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우리나라 기업과 가계가 진 빚(민간신용)이 4900조원을 넘어서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또 다시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계와 기업의 빚은 경제 규모의 약 2.26배 수준까지 불어났다. 특히 2분기 이후 금융 불균형은 심화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잠재 위험을 측정한 지표들도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비금융 기업과 가계의 총부채를 합한 민간신용의 비율(명목 국내총생산 대비)이 225.7%로 추정됐다. 이는 올해 1분기 말(224.5%)보다 1.2%포인트 상승한 역대 최고치 기록이다. 민간신용 비율은 2020년 1분기 200%를 넘어선 뒤 지난해 4분기에는 225.6%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가 올해 1분기에는 금리 상승의 영향 등으로 진정되는 듯했으나 한 분기 만에 다시 반등한 것이다.
한은은 2분기 자금순환표 통계 편제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날 민간신용 비율만 추정치로 발표했다. 하지만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잠정치에다 이 비율을 대입해보면,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민간신용 규모는 4922조3천억원으로 추정된다. 1분기 말(4879조7천억원)에서 불과 3개월 만에 민간신용이 42조6천억원 증가했다. 지난 1년 동안 분기당 평균 민간신용 증가폭(41조원)을 고려하면 올해 연말에는 5천조원대 진입이 예상된다.
2분기 말 민간신용 잔액은 1년 전보다 3.5% 늘어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경제성장률(명목 국내총생산 기준)은 2.2%로 더 떨어지면서 민간신용 비율을 끌어올렸다. 기업의 생산이나 가계의 소득 창출 능력은 떨어지는데 빚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셈이다.
2분기 민간신용을 부문별로 보면, 기업신용 비율(124.1%)이 직전 분기보다 1.1%포인트 상승해 가계신용 비율(101.7%)의 상승폭(0.2%포인트)보다 훨씬 컸다. 한은은 “2분기 국내총생산 대비 기업신용 비율은 외환위기(113.6%)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99.6%)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기업과 가계 빚의 증가세가 이어지며 단기적 금융시스템의 안정 상태를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도 최근 상승 흐름으로 돌아섰다. 지난 8월 기준 금융불안지수는 16.5를 기록해, 지난 6월(14.6) 이후 2개월 연속 상승세다. 금융불안지수는 8을 넘으면 ‘주의 단계’, 22를 넘으면 ‘위기 단계’로 분류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융 상황을 점검하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1분기 43.3에서 2분기에는 43.6으로, 0.3포인트 높아졌다. 2021년 2분기(59.3)를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2분기부터 다시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한은은 이날에도 부채 증가를 두고 경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최근 한은은 올 4월부터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부채가 다시 쌓이자 강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부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과 자산가격 조정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금융불균형의 누증은 금융시스템과 자산시장 간의 연계성을 강화시켜 자산가격 급락시 금융 및 실물경제를 동시에 위축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정책당국 간 협조 및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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