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정부는 나 몰라라 하지, 대기업은 반발하지, 중소기업도 화끈하게 도와주는 것 같지는 않아 좀 섭섭하고 외롭다”며 복잡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동반성장은 이제 전세계적인 시대정신”이라며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사회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동반성장위원회 정운찬 위원장
인터뷰/최우성 산업팀장 morgen@hani.co.kr
이익공유제는 서로 협력해 파이 키워 나누자는 것
초과이익, 기업에 비축해 고용안정·기술개발하게
잘 실천하는 기업엔 정부가 인센티브 줘 장려해야 “최근 전미자동차노조가 이런 주장을 들고나왔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임금을 올리면 도요타나 현대자동차하고 우리 회사들이 경쟁이 안 될 것 같으니 임금 올려달란 말은 안 하겠다. 대신 나중에 성과 봐서 이익 많이 나면 더 나눠달라.’ 이게 바로 이익공유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윤이 생각보다 많이 나면 서로 나눠주는 계약 맺자는 거야.” 그는 미국 자동차노조의 움직임을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그래도 현실에선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다짐과 함께. 그럼에도 그의 입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섭섭하다” “힘들다”는 말이 쉼없이 튀어나왔다. 그로 하여금 희망과 탄식의 경계선 이편저편을 수시로 넘나들도록 만든 것이 바로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익공유제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위원장 맡은 지 6개월 됐는데 자리는 좀 잡힌 거 같나? “바쁜 머리로부터는 기대할 게 많지 않다는 말이 있지 않나. 굉장히 바쁘긴 한데 무언가 딱 부러지는 성과는 없는 것 같아 기운이 안 난다. 그래도 대-중소기업 관계를 많이 바꿔놓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익공유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정말 왜 필요한 건가?
“좋건 싫건 간에 한국은 지금 수출 의존적인 나라가 되지 않았나? 어쨌거나 우린 수출 덕에 살고 있다. 수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물건을 만들거나 값싼 물건을 만들거나, 아니면 좋은 물건을 값싸게 만들거나 셋 중 하나다. 우리 대기업들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초우량 글로벌 기업과는 품질 경쟁에서 아직은 밀리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 높이기 위해 납품단가 후려치기 하는 거라고 난 이해한다. 어찌 보면 납품가 인하하려고 덤비는 대기업 행태가 이해될 때도 있다. 하지만 수출 잘돼 이익 많이 남기면 부품업체들 위해 좀 써라, 이런 얘기다. 번 돈 일부를 떼어 기술개발을 돕거나 고용안정을 돕거나 기술개발협력기금을 마련하거나. 월급 150만원만 주면 중소기업에 사람이 올 텐데 100만원밖에 주지 못해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면 50만원을 고용안정기금으로 주자는 거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현실에 적용된 사례도 무지하게 많다. 이익공유라는 건 이제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익공유는 서로 협력해서 파이를 크게 만들어 더 크게 나누자는 거지. 이걸 기업 내부만이 아니라 기업 간에 연결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나?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나 하면, 기업들이 초과이익 일부를 기금으로 마련해서 이사장도 만들고 이사도 만들고 공무원 자리도 늘리고 하는 걸로 생각하더라. 분명히 그런 게 아니다. 기업 내에 돈을 비축해서 고용안정이나 기술개발을 위해서 쓰자는 거다. 강제도 아니고 몇 퍼센트 하라고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인 거다.” -기업 자율에만 맡긴다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겠나? “다만 이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겠지. 아직 구체적 기준을 만든 건 아니지만, 이익공유를 잘하는 기업은 동반성장지수를 작성할 때 점수 더 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감경시켜 준다거나 정부 발주 사업 입찰에서 점수를 높게 준다거나.” -대기업 총수들을 직접 만나 이익공유제 도입 필요성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정작 총수들은 많이 못 만난 걸로 아는데.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만났고, 최근엔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만났다. 초면에 앞으로 서로 오해가 없도록 대화와 소통 노력을 하자고 했다. 구체적인 얘기까진 아니어도 이익공유제 얘기도 나눴다.” -총수들이 만남을 꺼리나 보네. “초과이익공유제 얘기 안 꺼내면 만난다는 식으로 조건 다는 기업들도 더러 있더라. 그래도 이런저런 분들 꾸준히 만난다. 기업 계신 분들 만났을 때 받는 느낌은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일부 기업이 잘못하고 있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잘하고 있어요’ 이런 식이다. 