 할인 대상에서 쏙 빠져 있다는 불평도 들려요. 엄마 아빠와 함께 대형 상점에 가보니 어떠하던가요?
이번 행사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었어요. 상점마다 따로따로 하던 할인행사를 같은 시기에 모으는 구실을 했죠. 최대 70%라는 할인율도 각 상점들에 권고하거나 협조 형식을 빌려 정부가 직접 챙겼어요. 물건 파는 일에 정부가 깊숙하게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죠. 그러다 보니 정부 눈치 봐야 하는 상점이나 상점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 중에는 입이 삐죽 나온 곳들도 더러 있다고 해요.
궁금하지 않나요? 정부가 물건 파는 일에 소매 걷고 나선 이유가요. 원래 물건 파는 일은 상인의 몫, 물건 사는 일은 소비자의 몫이잖아요. 블랙프라이데이 원조인 미국에서도 이 행사에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대요. 정부는 물건 파는 과정에서 거짓말이나 속임수가 있는지 감시·감독하는 구실만 해요.
정부가 뜻밖의 일을 벌이고 나선 건 좋지 않은 경기를 살려보기 위해서라고 해요. 갖은 수단을 써왔으나 2~3년 내내 경기는 좀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거든요. 백화점·대형마트가 할인 행사를 하면 경기가 왜 좋아지느냐고요? 이번 글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려 해요. 그간 사람들이 왜 씀씀이를 줄였는지도 아울러 들여다봐요.
‘절약의 역설’을 아시나요
블랙프라이데이는 물건값을 깎아줘서 사람들이 돈을 쓰게 하는 데 목적이 있어요. 물건값을 대폭 깎아서라도 사람들의 지갑을 열려고 하는 거죠. 그만큼 사람들이 돈을 잘 안 써왔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좀체 열지 않으면 경제는 잘 안 돌아가요. 공장 창고엔 팔리지 않는 물건이 쌓이고, 기업들은 새 물건을 만들려 하지 않죠. 팔리지 않으니까요. 좀더 나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선뜻 나서기 어렵고,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일도 주저하게 되어요. 기계와 사람을 사들이는 투자와 이를 통해 물건을 만드는 생산, 만든 물건을 파는 판매와 같은 기업 활동이 모두 줄어든다는 이야기예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에 빠져요. 당장 임금이 잘 안 오르죠. 깎일 수도 있어요.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이 임금을 올려줄 수는 없지 않겠어요? 희망퇴직 바람이 언제 불지 불안감만 커져요. 경제가 어려울 때 일자리를 잃으면 새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대신 불안이 스며들어요.
기업과 국민이 돈을 잘 못 버는데 정부 곳간인들 튼실하겠어요? 곳간은 기업과 국민에게 걷는 세금으로 메워지고, 세금은 경기가 나쁘면 팍 줄어들어요. 쓸 데는 많은데 세금은 안 걷히니 정부도 돈을 빌릴 수밖에 없죠. 세금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 되죠. 결국 정부도 씀씀이를 줄이게 되죠.
결국 경제의 3주체라고 불리는 국민(가계), 기업, 정부가 모두 힘들어지는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겠죠?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여러분으로선 이런 설명에 조금 놀랐을 수도 있어요. 돈을 쓰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진다니 말이에요.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절약의 역설’이라고 설명해요. 개인 차원에서는 절약이 바람직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에는 때로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죠.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씀씀이를 줄이는 이유는 복잡해요. 경제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학자들이나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공무원들,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들도 그 이유를 콕 짚어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올바른 해법을 내놓기도 어려워요.
그래도 씀씀이가 줄어드는 이유로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어요. 일단 쓸 돈이 넉넉하지 않아요. 2000년대 들어 가계의 돈벌이가 좋지 않았어요.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돈만큼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주지 않아서죠. 이 기간 동안 안정성이 떨어지고 급여가 적은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가계의 주머니가 얇아진 원인으로 꼽혀요.
두번째는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어둡게 보고 있는 것도 씀씀이를 줄이는 이유로 꼽혀요. 앞으로 경제가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도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보고, 씀씀이를 줄이지 않을 거예요. “먼저 쓰고 보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반대로 지갑이 두둑한 사람이라도 앞으로는 경제가 나빠져서 돈을 잘 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씀씀이를 줄이기 마련이죠.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닌 거죠.
