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한해 텔레비전 시장의 규모가 120조원이다. 개인용컴퓨터(PC)는 200조,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백색가전은 다 합쳐야 1년에 300조원 정도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장이 400조원 규모다. 텔레비전은 세상에 나온지 100년여 만에 이런 규모로 커졌지만, 스마트폰은 10년도 안 돼 400조원 시장이 됐다. 과연 스마트폰처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큰 시장을 창출할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 한 임원의 말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가이던스(잠정치)가 발표된 지난 8일 이후 삼성전자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앞세운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4할 타자가 어쩌다 3할을 친 것일 뿐,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는 평가도 있다. 한 예로, 삼성전자와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경쟁사 엘지(LG)전자의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1조2847억원으로,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 악화는 그동안 삼성이 그만큼 잘해왔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실적 악화를 위기의 징후로 보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다. 삼성전자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인 ‘스마트폰’이 성장 정체에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속한 인터넷·모바일(IM) 부문은 현재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의 68%(2013년 기준)를 차지한다. 가전 부문이 올해 전세계 1등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다, 경쟁업체의 소멸로 과점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반도체 부문의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곤 해도, 스마트폰의 성장 엔진이 꺼진다면 그 ‘공백’을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삼성전자 실적 악화 ‘위기 징후’
스마트폰에 산업 편중된 탓도
신생 ‘샤오미’ 중국 점유율 3위로
가격 경쟁력선 중국 이기기 어려워
노터블·스마트홈·사물인터넷 등
대안 모색하지만 IT업계 안갯속
엘지경제연구원의 신동형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의 성장 정체는 전세계 아이시티(ICT)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스마트폰 하나에 지나치게 전자산업이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그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위기가 곧 삼성전자의 위기인 동시에 한국 전자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샤오미를 너무 쉽게 봤다.”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은 2분기 실적 악화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격화와 성장 둔화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업체가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4년차 신생 스마트폰 제조업체다.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과 서비스로 전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단박에 시장점유율 3위로 올라서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샤오미를 비롯해 화웨이, 레노버 등 중국 업체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거의 20%대에 육박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이 2016년 이후 보급형을 포함한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은 휴대폰 시장의 경쟁이 ‘기술 경쟁’에서 ‘가격 경쟁’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윤덕균 한양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갤럭시 5 이후 스마트폰의 기술 혁신이 더이상 크게 이뤄질 게 없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결국 가격 싸움인데, 가격 경쟁력 면에선 중국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새로운 혁신의 동력을 찾지 못한 채 중국에 시장을 내준 개인용컴퓨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키아가 망가진 건 위기의 징후가 보인지 불과 2년여 만이었다”고 덧붙였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넥스트 10년을 준비하라’, ‘선도적 기업의 딜레마와 극복 전략’ 등 최근 삼성의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진행된 강의의 주제들은 스마트폰 이후 시대에 대한 삼성전자의 위기 의식을 보여준다.
삼성전자에선 스마트폰 이후 삼성전자를 연착륙시켜줄 새로운 동력 찾기가 한창이다. 단기적으로는, ‘노터블’(노트로 대표되는 대형화면 패블릿과 태블릿·웨어러블의 합성어)로 스마트폰 판매 부진을 메꾸고 기업간거래(B2B) 시장 등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시장을 개척하면서, 길게는 스마트홈이나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게 한 축이다. 또 태양광과 자동차 부품,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의료기기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처럼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중 무엇 하나 확실히 ‘될 것’으로 보이는 사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아이시티 업체 전체에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가전과 반도체, 스마트폰의 3각 체제의 균형을 맞춰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최소화하며 새로운 시장이 열리길 준비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다행인 것은, 삼성전자가 완제품(세트)과 부품의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어 스마트홈이나 사물인터넷 시대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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