인식 차이가 큰 거 같다. 나는 일부만 잘하고 대부분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정몽구 회장 만났을 땐 어땠나? “정몽구 회장 만난 건 홍준표 최고위원 얘기 나오기 전이었지. 그래서 이익공유제에 대해 늠름하게 얘기했지. 정의선 부회장도 같이 있었다.”(지난 3월 말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운찬 전 총리는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스스로 잘못 설정한 개념과 전쟁중이다. 이를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총리를 지낸 어른의 행태가 아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정 위원장이 들고나온 이익공유제 카드에 대해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나오자, 정 위원장이 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무렵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차 쪽에선 만남 뒤에 이익공유제 얘긴 오가지도 않았다고 자료 뿌렸는데. “굳이 반박할 필요도 없잖아. 반응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통이 크신 분이라 ‘앞으로 잘해봅시다’ 그러더라. 화기애애하게 얘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는 만날 예정인가? “이건희 회장 만나고 싶어요, 이 정도까지만 하자.” 정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분당을 선거 당시 상황을 들어 이익공유제 얘기를 이어갔다. “분당을에서 손학규씨가 이겼다는 건, 물론 손학규씨가 강재섭씨보다 좋은 평 받았는지 몰라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70%이던 곳에서 한나라당이 졌다는 건 양극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당시 실제로 유권자들을 만나봤다. 일부러 만난 건 아니고 만나다 보니 유권자더라. 어디 찍었냐고 하니까, 누구 찍었단 말은 안 하고 ‘양극화가 심합니다’라고 다들 그러더라.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한나라당 찍어주겠냐’고 한 사람도 있었다. 정부 나몰라라 하고 대기업은 반발해 외롭고 섭섭
양극화 너무 심해…해소안되면 사회 움직일 수 없어
난 중도…보수적 MB정부 균형 맞추려 들어갔던것 -총리 시절 이명박 대통령한테 동반성장 얘기를 처음 꺼냈던 배경을 말해달라. “2009년 9월에 총리 됐다. 그 뒤 2010년 5~6월께 대기업하고 거래하는 유수 협력업체 사람들 셋을 만난 적 있다. 그 사람들이 날 찾아왔더라. 이 양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민 가겠다’야.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후려친다, 해도 너무한다’고 하는 거야. 내가 못 알아들은 척하고 ‘20년 대기업하고 거래한 사람들이 그걸 몰랐냐’고 하니까, 그 양반들 입에서 나온 말이 뭔지 아나? ‘훨씬 악화됐으니까 그렇지’였다. 그래서 대통령한테 보고했다.” -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인가? “그러다가 총리 그만두고 9월에 동반성장위가 생긴다는 발표가 났지. 그런가 보다 했는데, 11월 말에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발제하신 분이 책임져야죠’라는 게 대통령 뜻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뜻도 꽤 강했던 것 같은데, 정부 일각에선 여전히 딴죽 걸고 있지 않나? “뭐, 섭섭하다. 대통령이 하라고 해놓고선. 정부에서는 서포트 안 해주지, 대기업은 반발하지, 중소기업도 화끈하게 서포트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이해는 갑니다만, 좀 섭섭하고 외로워요.(웃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과는 인연이 많죠? “정책 일선에 있는 사람들은 넓고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멀리 바라보지도 않아. 동반성장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갖고 있는데, 우리하고 비전을 공유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나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 쪽에선 너무 빠른(큰)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차이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 아닌가? “잘 알지. 자꾸 싸움 붙이진 마시라.(웃음)” 지난 2월 청와대 일부 참모들이 ‘이익공유제 도입은 그분(정운찬) 생각이고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정운찬식 동반성장론이 혼선만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적이 있다. -이익공유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날 기사 제목이 ‘정운찬에게 불편한 이 대통령’인가 그랬지. 오보다. 그날은 정말 기운 빠지데. 대통령이 ‘아이디어 자체는 좋은데 워딩이 오해를 사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위원장이 바뀌면 동반성장위 위상도 불안해지는 거 아닌가? “동반성장은 이제 전세계적인 시대정신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사회가 움직일 수 없다. 