소비심리는 2008년 때부터 뚜렷하게 나빠졌다고 해요. 금융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요동을 치던 때죠. 그 악몽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선 또다시 언제 그런 위기가 올까 두려워 지갑을 움켜쥐고 있다는 거예요. 돈을 좀 벌더라도 쓰기보다는 저축을 하게 되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씀씀이를 줄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거예요.
세번째로 꼽히는 이유는 집과 관련이 있어요. 집값이 비싸요. 10년 동안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한채 사기 어렵다고 해요. 또 2000년대는 집값이 매우 빠르게 올랐죠.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잖아요.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쓰기보단 저축을 했고, 집을 사려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이 빚을 갚느라 다른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요.
정부가 직접 챙긴 ‘70% 할인’
2008년 뒤 위축된 소비심리 풀고
지갑 열게 하는 블랙프라이데이
과거엔 수출이 성장 엔진이었다면
지금은 내수 소비 중요성도 커져 소비 엔진의 힘 좋아지기 위해선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깨고
정부-가계-기업 선순환 이어져야
싼값에 잠깐 몰렸다 지갑 닫는
‘소비 절벽’ 나타나면 안돼요 미국은 소비가 주력 엔진, 우리는? 이번엔 우리 경제에서 소비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 해요. 경제를 성장시키는 엔진은 크게 두개로 구분해요. 소비와 수출이죠. 어느 나라나 두가지 엔진으로 경제가 성장하지만, 주력으로 삼는 엔진은 나라마다 달라요. 미국은 소비가 주력 엔진이에요. 땅덩어리가 넓고 국민의 소득 수준도 높아요. 사람도 많지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만으로도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요. 더구나 미국 돈(달러)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쓸 수 있잖아요. 굳이 외화를 벌기 위해 국외에 물건을 내다 팔 이유는 없는 거죠. 미국이 2008년 위기 이후 한동안 경제가 나빴던 것도 소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어요. 금융위기 전후로 집값이 크게 내렸고, 망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빚더미에 빠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죠. 소비의 핵심 계층인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거예요. 경제개발이 덜 된 나라나 사람이 적은 나라들은 주로 수출을 핵심 성장 엔진으로 삼아요. 국내시장이 좁으니 해외에 물건을 내다 팔아 돈을 버는 거지요. 석유나 철, 구리 같은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도 수출을 주력으로 삼는 나라죠. 이런 나라의 경제는 바깥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나라 밖 경제가 썩 좋지 않다면, 다시 말해 물건을 사줘야 할 해외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면 수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어느 쪽일까요? ‘수출만이 살길’이란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예요. 우리나라도 수출을 주력 성장 엔진으로 삼아왔어요. 땅이 좁고 소득 수준이 낮아 국내시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외화도 벌어야 했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원재료를 사와 조립·가공해 만든 완성품을 해외시장에 내다 파는 방식으로 경제를 키워왔어요. 알고 있는 기업 이름을 하나둘 떠올려봐요. 삼성전자, 엘지(LG)전자,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에너지(현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이에요. 공통점은? 그렇죠. 하나같이 수출 대기업들이죠. 삼성전자가 한해 버는 돈의 80%는 다른 나라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나와요. 현대자동차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출이 우리나라의 살길이다 보니, 정부 정책도 수출 기업을 도와주는 쪽으로 맞춰졌어요. 수출 기업엔 세금도 깎아주고 자금도 몰아줬죠.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땐 돈값을 떨어뜨리는 응급조처도 우리 정부는 곧잘 했어요. 다른 나라 돈에 견준 우리나라 돈의 값이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도 싸져 돼 더 많이 팔 수가 있죠. 여전히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에 중요하지만, 이제는 무게감이 예전만 못해요. 앞으로도 수출이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될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늘고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죠. 수출이 잘되려면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물건이 다른 나라 기업이 만든 것보다 더 매력적이어야 할 것 아니겠어요? 물건값이 싸거나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점점 어려운 일이 돼 가고 있어요. 자동차만 봐도 그래요. 불과 3~4년 전만 해도 중국이 만든 자동차는 ‘짝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외국 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만들지도 못했죠. 