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현 교수는 속사포처럼 의견을 쏟아냈다. 집중력이 흐려질 틈을 주지 않는 스타일이다. 인터뷰 내내 “두서가 없어 미안하다”고 했지만 일관된 원칙과 철학을 드러냈다. 비판에는 구체적인 수치와 논리가 뒤따랐다. 나라살림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강한 소신도 엿보였다. 그는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은 “정확히 국민들이 내는 세금 수준과 일치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증세 통한 복지확충’ 주장 황성현 교수
인터뷰/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인터뷰/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참여정부 때 한국조세연구원장을 지낸 황성현(49)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보수적인 재정학계에선 드물게 이명박 정부의 나라살림에 대해 쓴소리를 해온 학자다. 하지만 그는 “그다지 진보도 아니며, 단지 경제학은 현실을 바꿔나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거꾸로 가는 정책 기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소의 증세를 통한 복지 확충’을 주장한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위기와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에 나라살림 운영의 최대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 수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삶의 질 지표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야 “나라가 산다”며, 세금은 올리지 않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건 국민들을 기만하는 “가짜 복지”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안은 ‘고집불통 예산안’이라고 꼬집었다. 여론에 밀려 추가 감세를 철회했지만,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 기조는 더욱 강화됐다는 게 그 이유다.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저출산·고령화·양극화는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
감세·작은정부 유지한 내년 예산안은 `불통 예산안’
실물경제 불확실한데 세금 깎아준다고 투자 늘겠나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했고 기관장도 지내셨는데,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하신다. “경제학계, 특히 재정 쪽이 보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사실 나는 그다지 진보 성향도 아니고, 미국에서 공부한 시장주의자다. 다만 상대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는 쪽일 뿐이다. 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탓에 정책 기조에 대해 쓴소리를 자주 하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경제학자로서 현실에 참여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떠나 학교로 간 이유는? “연구 인프라가 좋고 국책사업과 정부의 기금이나 예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국책연구원 특성상 연구 주제에 한계가 있고 정부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좀 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활동하려 학교로 옮겼다.” -한국조세연구원장으로 가게 된 경위는? “학교에서 많은 정책 자문과 정부 용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천타천 추천을 받아 공모에 응했다. 큰 틀에서 참여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임기가 3년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당시 국책연구원장들이 모두 일괄사표를 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먼 기관과 직원들이 피해를 본다. 그만두고 얼마 안 돼 정부가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놨는데, 내 소신과 다른 정책 기조를 뒷받침하는 일을 계속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만두는 게 순리였다. 단지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명박 정부의 나라살림 운영 기조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한다면?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감세와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최근 추가 감세를 철회했지만 그 기조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재정 여건과 경제발전 단계 등에 비춰볼 때, 이런 경제운용 방향은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문제는 그저 하나의 여건이 아니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이 문제 대부분이 시장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과 교육,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게 바로 지금 국가와 재정이 할 일이다.” -재정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건가? “한 나라의 국민 부담과 재정 규모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게 조세부담률이다. 경제 규모(경상 국내총생산)에 견줘 나라에서 얼마나 세금을 거둬 쓰느냐를 보여준다.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선진국보다 6~7%포인트 낮고, 여기에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9~10%포인트 낮다. 재정 규모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재정 수요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소득과 고령화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경제 성장률이 높고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그에 맞춰 재정 수입과 지출을 늘려가는 게 맞다. 즉, 조세 부담과 재정 규모, 복지 지출 등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격차를 더 벌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내년 예산안과 중기 재정 계획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건국 이래 조세부담률이 가장 높았던 때가 참여정부 말인 2007년 21%다. 당시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보다 5%포인트 정도 낮은 것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대규모 감세를 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올해 조세부담률이 19.3%까지 떨어졌고, 내년에는 19.2%로 더 낮아진다. 이렇게 세입은 낮춰 잡고 재정 균형을 앞당기려 하다 보니 지출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명목 성장률을 연 7%대로 잡아놓고 정부 씀씀이 증가율은 연 4%대로 묶어놨다. 