정권 바뀌고 위원장 바뀌어도 동반성장 노력은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을 거다. 동반성장 노력이 필요 없어질 때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없어지고서는 못 배길 상황이다.” -얘기 들어보면 나름대로 개혁적인 학자 풍모가 남아 있다. 하필 왜 이 정부에서 공직에 나갔냐는 얘기를 물어본다면? “솔직히 말할까. 그래도 사회에 개방적인 사고를 널리 보급하려고 노력하는 <한겨레>에 실망한 게 그거야.(웃음) 난 보수도 진보도 아냐. 노태우·김영삼 때는 비판해대니까 빨갱이 소리까지 들었잖아. 김대중·노무현 때는 ‘이게 무슨 구조조정이냐?’ 식으로 얘기했더니 보수꼴통으로 찍혔잖아. 난 항상 중도적인 입장에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럼, 왜 이명박 정부에 들어갔냐? 우선 ‘전에는 안 들어간다고 해놓고 왜 들어갔냐?’라고 묻는다면, 전에는 정말 준비가 안 된 거였고, 서울대 총장 하고 나니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리 지명 받았을 때 얘기했듯이, 이명박 정부가 너무 보수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나의 균형추 역할 하려고 들어갔다고 자부한다.” 정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대통령한테 할 말 못할 말 다 했다”고 강조했다. 둘 사이에 오간 구체적인 얘기를 바깥에 전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 대통령을 일러 ‘소통 불통’이라는 얘기도 많다. 할 말 못할 말 다 했다는데, 곁에서 지켜본 이명박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냥 일벌레다. 사람들하고 소통을 더 많이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양반은 정말 일밖에 모르는 것 같더라.” -슬슬 정치 쪽 얘기로 넘어가 볼까? 분당을 선거엔 왜 출마하지 않았나? “이건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해 12월13일에 동반성장위원장 맡았다. 일부 출마 종용하는 분도 있었지. 그분들한테 얘기했다. ‘제가 이 일 맡은 지 두달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국회에 나간다는 겁니까? 저는 1년 동안 국회 일 하는 것보다 이 일(동반성장위) 하는 게 국가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정말 그 이유뿐인가? “뭐, 잘 알다시피 오라는 사람도 없었잖아. 거기(한나라당) 최고위원들 다 반대했잖아. 다 반대하는데 뭐하러 가나? 기자들한테도 분명히 안 나간다고 했는데, 언론은 재미있으니까, 자꾸 싸움 붙이데.” -‘위원장 이후’ 행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한 워딩은 잊어버렸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 있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공감한다.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 그뿐이다.” -총리 그만둘 때 정황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지방선거 패배 뒤 책임론에 시달리던 청와대 참모들이 정 총리 퇴진을 언론에 흘리며 압박했다는 얘기도 돌았는데. “6월2일 지방선거가 있었지. 이때 한나라당이 압승할 거라고 하더니, 출구조사 보니까 형편없더라고. 밤새 고민했다. 내일 아침까지 봐서 서울하고 경기에서 지면 사표를 낸다고. 사표 썼는데 서울시장은 안 바뀌더라고.(웃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오후에 대통령께 전화로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 제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다음날 직접 찾아가서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얘기했더니 대통령이 ‘아니, 그러지 말고 같이 일해야 합니다’ 하더라. 6월 하순에 또 한번 얘기했고. 7월3일 분명히 얘기했지. 대통령이 미국 갔다가 오신 날이다. 7월 하순 다시 한번 말씀드렸더니, 그땐 아무 말씀 없으시더라고. 그만두라는 얘기같이 들려서 그만뒀다. 청와대 참모들이 어떻고 저떻고 했다는데 내막은 잘 몰라. 대통령 생각이 바뀐 건지,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건지. 참모들이 얼마나 힘이 세길래 사의를 표명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나. 나가란 얘기잖아? 그땐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더라.” -지난달 제주 강연은 삼성 겨냥하고 얘기한 거 맞지요?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 그랬는데, 정작 바뀌어야 할 건 총수라는 얘기. “맞다. 삼성이 앞장서면 다른 기업들이 다 따라올 텐데. (다음날 예정된 강연 원고를 보여주며)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줄 거라는 기대가 점차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표현 참고해줘.” -위원장은 언제쯤까지 할 거 같나? “굉장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지켜보고 있는 중소기업과 국민들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지. 동반성장 문화 조성을 위해서 온 힘을 쏟아보겠다. 