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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조직의 위기’ 검찰 “삼성수사 하는척만 할수 없다”

등록 2007-11-27 21:43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2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삼성공화국 해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대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2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삼성공화국 해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대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건희 회장 출금 등 ‘거침없는 행보’
한달 남짓 기간에 성과낼지 우려도
청와대가 삼성 비자금 특검법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27일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김용철 변호사 명의로 된 4개 차명계좌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했다. 전날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을 전격 출국금지한 데 이어 잇따라 거침 없는 수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이런 조처는 특검으로 수사 주체가 바뀌기 전에 삼성의 비자금 의혹에 서 눈에 띄는 성과를 조금이라도 더 내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부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수사를 특검에 넘기면 삼성의 ‘떡값’ 의혹이 주요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에 비해 수사인력이나 수사기간 등의 제한을 받는 특검으로서는 수사가 어려운 비자금보다 성과를 내기 쉬운 로비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삼성의 로비 대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현직 검찰 총수가 특검의 조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한 성과가 없으면 특검은 검찰 로비 수사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검찰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비자금 등에서 성과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처럼 삼성 비자금 의혹에 강한 수사 의지를 보임에 따라 비자금 의혹이 어느 정도 규명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삼성 비자금 의혹은 1998년 ‘세풍 수사’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2005년 ‘엑스파일’ 수사 때마다 불거졌지만 한번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세풍 수사 때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계열사 기밀비”라고 밝혔던 돈을 엑스파일 수사 때는 “이 회장 개인 돈”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특본이 한달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가시적인 수사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삼성이 세풍 수사나 엑스파일 수사 때처럼 ‘기억이 안 난다’ ‘이 회장 개인 돈’이라고 잡아떼면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도 성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삼성이 증거인멸 등 철저한 대비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삼성 본사를 압수수색했다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면 검찰로서는 낭패다. 대검의 한 간부는 “한번 압수수색한 곳은 다시 압수수색하기도 어렵다. 특본의 어정쩡한 수사로 오히려 특검 수사를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출국금지와 계좌 압수수색 등 최소한의 보전조처만 하고 수사를 특검으로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직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검찰이 쉽게 물러설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특검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생겼지만 수사를 하는 척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수용한 특검법안은 12월4일 국무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특별검사와 특검보 선정 등 준비작업을 고려하면 대선이 끝난 12월 말께 본격적인 특검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수남 특본 차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수사는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지금까지 ‘삼성 비리’ 의혹들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제대로 규명된 적은 없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비자금 조성, 전방위 로비, 대규모 분식회계 등이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들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 비리’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삼성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특히 이건희 회장에게서 아들 이재용씨로 넘어가는 경영권 승계 구도 자체가 뒤집어질 수 있다.

■ 그룹 지배권 불법 승계=‘삼성 비리’ 의혹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이 회장 일가와 그룹 수뇌부의 무리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삼성그룹이 광범위하게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돈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근본적인 이유라는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과 특검 수사는, 이재용씨가 불과 16억원의 세금만 내고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갖게 된 과정의 불법성 규명이 핵심이다.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증인과 증언을 통째로 조작했다”고 증언했다. 1·2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의 업무상 배임죄와 헐값 발행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룹 차원의 공모’에 대해서는 사실상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 회장, 이학수 부회장 등 핵심 수뇌부는 단 한 차례도 소환조사를 받지 않았다. 이런 ‘총체적인 조작’ 의혹을 푸는 게 핵심 과제다.

■ 불법 비자금 조성=비자금 조성의 단서는 이미 곳곳에 드러나 있다. 1차적인 단서는 김 변호사가 공개한 자기 명의의 차명계좌다. 삼성은 문제의 차명계좌는 ‘개인 용도’라고 주장한다. 차명계좌를 통해 들고난 돈의 흐름을 쫓다보면 거대한 비자금의 몸통과 용처를 찾을 수 있다. 그룹 오너 또는 핵심 수뇌부와의 연관성이 드러날 수도 있다. 검찰의 의지에 따라서는, 가장 먼저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인 셈이다.

비자금의 ‘입구’에 대한 단서는 엊그제 김 변호사가 새롭게 제공했다. 삼성물산이 계열사 국외 법인과의 거래에서 수수료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계약서(메모랜덤)를 내놓은 것이다. 삼성물산 한 곳에서만 한 해 모두 2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증거이며, 전체 비자금 규모는 수조원대라고 김 변호사는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재벌들이 계열사의 구매대행을 독점하고 국외 거래가 많은 종합상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던 전례가 적지 않다. 회계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의 초과 수수료 사용 내역과 부대 비용을 뺀 정산 내역 등을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비자금 조성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전방위 로비=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은 지금까지 나온 증언과 제보만 수사해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뇌물을 전달할 때 시디(CD)나 책으로 위장한 현금 다발을 이용했다고 폭로했는데, 실제로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책으로 위장된 돈다발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을 뇌물 제공 시간과 장소, 전달 가방 등의 구체적인 증거자료까지 함께 공개했다. 이 회장이 지난 10여년 동안 갖가지 비리 의혹과 고소·고발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데는 권력 기관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임을 방증하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대규모 분식회계=대규모 분식회계와 삼성자동차의 부실을 감추기 위한 법정관리 기록 불법폐기 의혹 등도 규명해야 할 사항이다. 김 변호사는 2000년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7조여원의 분식회계가 저질러졌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삼성그룹은 “각사별 분식 추정액을 보면 해당 기업 한 해 매출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어떻게 이런 분식이 가능하겠느냐”며 김 변호사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회계 전문가들은 수십년 누적돼 온 분식 규모를 매출액에 견줘 비교하는 건 잘못된 논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해연도 매출과 수십년 쌓인 분식 규모는 전혀 별개 개념이라는 얘기다.

이제 ‘삼성 비리’ 의혹을 푸는 열쇠는 검찰과 특검의 손에 넘어갔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홍대선 김회승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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