우리나라 기업의 적수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우리나라 자동차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질이 좋아졌어요. 가격은 우리나라 차보다 훨씬 싸죠. 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이라 할 수 있는 휴대전화나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는 배, 철강 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품목에서 중국의 추격이 매우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 아마도 중국의 도전은 앞으로 더더욱 거세게 몰아칠 거예요.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요. 그래서 또다른 성장 엔진, 바로 소비의 중요성이 부쩍 커진 거예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수출 실적만큼이나 소비 흐름을 다룬 뉴스가 많이 나와요. 비행기도 하나가 고장이 나더라도 다른 엔진만 정상 작동하면 추락하지 않잖아요. 수출 엔진이 삐걱대자 소비라는 또다른 엔진의 중요성이 커진 거예요. 두 엔진 모두 꺼지면 경제는 추락하지요. 다이어트 뒤의 요요현상처럼 그럼 다시 블랙프라이데이 이야기로 돌아가봐요. 블랙프라이데이가 꺼져가는 소비 엔진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블랙프라이데이는 물건값을 깎아줘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했어요. 앞에서 설명한 씀씀이가 줄어든 세가지 이유 중 어느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르기 쉽지 않을 거예요. 굳이 선택하자면 물건값 할인이 소비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두번째 이유를 꼽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소비심리가 나쁜 건 물건값이 비싸서가 아니라고 했죠?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기 때문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거라고 했어요. 물건값 할인이 소비심리를 살리는 데 큰 효과를 내기는 애초부터 어려운 거죠. 고민스러운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할인행사를 1년 365일 매일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또 물건값을 깎아준다 해서 지갑이 얇은 사람은 여전히 돈을 쓰기 어렵죠.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때 돈을 많이 써버린 사람 중에도 앞으로는 지갑을 더 움켜쥘 수 있어요. 미리 필요한 물건을 사버렸는데, 앞으로 또 살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내년 초에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소비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래서죠. 블랙프라이데이가 인기몰이를 하면 할수록 경기가 올해 말엔 반짝 살아나다가 내년엔 푹 꺼질 수 있다는 거예요. 무리한 다이어트 뒤에 나타나는 부작용과 비슷하죠. 다이어트를 지나치게 할수록 빠졌던 몸무게가 금세 되돌아오거나 더 많이 불어나는 ‘요요현상’ 말이에요. 이번 행사는 대박을 쳐도 몇달 뒤 나타날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김경락 경제부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 경제부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2008년 뒤 위축된 소비심리 풀고
지갑 열게 하는 블랙프라이데이
과거엔 수출이 성장 엔진이었다면
지금은 내수 소비 중요성도 커져 소비 엔진의 힘 좋아지기 위해선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깨고
정부-가계-기업 선순환 이어져야
싼값에 잠깐 몰렸다 지갑 닫는
‘소비 절벽’ 나타나면 안돼요 미국은 소비가 주력 엔진, 우리는? 이번엔 우리 경제에서 소비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 해요. 경제를 성장시키는 엔진은 크게 두개로 구분해요. 소비와 수출이죠. 어느 나라나 두가지 엔진으로 경제가 성장하지만, 주력으로 삼는 엔진은 나라마다 달라요. 미국은 소비가 주력 엔진이에요. 땅덩어리가 넓고 국민의 소득 수준도 높아요. 사람도 많지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만으로도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요. 더구나 미국 돈(달러)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쓸 수 있잖아요. 굳이 외화를 벌기 위해 국외에 물건을 내다 팔 이유는 없는 거죠. 미국이 2008년 위기 이후 한동안 경제가 나빴던 것도 소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어요. 금융위기 전후로 집값이 크게 내렸고, 망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빚더미에 빠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크게 늘었죠. 소비의 핵심 계층인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거예요. 경제개발이 덜 된 나라나 사람이 적은 나라들은 주로 수출을 핵심 성장 엔진으로 삼아요. 국내시장이 좁으니 해외에 물건을 내다 팔아 돈을 버는 거지요. 석유나 철, 구리 같은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도 수출을 주력으로 삼는 나라죠. 이런 나라의 경제는 바깥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나라 밖 경제가 썩 좋지 않다면, 다시 말해 물건을 사줘야 할 해외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면 수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어느 쪽일까요? ‘수출만이 살길’이란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예요. 