이렇게 되면 의무 지출을 제외하고 정부가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재정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재량 지출 증가율은 내년에는 2%대, 2013년부터는 1%대 미만으로 떨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재정 규모를 계속 줄이는 것은 당면한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 운영은 큰 시대적 흐름을 봐야 하지 않나. 아마 시간이 흘러 역대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인구 위기 극복 등 미래 대비 투자를 하지 않은 게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실정으로 지적될 것이다.” -정부는 감세를 통해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늘어나고 궁극적으로 재정도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감세 효과는 분석 모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세율을 낮추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이른바 ‘감세의 선순환’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금을 더 걷었는지 덜 걷었는지는 소득 대비로 봐야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해, 조세부담률이 높아지면 증세고, 낮아지면 감세인 거다. 그런데 이 정부는 조세부담률을 2015년에도 2007년보다 1.3%포인트 낮은 19.7%로 잡았다. 나라가 할 일은 많아지는데 조세부담률이 이런 수준에 머물면 재정이 튼튼해질 수 없다. 지금 기업들이 현금 쌓아두는 게 실물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인데, 세금 얼마 깎아준다고 투자를 늘리겠는가. 민간 경제영역이 세금에 억눌려 투자나 소비에 제한을 받는다고 보는 건 잘못된 진단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균형 재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인데. “맞는 말이다.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려면 재정수지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건전 재정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세수 증가는 미미한데 재정 흑자를 만들려니 결국 지출 쪽을 확 줄이는 수밖에 없다. 국민들 보기엔 정부가 세 부담 낮춰주면서 재정 수지도 흑자로 만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재정 운용은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높이려면 보육과 교육, 주택 등의 부문에 상당한 선행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당장에는 표가 나지 않는다. 이 정부 들어 저출산·고령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으거나 의미있는 재정 투자를 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고 달성하는 재정 균형은 의미가 없다. 균형재정 달성이란 성적표에 연연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복지 예산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청와대와 정부는 연일 ‘복지 포퓰리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으로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매력 기준 소득통계를 보면, 우리는 오이시디 34개국 중 소득규모 8위이고, 1인당으로 봐도 19위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영국·프랑스·일본이 14~18위로 바로 우리 앞이다. 국민소득 수준에서 우리는 이미 오이시디 평균에 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복지규모와 빈곤율 등 우리의 삶의 질 순위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선진국의 40% 수준이다. 고령화 비율을 감안해도 70%가 안 된다. 이런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2015년까지 평균 복지지출 증가율(5.8%)을 경상 성장률(7.6%)보다 훨씬 밑돌게 책정했다. 그러면 복지지출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래놓고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 30~40년 뒤엔 자동적으로 복지지출 비중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복지지출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재정계획을 짜놓고 어떻게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복지와 분배의 공평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복지와 성장을 대립된 정책 목표로 보는 것은 다분히 이념적인 구분법이다. 성장 없는 복지와 분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복지를 강조하는 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늘리기 위해 보육에 투자하는 게 복지정책인가?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해야 성장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소득 수준은 OECD 평균, 삶의 질 순위는 꼴찌
조세부담·재정규모·복지지출 선진국과 격차 줄여야
‘지속가능한 성장’ 위해서도 복지 강조하는 건 당연 -참여정부 때 종부세가 큰 논란이 됐다. 이른바 ‘세금폭탄론’이 대두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했는데? “조세 부과의 첫번째가 ‘능력 과세’ 원칙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게 공평한 거다. 그 능력의 기준이 소득과 재산이다. 우리는 소득과 재산 과세 기능이 낮다. 실제로 1970년대 대형 아파트 보유세가 당시 포니 자동차에 물린 세금보다 적었다. 우리처럼 부동산 불로소득이 많은 나라에서 재산 과세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거다. 종부세는 상위 1% 자산가에 물린 것이고, 세수 규모로 따지면 한 해 2조~3조원 수준이었다. 세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는 구조여서 징벌적 과세 논란이 일었지만, 재산 과세를 강화하는 원칙적인 방향은 맞다.” -세계적으로 ‘부자 증세’ 요구가 거세다. 우리도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부유세 주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삼아 세목을 신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부자의 책무를 강조하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다만 기본 원리에 충실하면 된다. 소득이 많을수록, 재산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물리는 게 원칙이다. 선진국 수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소득·재산 과세를 강화하는 게 해법이다.” -미래 대비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일반 국민들의 조세 저항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재정 낭비에 대한 납세자들의 불신도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금 올려서 성공한 정권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갈수록 삶의 질이 떨어져 복지 수요가 분출되는 상황이고, 저출산·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위기에 닥쳐 있다. 뉴욕 월가 시위에서 보듯, 시장 실패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시대적인 흐름과 요구가 달라졌다면, 정치 지도자와 정부는 국민들을 정면으로 설득하고 돌파해야 한다. 세 부담을 안 늘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포퓰리즘이고 ‘가짜 복지’다.”
