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최근 각 정부 부처에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재제출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로,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주문한 데 따른 조처다. 이 때문에 각 부처는 부랴부랴 추가 예산 삭감 또는 폐지할 사업 목록 작성에 나섰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8월 말까지 끝마쳐야 하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작업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2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재부는 지난달 30일 각 부처의 기획조정실장들을 소집해 3일까지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앞서 기재부는 예산 편성 일정에 따라 지난 3월에 내년도 예산편성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했고, 각 부처는 지침에 맞춰 5월31일까지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고 발언하자, 이틀 만에 기재부가 재제출 요구에 나선 것이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과 각 부처 기조실장들이 모인 회의 분위기는 제법 엄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쪽은 각 부처에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예산 요구안을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특히 부처별 예산 총액 목표치를 맞추는 데 급급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도려낼 예산 사업을 찾는 데 주력하라는 주문이 내려졌다. 지금까진 기재부가 정한 지출 한도에 따라 각 부처가 일부 사업의 예산을 조정했다면, 이번에는 효과성과 타당성이 미흡한 ‘예산 사업’은 아예 폐지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재검토하란 것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예산 편성 기조에 따라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날을 세우고 있는 민간단체 지원 예산과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 현금 지원 방식의 복지 예산 등이 한번 더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전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보건복지부의 관계자는 “민간단체 보조사업, 공공기관 출연사업이나 행사 예산 등 가운데 불필요한 지출이 있었는지를 검토했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복지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그간 (지출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성과 미흡 사업을 중심으로 재량 지출(정부가 임의로 편성할 수 있는 예산)의 10%를 감축하고, 그 예산으로 다른 곳에 재투자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사업에 대해서는 10%를 넘어서는 삭감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실상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차례 제출하게 된 것은 통상 5월 중하순에 하는 대통령 주재 재정전략회의가 예년보다 한달여 늦게 열린 탓이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뒤늦게 전달되면서 정부 예산안 편성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각 부처가 자칫 시간에 쫓겨 꼭 필요한 예산까지 삭감 목록에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재정전략회의는 대통령과 주요 장차관들의 국외 출장 등으로 일정이 지연됐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재정전략회의가 늦어져 대통령의 주문도 늦어지고, 재검토 시간은 사흘만 주어지면서 관련 실무자들이 주말에 총출동해야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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