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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미 자국 우선주의는 ‘상수’…사전협의체 만드는게 중요”

등록 2023-04-25 04:00수정 2023-04-25 07:47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반도체·전기차 다음 바이오·에너지
미 행정부와 미리 협의할 수 있게
정상회담서 정치적 메시지 나와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략 산업과 핵심 기술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제조업 부흥,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적 흐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건이 위기 대응을 하기 보다는 양국 간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사전 협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제경제 통상전문가로 손 꼽히는 여한구 전 산업자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2일 <한겨레>와 만나, 세계적인 공급망 경쟁 ‘파도’를 맞고 있는 우리 정부 과제로서 ‘전략적 사전 협의 강화’를 꼽았다. 그러면서 여한구 전 본부장은 “이런 역할을 하는 협의체는 있었지만, 보다 정치적인 힘을 실어 양국 정상 간의 메시지가 나온다면 양국간 공급망 및 산업정책 협의의 모멘텀(추진력)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중요성을 짚었다.

여 전 본부장은 산업부에서 미국, 유럽, 영국 등과 통상 협상에 참여했고, 미-중 경쟁이 심화되던 2021년 8월부터 통상교섭 실무를 총괄하는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5월 공직을 마친 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로 일하는 통상 전문가다.

“한국, 미국 핵심산업의 공급망 형성에 필수 불가결 역할”

여 전 본부장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반도체와 배터리 등을 우선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을 내놨지만 바이오 기술, 광물 자원, 청정 에너지 등에서도 이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는 “청정 에너지, 바이오 등은 반도체·배터리 못지 않게 미국이 여러가지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며 “이미 만들어진 (반도체지원법 등) 법안은 세부 시행령 단계에서 (우리 의견을) 반영해야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것(자국 우선주의)을 상수로 보고 전략적 사전 협의와 조율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미국 역시 우리와 협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핵심 산업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 두 법안에 모두 겹치는 핵심 국가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기차·배터리와 관련 있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유럽, 한국, 일본 등이 영향을 많이 받고, 반도체지원법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는 한국, 대만 정도”라며 “양쪽에 다 겹치는 게 한국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파트너인만큼 근본적으로 사전협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두 법안이 발효된 이후 전세계 기업들이 미국에 약 2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발표를 했는데, 이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200억 달러 넘는 규모의 투자를 발표해 대만 기업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핵심산업의 공급망 형성에 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는 사전 협의의 대상으로 미국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의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이 논의될 때 의회 단계에서부터 긴밀히 협의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생산 공장 장소로 미국·멕시코와 함께 캐나다를 묶어 북미 지역으로 확대했다.

“한국 기술에 대한 수요 높아… 좋은 위기, 낭비 말아야”

여 전 본부장은 한국도 이처럼 자국 우선주의 강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한국 기술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더 많아졌다”며 “한국 기업이 보유한 기술은 미국 내 공급망과 제조업을 일으키는데 필수적이다. 2025년까지 미국에 들어서는 배터리 생산시설의 70%가 한국 기업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와중에도 국경을 닫지 않고 공급망으로서 작동하며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아울러 이참에 특정 국가에 과하게 의존한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수정할 기회로 잡아야한다고 했다. “요소수 사태에서도 경험했지만 첨단제품이 아닌 범용제품이라도 한 국가에 너무 의존하면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 국민 생활이 위협받을 수 있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전세계 경제환경의 판이 새로이 짜여질 때 이를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는 1시간 남짓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남긴 오래된 격언을 인용했다.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위기는 그동안 못했던 일, 하기 어려웠던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다. 지금이 그 때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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