감세·작은정부 유지한 내년 예산안은 `불통 예산안’
실물경제 불확실한데 세금 깎아준다고 투자 늘겠나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했고 기관장도 지내셨는데,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하신다. “경제학계, 특히 재정 쪽이 보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사실 나는 그다지 진보 성향도 아니고, 미국에서 공부한 시장주의자다. 다만 상대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는 쪽일 뿐이다. 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탓에 정책 기조에 대해 쓴소리를 자주 하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경제학자로서 현실에 참여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떠나 학교로 간 이유는? “연구 인프라가 좋고 국책사업과 정부의 기금이나 예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국책연구원 특성상 연구 주제에 한계가 있고 정부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좀 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활동하려 학교로 옮겼다.” -한국조세연구원장으로 가게 된 경위는? “학교에서 많은 정책 자문과 정부 용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천타천 추천을 받아 공모에 응했다. 큰 틀에서 참여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임기가 3년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당시 국책연구원장들이 모두 일괄사표를 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먼 기관과 직원들이 피해를 본다. 그만두고 얼마 안 돼 정부가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놨는데, 내 소신과 다른 정책 기조를 뒷받침하는 일을 계속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만두는 게 순리였다. 단지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명박 정부의 나라살림 운영 기조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한다면?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감세와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최근 추가 감세를 철회했지만 그 기조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재정 여건과 경제발전 단계 등에 비춰볼 때, 이런 경제운용 방향은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문제는 그저 하나의 여건이 아니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이 문제 대부분이 시장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과 교육,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게 바로 지금 국가와 재정이 할 일이다.” -재정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건가? “한 나라의 국민 부담과 재정 규모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게 조세부담률이다. 경제 규모(경상 국내총생산)에 견줘 나라에서 얼마나 세금을 거둬 쓰느냐를 보여준다.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선진국보다 6~7%포인트 낮고, 여기에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9~10%포인트 낮다. 재정 규모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재정 수요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소득과 고령화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경제 성장률이 높고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그에 맞춰 재정 수입과 지출을 늘려가는 게 맞다. 즉, 조세 부담과 재정 규모, 복지 지출 등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격차를 더 벌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내년 예산안과 중기 재정 계획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건국 이래 조세부담률이 가장 높았던 때가 참여정부 말인 2007년 21%다. 당시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보다 5%포인트 정도 낮은 것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대규모 감세를 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올해 조세부담률이 19.3%까지 떨어졌고, 내년에는 19.2%로 더 낮아진다. 이렇게 세입은 낮춰 잡고 재정 균형을 앞당기려 하다 보니 지출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명목 성장률을 연 7%대로 잡아놓고 정부 씀씀이 증가율은 연 4%대로 묶어놨다. 이렇게 되면 의무 지출을 제외하고 정부가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재정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재량 지출 증가율은 내년에는 2%대, 2013년부터는 1%대 미만으로 떨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재정 규모를 계속 줄이는 것은 당면한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 운영은 큰 시대적 흐름을 봐야 하지 않나. 아마 시간이 흘러 역대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인구 위기 극복 등 미래 대비 투자를 하지 않은 게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실정으로 지적될 것이다.” -정부는 감세를 통해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늘어나고 궁극적으로 재정도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감세 효과는 분석 모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세율을 낮추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이른바 ‘감세의 선순환’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금을 더 걷었는지 덜 걷었는지는 소득 대비로 봐야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해, 조세부담률이 높아지면 증세고, 낮아지면 감세인 거다. 