동반성장위에 힘 좀 실어주게 잘 써달라.” 정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아랍에미리트에 UDT 10여명 추가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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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실천하는 기업엔 정부가 인센티브 줘 장려해야 “최근 전미자동차노조가 이런 주장을 들고나왔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임금을 올리면 도요타나 현대자동차하고 우리 회사들이 경쟁이 안 될 것 같으니 임금 올려달란 말은 안 하겠다. 대신 나중에 성과 봐서 이익 많이 나면 더 나눠달라.’ 이게 바로 이익공유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윤이 생각보다 많이 나면 서로 나눠주는 계약 맺자는 거야.” 그는 미국 자동차노조의 움직임을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그래도 현실에선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다짐과 함께. 그럼에도 그의 입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섭섭하다” “힘들다”는 말이 쉼없이 튀어나왔다. 그로 하여금 희망과 탄식의 경계선 이편저편을 수시로 넘나들도록 만든 것이 바로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익공유제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위원장 맡은 지 6개월 됐는데 자리는 좀 잡힌 거 같나? “바쁜 머리로부터는 기대할 게 많지 않다는 말이 있지 않나. 굉장히 바쁘긴 한데 무언가 딱 부러지는 성과는 없는 것 같아 기운이 안 난다. 그래도 대-중소기업 관계를 많이 바꿔놓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익공유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정말 왜 필요한 건가?
“좋건 싫건 간에 한국은 지금 수출 의존적인 나라가 되지 않았나? 어쨌거나 우린 수출 덕에 살고 있다. 수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물건을 만들거나 값싼 물건을 만들거나, 아니면 좋은 물건을 값싸게 만들거나 셋 중 하나다. 우리 대기업들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초우량 글로벌 기업과는 품질 경쟁에서 아직은 밀리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 높이기 위해 납품단가 후려치기 하는 거라고 난 이해한다. 어찌 보면 납품가 인하하려고 덤비는 대기업 행태가 이해될 때도 있다. 하지만 수출 잘돼 이익 많이 남기면 부품업체들 위해 좀 써라, 이런 얘기다. 번 돈 일부를 떼어 기술개발을 돕거나 고용안정을 돕거나 기술개발협력기금을 마련하거나. 월급 150만원만 주면 중소기업에 사람이 올 텐데 100만원밖에 주지 못해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면 50만원을 고용안정기금으로 주자는 거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현실에 적용된 사례도 무지하게 많다. 이익공유라는 건 이제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익공유는 서로 협력해서 파이를 크게 만들어 더 크게 나누자는 거지. 이걸 기업 내부만이 아니라 기업 간에 연결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나?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나 하면, 기업들이 초과이익 일부를 기금으로 마련해서 이사장도 만들고 이사도 만들고 공무원 자리도 늘리고 하는 걸로 생각하더라. 분명히 그런 게 아니다. 기업 내에 돈을 비축해서 고용안정이나 기술개발을 위해서 쓰자는 거다. 강제도 아니고 몇 퍼센트 하라고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율적인 거다.” -기업 자율에만 맡긴다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겠나? “다만 이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겠지. 아직 구체적 기준을 만든 건 아니지만, 이익공유를 잘하는 기업은 동반성장지수를 작성할 때 점수 더 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감경시켜 준다거나 정부 발주 사업 입찰에서 점수를 높게 준다거나.” -대기업 총수들을 직접 만나 이익공유제 도입 필요성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정작 총수들은 많이 못 만난 걸로 아는데.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만났고, 최근엔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만났다. 초면에 앞으로 서로 오해가 없도록 대화와 소통 노력을 하자고 했다. 구체적인 얘기까진 아니어도 이익공유제 얘기도 나눴다.” -총수들이 만남을 꺼리나 보네. “초과이익공유제 얘기 안 꺼내면 만난다는 식으로 조건 다는 기업들도 더러 있더라. 그래도 이런저런 분들 꾸준히 만난다. 기업 계신 분들 만났을 때 받는 느낌은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일부 기업이 잘못하고 있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잘하고 있어요’ 이런 식이다. 인식 차이가 큰 거 같다. 나는 일부만 잘하고 대부분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정몽구 회장 만났을 땐 어땠나? “정몽구 회장 만난 건 홍준표 최고위원 얘기 나오기 전이었지. 