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명 입사 뒤 떠나는 신입사원들 / 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뉴스+α] ‘붙고 보자’ 취업뒤 공기업·고임금 직장 옮겨
대기업 퇴사 10~20%…아예 예비정원 30% 더 채용
대기업 퇴사 10~20%…아예 예비정원 30% 더 채용
얼마 전 취업 포털 커리어가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을 공채한 기업을 대상으로 평균 경쟁률을 조사했더니 116 대 1이었다. 취업문이 그야말로 ‘바늘구멍’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간 직장에서 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신입사원들이 늘고 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대·중소기업 2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입사자들의 평균 퇴사 비율이 30%에 이른다. 반면 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을 오래 붙잡아 두려고 애쓴다.
한쪽에서는 취업난을 호소하고, 다른 쪽에서는 인재 탈출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겨레>에서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 1 중견그룹 ㅇ사 인사팀의 정아무개 차장은 얼마 전 사장실로 불려가 ‘신입사원 조기 퇴사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정 차장은 “떠날 사람들까지 고려해 250명이 필요한 신입공채 때 300명 넘게 뽑았다”고 솔직하게 보고했다. 사장은 인사팀 차원의 대책이 별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팀장 인사평가 때 소속 신입사원들의 정착 비율을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 2 1년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을 떠난 조영삼(가명)씨는 “신입사원의 10~20% 정도는 1~2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입사했다가도 불투명한 조직 문화와 소모품처럼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그만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임원 자녀들인 이른바 ‘로열’들이 우대받는 등 경영학 교과서에서 본 외국 기업의 사례들과는 딴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재확보가 아니라 평균 근속기간 연장이 목표”
낡은 조직문화 등 새세대 정서 충족 못 시키기도 ■ 왜 떠나나? =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에는 청년이 부족한 상황. 요즘 한국의 고용시장에서 나타나는 모순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지만,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대·중소기업 2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입사자 10명 중 3명이 1년을 못 채우고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실제로 <한겨레>가 국내 대기업 16곳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해운·생활용품·중화학 등 일부 업종에서는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10~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일단 붙고 보자는 ‘징검다리 취업 행태’가 조기 퇴사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 중견그룹의 임원은 “요즘에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원들도 조건만 되면 월급이 더 많은 기업이나 공기업으로 쉽게 가버린다”며 “그래서 아예 채용 때 예비로 정원보다 30%쯤 더 뽑는다”고 말했다. 대형 화장품업체 ㅂ사의 인사 담당자는 “과거보다 채용 정보를 얻기 쉬워 중복 지원이 많다”며 “또 자신이 지원하는 기업이나 업종에 대한 소신이 없다 보니 쉽게 퇴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신입사원 공채 제도를 아예 폐지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ㅅ사의 김아무개 부장은 “가르쳐 놓으면 1~2년 안에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며 “요즘 중기 인사팀장들의 목표는 인재 확보가 아니라 평균 근속기간 연장”이라고 푸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용 기준이 실력보다는 충성도에 맞춰지는 퇴행적 현상도 나타난다. 한 재벌그룹 계열사의 임원은 “조기 퇴사자들을 줄이려고 면접을 철저히한다”며 “솔직히 ‘오래 다닐 사람이냐’를 가리는 데는 경험적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또 외국 유명 대학 출신이나 박사급 고급 인력이 지원하면, ‘회사를 쉽게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떨어뜨린다고 한다.
■ 어디로 가나?=신입사원의 조기 이탈을 부추기는 또다른 원인은 기업들의 조직 문화가 과거 그대로여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의 정서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기업 금융계열사에 2년 전 입사한 박아무개(28)씨는 처음에는 대기업에 입사한 게 스스로 대견했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애사심보다는 꽉 짜인 조직의 일부분이라는 답답한 느낌이 훨씬 더 커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함께 그룹 및 계열사 교육을 받은 동기 30명 중 5명이 나갔다”며 “공무원이나 고시, 공사, 연구소 등으로 가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증권회사에 다니다 최근 대학 홍보실로 자리를 옮긴 이진민(31)씨는 “지점 근무를 하며 술도 많이 먹고 고객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며 “학교에서 배운 것과 입사 뒤 겪는 현실의 괴리감이 컸던 터에, 과로로 쓰러지는 경험까지 해보니 무조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조기 퇴사를 ‘결행’하는 당사자와 이를 바라보는 기업들 사이에 상당한 온도 차가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초 삼성물산을 퇴사한 한 신입사원은 “술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왜 야근을 생각해 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려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업 인사담당자 모임인 에이치아르피에이(HRPA)의 한준기 회장은 “외환위기 전만 해도 ‘뚝심의 현대’ ‘꼼꼼한 삼성’ ‘인화의 엘지’처럼 색다른 조직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처우 수준이 비슷한 대기업들이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오직 경쟁만을 강조하며 닮아가다 보니, 구직자로서는 돈과 휴가 일수 등 계량적 기준에 따라 직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회승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인재확보가 아니라 평균 근속기간 연장이 목표”
낡은 조직문화 등 새세대 정서 충족 못 시키기도 ■ 왜 떠나나? =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에는 청년이 부족한 상황. 요즘 한국의 고용시장에서 나타나는 모순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지만,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대·중소기업 2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입사자 10명 중 3명이 1년을 못 채우고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실제로 <한겨레>가 국내 대기업 16곳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해운·생활용품·중화학 등 일부 업종에서는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10~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일단 붙고 보자는 ‘징검다리 취업 행태’가 조기 퇴사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 중견그룹의 임원은 “요즘에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원들도 조건만 되면 월급이 더 많은 기업이나 공기업으로 쉽게 가버린다”며 “그래서 아예 채용 때 예비로 정원보다 30%쯤 더 뽑는다”고 말했다. 대형 화장품업체 ㅂ사의 인사 담당자는 “과거보다 채용 정보를 얻기 쉬워 중복 지원이 많다”며 “또 자신이 지원하는 기업이나 업종에 대한 소신이 없다 보니 쉽게 퇴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신입사원 공채 제도를 아예 폐지한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ㅅ사의 김아무개 부장은 “가르쳐 놓으면 1~2년 안에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며 “요즘 중기 인사팀장들의 목표는 인재 확보가 아니라 평균 근속기간 연장”이라고 푸념했다.
입사 1년 이내 신입사원 퇴사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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