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국내 생산·소비·투자 등 3대 산업지표가 넉달 만에 일제히 증가세를 보였다. 반도체 수출 개선의 영향이 크다. 정부는 “경기 반등의 시동을 걸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반도체를 뺀 제조업 생산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고금리 장기화와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소비·투자의 활력은 여전히 약하다. 경기 전반에 온기가 돌기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9월 국내 전체 산업 생산은 한달 전에 견줘 1.1% 늘었다. 2개월 연속 증가세다. 다만 증가폭은 8월(2.0%)보다 축소됐다. 제조업 등 광공업 생산이 1.8% 늘며 전체 생산 증가를 이끌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생산은 8월에 전월 대비 13.5% 늘어난 데 이어 9월에도 수출 회복에 힘입어 12.9% 증가했다.
9월 소매 판매와 설비 투자도 각각 0.2%, 8.7% 늘었다. 음식료품·화장품 판매와 반도체 제조 기계 수입 등이 증가한 까닭이다. 현재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한달 전보다 0.1포인트 하락한 반면, 6~9개월 뒤 경기 상황을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0.1포인트 올랐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10월 수출도 플러스(+) 전환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며 “경기가 2020년 5월 저점을 찍은 이후 최근 생산·지출 등이 증가세를 보이며 수출 개선 흐름과 함께 경기 반등 조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짚었다. 수출은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내내 감소세가 이어졌다. 정부는 수출 부진이 차츰 개선되며 경기도 본격적인 회복세에 올라타리라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회복 속도가 더디고 민생 체감도가 높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지난달 반도체를 제외한 국내 제조업 생산은 1.2% 뒷걸음질하며 감소세로 전환했다. 자동차가 7.5%나 줄며 생산 부진을 이끌었다. 고유가 등 물가 상승 부담에 더해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소비·투자도 개선 흐름을 보이리라 낙관하기 어렵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9월 산업지표는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이미 반영된 것으로,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올해 연간 성장률이 정부 목표치인 1.4%보다 내려갈 수도 있다”며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4고’ 현상이 계속 지속되는데다, 설령 반도체 수출이 잘돼서 성장률 1.4%를 달성하더라도 내수 경기가 죽고 국민 삶의 안정성이 떨어지면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적합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뒷짐을 지고 반도체 업황 회복에만 기대는 성장 전략은 한계가 크다는 이야기다.
이승한 과장은 “반도체 등 일부 업종만 좋고 다른 부분은 온기가 나타나지 않거나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 정책을 운용할 것”이라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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