그래서 이익공유제에 대해 늠름하게 얘기했지. 정의선 부회장도 같이 있었다.”(지난 3월 말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운찬 전 총리는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스스로 잘못 설정한 개념과 전쟁중이다. 이를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총리를 지낸 어른의 행태가 아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정 위원장이 들고나온 이익공유제 카드에 대해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나오자, 정 위원장이 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무렵을 두고 한 말이다.) -현대차 쪽에선 만남 뒤에 이익공유제 얘긴 오가지도 않았다고 자료 뿌렸는데. “굳이 반박할 필요도 없잖아. 반응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통이 크신 분이라 ‘앞으로 잘해봅시다’ 그러더라. 화기애애하게 얘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는 만날 예정인가? “이건희 회장 만나고 싶어요, 이 정도까지만 하자.” 정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분당을 선거 당시 상황을 들어 이익공유제 얘기를 이어갔다. “분당을에서 손학규씨가 이겼다는 건, 물론 손학규씨가 강재섭씨보다 좋은 평 받았는지 몰라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70%이던 곳에서 한나라당이 졌다는 건 양극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당시 실제로 유권자들을 만나봤다. 일부러 만난 건 아니고 만나다 보니 유권자더라. 어디 찍었냐고 하니까, 누구 찍었단 말은 안 하고 ‘양극화가 심합니다’라고 다들 그러더라.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한나라당 찍어주겠냐’고 한 사람도 있었다. 정부 나몰라라 하고 대기업은 반발해 외롭고 섭섭
양극화 너무 심해…해소안되면 사회 움직일 수 없어
난 중도…보수적 MB정부 균형 맞추려 들어갔던것 -총리 시절 이명박 대통령한테 동반성장 얘기를 처음 꺼냈던 배경을 말해달라. “2009년 9월에 총리 됐다. 그 뒤 2010년 5~6월께 대기업하고 거래하는 유수 협력업체 사람들 셋을 만난 적 있다. 그 사람들이 날 찾아왔더라. 이 양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민 가겠다’야.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후려친다, 해도 너무한다’고 하는 거야. 내가 못 알아들은 척하고 ‘20년 대기업하고 거래한 사람들이 그걸 몰랐냐’고 하니까, 그 양반들 입에서 나온 말이 뭔지 아나? ‘훨씬 악화됐으니까 그렇지’였다. 그래서 대통령한테 보고했다.” -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인가? “그러다가 총리 그만두고 9월에 동반성장위가 생긴다는 발표가 났지. 그런가 보다 했는데, 11월 말에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발제하신 분이 책임져야죠’라는 게 대통령 뜻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뜻도 꽤 강했던 것 같은데, 정부 일각에선 여전히 딴죽 걸고 있지 않나? “뭐, 섭섭하다. 대통령이 하라고 해놓고선. 정부에서는 서포트 안 해주지, 대기업은 반발하지, 중소기업도 화끈하게 서포트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이해는 갑니다만, 좀 섭섭하고 외로워요.(웃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과는 인연이 많죠? “정책 일선에 있는 사람들은 넓고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멀리 바라보지도 않아. 동반성장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갖고 있는데, 우리하고 비전을 공유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나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 쪽에선 너무 빠른(큰)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차이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 아닌가? “잘 알지. 자꾸 싸움 붙이진 마시라.(웃음)” 지난 2월 청와대 일부 참모들이 ‘이익공유제 도입은 그분(정운찬) 생각이고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정운찬식 동반성장론이 혼선만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적이 있다. -이익공유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날 기사 제목이 ‘정운찬에게 불편한 이 대통령’인가 그랬지. 오보다. 그날은 정말 기운 빠지데. 대통령이 ‘아이디어 자체는 좋은데 워딩이 오해를 사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위원장이 바뀌면 동반성장위 위상도 불안해지는 거 아닌가? “동반성장은 이제 전세계적인 시대정신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사회가 움직일 수 없다. 정권 바뀌고 위원장 바뀌어도 동반성장 노력은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을 거다. 동반성장 노력이 필요 없어질 때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없어지고서는 못 배길 상황이다.” -얘기 들어보면 나름대로 개혁적인 학자 풍모가 남아 있다. 