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 영산대 교수
한성안의 경제산책
요즘 경제학계에서 ‘신제도주의경제학자’들의 입김이 세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을 뒷받침하는 매우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이 경제를 이해하는 열쇳말은 ‘거래비용’이다. 곧 거래하는 과정에서 드는 지나친 비용 때문에 ‘시장실패’와 같은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시장원리를 확대하자는 정책을 제시한다. 즉 거래비용이 발생하는 영역 자체를 영리추구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곧 사업자금을 조달할 때 생기는 거래비용 감축을 위해 은행과 증권회사가 들어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와 주식시장의 붕괴 사례로 입증되듯이 이러한 영리원리를 내세운 시장실패의 교정 방식은 대부분 더 큰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소설일 뿐이지만, 영리원리를 확대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제로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그런 상황에서도 시장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재화들을 제대로 공급하는 데는 실패한다. 첫째, 영리기업이 가로등처럼 돈 안 되는 공공재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둘째, 시장은 민주주의, 공공의 선, 시민정신과 같은 가치재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에 적대적일 뿐이다. 셋째, 결혼정보회사와 로펌이 사랑과 정의를 상품으로 타락시킨 것처럼 시장이 공급함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가 되레 훼손되거나 타락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할 뿐 아니라 공공선을 이루어내는 이 모든 ‘가치재’들을 영리원리 아래 두면 공동체는 붕괴할 것이며 인간사회는 정글로 타락하고 만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영리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며 구성원의 ‘사명’에 따라 행동하는 ‘비영리조직’에 의해 공급되어야 한다.
의료서비스는 어떤가? 이는 인간의 원초적 삶에 긴급한 영향을 미치지만, 재화에 대한 정보가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매우 비대칭적으로 배분되어 있는 재화다. 이런 재화가 영리원칙 아래 놓이면 일부 공급자들은 기회주의적 행동을 보임으로써 폭리를 취하고자 한다. 이 경우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생명의 위기에 무차별 노출된다. 따라서 의료서비스와 같은 재화가 시장에서 공급될 경우 영리원칙이 대단히 엄격한 조건 아래 적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이런 비영리기업에 대해서는 ‘이익분배금지조건’이 적용된다. 벌어들인 이윤을 다른 곳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런 재화를 공급하는 사람들에겐 더 큰 사회의식과 사명감이 요구된다. 타율적 규제에 앞서 자율적 사명감이 비영리기업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의료서비스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공격이 거세다. 신제도경제학자들이 뒤에서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의 영리화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붕괴와 타락을 초래한다. 의사는 물론 온 국민이 의료서비스의 영리화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먼저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읽던 그날의 뜨거운 가슴을 기억해준다면 박근혜 정부와 신제도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더욱 쉬워질지도 모른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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