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쇠퇴를 넘어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사진은 충남 공주의 구시가지 모습. 연합뉴스
국가 발전의 장기비전과 전략을 모색해온 ‘정책공간 포용과 혁신’이 단기적인 정책 쟁점뿐 아니라 향후 2050년까지 중장기적인 미래 어젠다를 발굴하고 제시하는 글을 <한겨레>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포용과 혁신은 2021년 창립된 민간 싱크탱크로서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120여명의 진보적인 교수와 연구자들이 모인 정책공간입니다. 게재 글은 격주로 열리는 목요포럼의 발제와 지정토론을 중심으로 임채원 포용과 혁신 정책기획위원장(영국 에딘버러대 방문학자)이 맡습니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지방에 대한 낙인을 찍어 오히려 지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급하며 지방도시에 소멸위험도시라는 정부인증을 해주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출하는 기금 투자계획을 평가하여 도시별 차등을 주어 연간 평균 80억원의 재정을 10년 간 지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지원금을 통해 지방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고 도시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지만, 평가를 위해 급하게 수립된 지자체 계획에 따라 지방도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20년 전 지방혁신도시 및 공공기관 이전 정책 이후, 정부는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수도권 집중을 용인하면서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지방에 호혜를 베푸는 형식의 이중적 정책을 사용해 왔다. 이는 당파적 성향의 구분 없이 유사한 정책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쇠퇴하는 지방도시를 위해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부동산 급등에 따른 3기 신도시를 추진하는 것과, 추가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이야기하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수도권에 신규 국가산업단지를 지정하는 것, 지방대학을 위해 글로컬대학 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증원하는 등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서 이중적 정책을 추진하며 수도권 집중을 용인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방소멸 위험에 더욱 노출된 곳은 지방 소도시이다. 경제위기에서 취약계층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과 같이, 지방에 만연한 위기 속에서 소도시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소도시를 위한 대책까지는 챙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도시 관리 차원의 거시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광역지자체는 전략적으로 지역의 중규모 도시를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소도시에는 자생적인 대응전략 마련이 요구되고 있지만, 남아있는 지역자산과 인력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소도시의 현실을 고려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지방소멸위기에서 가장 취약한 소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김준우 대구대 교수(건축공학)가 주제발표를 하고, 이기원 한림대 교수와 박건영 덕성여대 교수가 논쟁에 참여했다.
지방소멸위험에 가장 취약한 소도시
주제발표에 나선 김준우 교수는 ‘지방소멸 대응 적정 소도시 규모로 2만명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제시가 하고 있다.
“한국의 대도시, 중도시, 소도시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행정적으로 100만이 넘는 도시는 특례시, 50만이 넘는 도시는 일반구를 둘 수 있는 특정시, 그리고 15만명을 기준으로 시와 군으로 구분하여 행정 체계를 다르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약 천만 인구의 서울부터 1만명이 되지 않는 울릉군 사이에서 대/중/소 도시를 구분짓기에는 지자체간의 인구 범위의 폭이 다소 넓다. 따라서 100만 이상의 도시를 제외하고 151개의 지자체를 인구 수에 따라 3단계로 군집분석을 실시한 결과, 인구 65만 명 이상은 대도시, 21만 명에서 56만 명까지는 중도시, 21만 명 이하는 소도시로 구분되었다. 소도시로 구분된 도시는 112개 정도이며 행정안전부에서 지정된 인구감소지역 89개 대부분이 소도시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나, 소도시가 지방소멸에 가장 취약함을 확인하였다.