그런데 이 정부는 조세부담률을 2015년에도 2007년보다 1.3%포인트 낮은 19.7%로 잡았다. 나라가 할 일은 많아지는데 조세부담률이 이런 수준에 머물면 재정이 튼튼해질 수 없다. 지금 기업들이 현금 쌓아두는 게 실물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인데, 세금 얼마 깎아준다고 투자를 늘리겠는가. 민간 경제영역이 세금에 억눌려 투자나 소비에 제한을 받는다고 보는 건 잘못된 진단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균형 재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인데. “맞는 말이다.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려면 재정수지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건전 재정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세수 증가는 미미한데 재정 흑자를 만들려니 결국 지출 쪽을 확 줄이는 수밖에 없다. 국민들 보기엔 정부가 세 부담 낮춰주면서 재정 수지도 흑자로 만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재정 운용은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높이려면 보육과 교육, 주택 등의 부문에 상당한 선행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당장에는 표가 나지 않는다. 이 정부 들어 저출산·고령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으거나 의미있는 재정 투자를 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고 달성하는 재정 균형은 의미가 없다. 균형재정 달성이란 성적표에 연연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복지 예산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청와대와 정부는 연일 ‘복지 포퓰리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으로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매력 기준 소득통계를 보면, 우리는 오이시디 34개국 중 소득규모 8위이고, 1인당으로 봐도 19위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영국·프랑스·일본이 14~18위로 바로 우리 앞이다. 국민소득 수준에서 우리는 이미 오이시디 평균에 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복지규모와 빈곤율 등 우리의 삶의 질 순위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선진국의 40% 수준이다. 고령화 비율을 감안해도 70%가 안 된다. 이런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2015년까지 평균 복지지출 증가율(5.8%)을 경상 성장률(7.6%)보다 훨씬 밑돌게 책정했다. 그러면 복지지출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래놓고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 30~40년 뒤엔 자동적으로 복지지출 비중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복지지출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재정계획을 짜놓고 어떻게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복지와 분배의 공평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복지와 성장을 대립된 정책 목표로 보는 것은 다분히 이념적인 구분법이다. 성장 없는 복지와 분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복지를 강조하는 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늘리기 위해 보육에 투자하는 게 복지정책인가?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해야 성장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소득 수준은 OECD 평균, 삶의 질 순위는 꼴찌
조세부담·재정규모·복지지출 선진국과 격차 줄여야
‘지속가능한 성장’ 위해서도 복지 강조하는 건 당연 -참여정부 때 종부세가 큰 논란이 됐다. 이른바 ‘세금폭탄론’이 대두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했는데? “조세 부과의 첫번째가 ‘능력 과세’ 원칙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게 공평한 거다. 그 능력의 기준이 소득과 재산이다. 우리는 소득과 재산 과세 기능이 낮다. 실제로 1970년대 대형 아파트 보유세가 당시 포니 자동차에 물린 세금보다 적었다. 우리처럼 부동산 불로소득이 많은 나라에서 재산 과세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거다. 종부세는 상위 1% 자산가에 물린 것이고, 세수 규모로 따지면 한 해 2조~3조원 수준이었다. 세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는 구조여서 징벌적 과세 논란이 일었지만, 재산 과세를 강화하는 원칙적인 방향은 맞다.” -세계적으로 ‘부자 증세’ 요구가 거세다. 우리도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부유세 주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삼아 세목을 신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부자의 책무를 강조하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다만 기본 원리에 충실하면 된다. 소득이 많을수록, 재산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물리는 게 원칙이다. 선진국 수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소득·재산 과세를 강화하는 게 해법이다.” -미래 대비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일반 국민들의 조세 저항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재정 낭비에 대한 납세자들의 불신도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금 올려서 성공한 정권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갈수록 삶의 질이 떨어져 복지 수요가 분출되는 상황이고, 저출산·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위기에 닥쳐 있다. 뉴욕 월가 시위에서 보듯, 시장 실패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시대적인 흐름과 요구가 달라졌다면, 정치 지도자와 정부는 국민들을 정면으로 설득하고 돌파해야 한다. 세 부담을 안 늘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포퓰리즘이고 ‘가짜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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