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질서를 문란하게 한 업체는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불공정 거래 행위 조사를 의뢰하겠다.”
이 선포는 지난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닭고기 가격 긴급 안정 대책’의 일부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시중의 치킨값 인상 압력이 커지자 닭값 잡겠다고 정부 기관이 팔을 걷어붙였다.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이후 “피자와 치킨값” 잡은 일을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로 꼽았다. ‘공정위는 물가 관리 기관이 아니다’라는 그간의 설명이 무색해진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이런 모습은 더욱 심해졌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금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올려야 하느냐”고 일침 놓은 뒤, 국세청이 주류업계에 전화를 돌린 게 대표적이다. 국세청 관계자가 전화를 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가 소액주주 수 15만여명에 이르는 상장사라는 사실도 모르는 이가 정부 안에는 적지 않다.
이번 정부에서는 ‘자유 신봉자’인 대통령까지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촉구하자, 공정위는 6개 주요 은행과 3개 통신사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엠비(MB)정부 당시 경쟁법 비전문가인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물가 대책반을 자처하고 나선 것의 복사판이다. 경쟁당국이 독과점과 담합에 맞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정부 안에서나 업계에서나 드물다.
문제는 이런 대응의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치킨값은 23.2%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10.3%)의 2배가 넘는다. 정부의 불공정 거래 조사로 잡힐 치킨값이 아니었던 것이다. 억지로 누른 가격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한다.
정부 개입이 꼭 필요한 분야는 따로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초입인 2020년 정부가 시행한 ‘마스크 5부제’는 일각에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방역 필수품인 마스크 공급을 시장에만 맡기면 지불 능력 있는 사람만 마스크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경기 침체 때 저소득·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해 계층 간 고통 분담과 통합을 유도하는 재분배 정책은 코로나 시기의 마스크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난방비 아끼려고 방에서 장작을 때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한 청년, 어머니가 분유값 벌러 나간 사이 숨진 아이 등은 정부가 꼭 필요한 시장 개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추 부총리가 취임 때만 해도 불필요한 업무 부담을 없애겠다고 했으나 요즘 들어 부쩍 현안 대응 요구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기재부는 이번주에만 비상경제장관회의를 두 번이나 연다. 회의 안건을 보면 별로 ‘비상’하지 않다. 일하는 티만 낼 게 아니라 경기 불황의 음지를 부단히 찾아 대응해야 할 때 아닌가.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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