우리나라도 수출을 주력 성장 엔진으로 삼아왔어요. 땅이 좁고 소득 수준이 낮아 국내시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외화도 벌어야 했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원재료를 사와 조립·가공해 만든 완성품을 해외시장에 내다 파는 방식으로 경제를 키워왔어요. 알고 있는 기업 이름을 하나둘 떠올려봐요. 삼성전자, 엘지(LG)전자,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에너지(현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이에요. 공통점은? 그렇죠. 하나같이 수출 대기업들이죠. 삼성전자가 한해 버는 돈의 80%는 다른 나라 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나와요. 현대자동차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출이 우리나라의 살길이다 보니, 정부 정책도 수출 기업을 도와주는 쪽으로 맞춰졌어요. 수출 기업엔 세금도 깎아주고 자금도 몰아줬죠.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땐 돈값을 떨어뜨리는 응급조처도 우리 정부는 곧잘 했어요. 다른 나라 돈에 견준 우리나라 돈의 값이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도 싸져 돼 더 많이 팔 수가 있죠. 여전히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에 중요하지만, 이제는 무게감이 예전만 못해요. 앞으로도 수출이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될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늘고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죠. 수출이 잘되려면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물건이 다른 나라 기업이 만든 것보다 더 매력적이어야 할 것 아니겠어요? 물건값이 싸거나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점점 어려운 일이 돼 가고 있어요. 자동차만 봐도 그래요. 불과 3~4년 전만 해도 중국이 만든 자동차는 ‘짝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외국 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만들지도 못했죠. 우리나라 기업의 적수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우리나라 자동차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질이 좋아졌어요. 가격은 우리나라 차보다 훨씬 싸죠. 자동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이라 할 수 있는 휴대전화나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는 배, 철강 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품목에서 중국의 추격이 매우 빨리 진행되고 있어요. 아마도 중국의 도전은 앞으로 더더욱 거세게 몰아칠 거예요.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요. 그래서 또다른 성장 엔진, 바로 소비의 중요성이 부쩍 커진 거예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도 수출 실적만큼이나 소비 흐름을 다룬 뉴스가 많이 나와요. 비행기도 하나가 고장이 나더라도 다른 엔진만 정상 작동하면 추락하지 않잖아요. 수출 엔진이 삐걱대자 소비라는 또다른 엔진의 중요성이 커진 거예요. 두 엔진 모두 꺼지면 경제는 추락하지요. 다이어트 뒤의 요요현상처럼 그럼 다시 블랙프라이데이 이야기로 돌아가봐요. 블랙프라이데이가 꺼져가는 소비 엔진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블랙프라이데이는 물건값을 깎아줘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했어요. 앞에서 설명한 씀씀이가 줄어든 세가지 이유 중 어느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르기 쉽지 않을 거예요. 굳이 선택하자면 물건값 할인이 소비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두번째 이유를 꼽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소비심리가 나쁜 건 물건값이 비싸서가 아니라고 했죠?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기 때문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거라고 했어요. 물건값 할인이 소비심리를 살리는 데 큰 효과를 내기는 애초부터 어려운 거죠. 고민스러운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할인행사를 1년 365일 매일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또 물건값을 깎아준다 해서 지갑이 얇은 사람은 여전히 돈을 쓰기 어렵죠.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때 돈을 많이 써버린 사람 중에도 앞으로는 지갑을 더 움켜쥘 수 있어요. 미리 필요한 물건을 사버렸는데, 앞으로 또 살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내년 초에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소비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래서죠. 블랙프라이데이가 인기몰이를 하면 할수록 경기가 올해 말엔 반짝 살아나다가 내년엔 푹 꺼질 수 있다는 거예요. 무리한 다이어트 뒤에 나타나는 부작용과 비슷하죠. 다이어트를 지나치게 할수록 빠졌던 몸무게가 금세 되돌아오거나 더 많이 불어나는 ‘요요현상’ 말이에요. 이번 행사는 대박을 쳐도 몇달 뒤 나타날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김경락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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