소도시가 가장 많이 분포된 경상북도를 대상으로 소도시의 인구특성을 분석해 보았다. 경북의 19개 소도시 중에서 안동시(약 16만), 김천시(약 14만), 칠곡군(약 11만), 영주시(약 10만), 영천시(약 10만)를 제외하고, 14곳이 10만명 미만의 인구규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경북의 19개 소도시들은 모두 전국 평균보다 유소년 비율은 낮고, 노령화 비율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개의 소도시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읍·면·동 단위로 소멸위험지수와 인구의 지속가능성을 교차하여 살펴보았다. 경북지역 250개 읍·면·동에서 인구 수를 기준으로 소멸위험지수와 인구지속가능성의 경향을 비교한 결과, 소도시에서 소멸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인구 규모는 2만명 이상인 것으로 산정되었고, 소멸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 인구 수는 1만 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북지역의 경우 1만 명 미만의 읍·면·동은 225개로, 전체 읍·면·동의 90%가 지속가능한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방소멸 대응 적정 소도시 규모는 2만명
다음으로 소도시의 교육, 상업, 문화, 체육, 의료, 복지, 교통을 포함한 생활서비스 수준을 분석해 보았다. 분석 사례로 조사한 울진군 울진읍, 청도군 청도읍, 영양군 영양읍은 군청 소재지로서 약 1만 전후의 인구가 유지되고 있는 군의 중심지역이다. 공공서비스 기반의 교육, 문화, 체육, 복지 시설은 지자체 단위의 지원으로 대도시 대비 동일 인구 기준당 많은 시설이 공급되어 있었다. 또한 지방도시에서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민간서비스 기반의 의원, 약국, 식당, 마트, 카페 등도 읍 단위에는 일정 수준 이상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생활서비스 수준 및 지자체 단위 공공기능의 영향으로, 군 단위 지역의 중심인 읍 지역은 1만 명 전후의 인구가 유지되는 특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읍 단위보다 작은 면 단위는 1만 명 미만의 인구 수준으로 생활서비스 공급에 제약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자체 재원의 부족으로 공공서비스의 제공도 점차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인구감소 흐름을 고려한다면 면 단위 이하에서는 생활서비스 공급이 어려질 것이며, 읍의 활성화를 기준으로 군의 자생여부가 결정되는 구조가 될 것이다.
지방소멸 대응기금 운영 방식 등 개선 필요
지방 소도시는 인구 대비 넓은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으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경우가 많아 정부보조금이 있다 하더라도 넓은 행정구역의 생활서비스 제공 및 공공인프라 유지·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군 단위의 소도시에서는 생활서비스 공급이 가능한 중심지역을 기존 읍 지역으로 설정해 목표인구를 2만명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읍 지역을 관리하고 개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2만명 인구의 경우, 민간서비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서비스 공급이 가능하며 공공지원을 기반으로 2차 병원 운영도 가능한 규모이다. 생활서비스 유지가 어려운 작은 규모의 취락지의 경우, 거주자 희망 시 공공지원을 통해 읍으로의 이주를 유도하여 읍의 인구를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소규모 마을은 공공·민간지원사업을 통해 농촌재구조화 및 농촌특화사업을 추진하여 마을의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소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2만명 이상의 자생력을 가지고 있는 강소도시와, 규모는 작지만 역사문화 자산이 있는 특화마을을 육성하고 소도시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방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경북 소도시(읍·면·동 단위) 지속가능인구지표 순위별 인구수> 경북 소도시의 지속가능 인구수는 2만명 이상이 적정하며, 최소 1만명 이상의 인구 확보가 필요함 ※ 지속가능인구지표 = 소멸위험지수(20~39세인구/65세이상인구)+유소년 비율(14세 이하)+인구성장률(10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 지역활력타운 조성, 농촌 빈집정비 활성화 대책 등 지방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및 사업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사업들이 지방도시의 재생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방 소도시의 변화를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소도시는 위기에 취약하지만, 작기에 혁신의 가능성이 높고 그 혁신으로 도시의 경쟁력도 더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소도시의 변화를 통한 지방의 전화위복을 꿈꾸어 본다.”
이러한 김준우 교수의 견해에 대해 지정토론에 나선 이기원 교수와 박건영 교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김준우 교수는 현황 분석과 다양한 소도시 모델을 검토하여 지속가능한 인구와 생활서비스 등을 고려했을 때 지방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정 소도시 규모를 인구 2만명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소도시 형성을 위해서는 인구, 산업, 복지, 주택, 농지, 정주여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복합적이고 총계적인 분석과 계획뿐만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재원투입이 필요하다. 인구감소나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지역이 주도적으로 계획한 사업에 투입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적정 소도시 형성에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적정 소도시 형성에 필요한 비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기금 투입 기간인 10년 역시 상대적으로 짧다는 한계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한편, 소도시 형성에 활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을 매년 계획하고 매년 평가하는 현재의 운영 방식은 장기적 대응을 방해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균형발전정책에서 지방소멸 문제는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특히 소도시에서 지속가능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구 2만명을 유지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위해 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지방소멸 대응기금’이 그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운영방식 등의 개선이 필요함을 이번 토론에서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