하필 왜 이 정부에서 공직에 나갔냐는 얘기를 물어본다면? “솔직히 말할까. 그래도 사회에 개방적인 사고를 널리 보급하려고 노력하는 <한겨레>에 실망한 게 그거야.(웃음) 난 보수도 진보도 아냐. 노태우·김영삼 때는 비판해대니까 빨갱이 소리까지 들었잖아. 김대중·노무현 때는 ‘이게 무슨 구조조정이냐?’ 식으로 얘기했더니 보수꼴통으로 찍혔잖아. 난 항상 중도적인 입장에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럼, 왜 이명박 정부에 들어갔냐? 우선 ‘전에는 안 들어간다고 해놓고 왜 들어갔냐?’라고 묻는다면, 전에는 정말 준비가 안 된 거였고, 서울대 총장 하고 나니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리 지명 받았을 때 얘기했듯이, 이명박 정부가 너무 보수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나의 균형추 역할 하려고 들어갔다고 자부한다.” 정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대통령한테 할 말 못할 말 다 했다”고 강조했다. 둘 사이에 오간 구체적인 얘기를 바깥에 전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 대통령을 일러 ‘소통 불통’이라는 얘기도 많다. 할 말 못할 말 다 했다는데, 곁에서 지켜본 이명박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냥 일벌레다. 사람들하고 소통을 더 많이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양반은 정말 일밖에 모르는 것 같더라.” -슬슬 정치 쪽 얘기로 넘어가 볼까? 분당을 선거엔 왜 출마하지 않았나? “이건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해 12월13일에 동반성장위원장 맡았다. 일부 출마 종용하는 분도 있었지. 그분들한테 얘기했다. ‘제가 이 일 맡은 지 두달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국회에 나간다는 겁니까? 저는 1년 동안 국회 일 하는 것보다 이 일(동반성장위) 하는 게 국가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정말 그 이유뿐인가? “뭐, 잘 알다시피 오라는 사람도 없었잖아. 거기(한나라당) 최고위원들 다 반대했잖아. 다 반대하는데 뭐하러 가나? 기자들한테도 분명히 안 나간다고 했는데, 언론은 재미있으니까, 자꾸 싸움 붙이데.” -‘위원장 이후’ 행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한 워딩은 잊어버렸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 있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공감한다.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 그뿐이다.” -총리 그만둘 때 정황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지방선거 패배 뒤 책임론에 시달리던 청와대 참모들이 정 총리 퇴진을 언론에 흘리며 압박했다는 얘기도 돌았는데. “6월2일 지방선거가 있었지. 이때 한나라당이 압승할 거라고 하더니, 출구조사 보니까 형편없더라고. 밤새 고민했다. 내일 아침까지 봐서 서울하고 경기에서 지면 사표를 낸다고. 사표 썼는데 서울시장은 안 바뀌더라고.(웃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오후에 대통령께 전화로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 제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다음날 직접 찾아가서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얘기했더니 대통령이 ‘아니, 그러지 말고 같이 일해야 합니다’ 하더라. 6월 하순에 또 한번 얘기했고. 7월3일 분명히 얘기했지. 대통령이 미국 갔다가 오신 날이다. 7월 하순 다시 한번 말씀드렸더니, 그땐 아무 말씀 없으시더라고. 그만두라는 얘기같이 들려서 그만뒀다. 청와대 참모들이 어떻고 저떻고 했다는데 내막은 잘 몰라. 대통령 생각이 바뀐 건지,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건지. 참모들이 얼마나 힘이 세길래 사의를 표명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나. 나가란 얘기잖아? 그땐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더라.” -지난달 제주 강연은 삼성 겨냥하고 얘기한 거 맞지요?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 그랬는데, 정작 바뀌어야 할 건 총수라는 얘기. “맞다. 삼성이 앞장서면 다른 기업들이 다 따라올 텐데. (다음날 예정된 강연 원고를 보여주며)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줄 거라는 기대가 점차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표현 참고해줘.” -위원장은 언제쯤까지 할 거 같나? “굉장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지켜보고 있는 중소기업과 국민들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지. 동반성장 문화 조성을 위해서 온 힘을 쏟아보겠다. 동반성장위에 힘 좀 실어주게 잘 써달라.” 정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아랍에미리트에 UDT 10여명 추가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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