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전세 사기 피해 주택.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차인들의 전세사기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다른 임차인으로부터 받아 돌려막는 관행에 손을 대겠다는 뜻을 밝혀 관심이 쏠린다.
원 장관은 지난 3일 서울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소규모 주택 관리비 관련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전세사기 고비를 수습하고 나면 갭투자나, 보증금을 일단 다른 데 쓰고 다음 임차인에게 돌려받는 제도 자체에 손을 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값 등락과 이른바 ‘깡통전세’가 촉발하고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막기 위한 큰 틀의 제도 개선을 고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 급증한 전세사기는 악성 임대인과 그 조력자들이 임차인들을 속여 보증금 피해를 키운 게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화성 동탄 오피스텔 사건처럼 사기인지 단순 보증금 미반환인지 구분짓기가 어려운 ‘무자본 갭투자’의 폐해도 잇따르고 있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깡통전세’ 확산도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전세금을 집값의 일정 비율 이하로 묶는 규제라든가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방법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된 바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졌다. “제도 자체에 손을 대겠다”는 원 장관의 언급은 임차 보증금을 금융기관 등에 공탁 방식 등으로 맡겼다가 계약만료 때 임차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방식이 가능하다면 임차인으로선 강력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집주인은 금융기관에 맡긴 보증금의 이자를 받게 돼,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월세를 받는 것과 비슷해진다.
부동산 업계에선 만일 전세 보증금의 일부라도 제3의 기관에 공탁해야 하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다수의 집주인들은 전세 계약을 기피할 것으로 본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현행 전세 제도는 개인이 주택을 살 때 자금을 조달하는 사금융 구실도 하고 있어, 사적 계약인 전세와 보증금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며 “다만, 임대사업자에 한해서 보증금 예치제도를 도입하고 그 보상으로 세제·금융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에선 원 장관의 발언을 놓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 하락기에 발생하는 전세금 미반환 확산 등 전세 제도의 취약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사항”이라며 “현재로선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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