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 흐름에서) 유의해서 봐야 할 게 근원물가다. 10·11월이 되면 2%대(상승률)에 근원물가가 진입할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통계청은 9월 소비자물가가 3.7%(전년동월대비) 올랐다고 발표했다. 2.3%까지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이 두 달 연속 오르자, 추 부총리가 두 달 연속 ‘상승률 3.3%’를 유지한 근원물가를 강조한 것이다.
근원물가(core inflation)는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을 제외한 기조적인 흐름을 파악할 때 쓰는 물가지수다. 농산물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격 변동성이 크다. 국제 유가도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가격이 자주 바뀐다. 이런 변수를 제거한 물가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부가 참고하는 근원물가는 하나가 아니다. 부총리가 언급한 근원물가는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인데 또 다른 근원물가 지수가 있다. 바로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다. 이 지수는 9월에 3.8% 상승했다. 전체 물가지수 상승률보다 높다. 부총리는 3.8% 대신 3.3%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기재부가 매달 내놓는 물가상승률 참고 자료를 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기재부는 수년 간 주요 근원물가 지수로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를 썼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는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4월 자료에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식료품 및 에너지가 여전히 포함돼있는 한계가 있다”고 적었다.
전체 물가지수는 458개 품목을 조사하는데,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통계청이 세운 기준에 따라 곡물을 제외한 농산물, 도시가스, 석유류 관련 품목 57개를 제외한 401개 품목으로 구성돼 있다.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149개 품목을 제외한 309개 품목으로 작성한다.
사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2017년부터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만 금리 결정 및 정책 개발에 적용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당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영향으로 달걀 가격이 치솟으면서 기존 근원물가 지수(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로는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2017년부터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주요 근원물가 지수를 바꾼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석유류뿐만 아니라 다른 에너지 가격이 지정학적 요인 탓에 오르고 있어서다. 하지만 한은·케이디아이(KDI)가 변화를 꾀한 지 4년여가 지난 시점에서야 변화를 줬다는 점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정부의 물가안정 성과를 강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의 월별 전년동월대비 상승률은 2018년 9월 이래로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지난해부터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근원물가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국제 비교가 용이하도록 식료품·에너지 지수를 주된 근원물가로 표시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이어 “기재부는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발표와 함께 참고자료를 내는 터라 그간 통계청 방식에 맞춰 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은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를 앞세워 소비자물가동향 자료를 낸다.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오래전부터 집계해 발표해온 통계여서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를 뺄 순 없다”면서도 “두 지수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1975년부터, 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는 1990년부터 생산하고 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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