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4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남양유업은 지난해 86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 전의 두해에도 각각 7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하여 3년 연속 적자 늪에 빠졌다. 경쟁 업체인 매일유업이 이 기간 동안 매출을 키워가며 연 600억~800억원대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대리점 갑질, 여직원 차별대우에 이어 이른바 ‘불가리스 파동’까지 일으키며 대주주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채 소비자 신뢰만 잃어온 결과다. 특히 홍원식 회장 일가가 지난 2021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남양유업의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는 정상 기업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90대 고령인 홍원식 회장 노모가 1986년부터 35년간 비상근 사내이사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보수를 챙겨왔다. 사외이사는 어떨까. “이름만 올렸을 뿐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당시 한 사외이사의 고백은 무용지물 이사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주주 사조직 다름없었던 이사회
지금 이 남양유업의 대주주는 누구일까? 홍 회장은 2021년 5월 지분 전량(53%)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넘기기로 도장을 찍었다 번복하며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양측을 불법 쌍방대리하는 바람에 약속받은 권리들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1심과 항소심에서 패소하였지만 홍 회장은 지난 2일 기어코 대법원에 상고했다. 끝까지 달리겠다는 기세다. 회사 대주주가 홍 회장이라 할 수도, 한앤컴퍼니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이 한앤컴퍼니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이기는 하나,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이변이 일어나면 남양유업은 원점으로 회귀한다. 주주들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세상 사람들이 예상하는 대로 홍 회장이 패소한다 해도 지분을 들고 계속 버틴다면 실제 회사 정상화는 더 늦어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행동주의 펀드들을 운용 중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몇가지 주주제안을 하며
이달 말 주주총회에 앞서 표심 잡기에 나섰다. 제안 내용은 남양유업이 공개매수 방식으로 일반주주 보유 지분의 50%를 매입할 것과 일반주주 추천 감사를 선임할 것 등 네가지다. 나는 이 가운데 주주 추천 감사 선임 가능성에 주목한다. 남양유업은 대주주의 사조직이나 다름없는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이 9년 동안 감사를 맡아왔던 곳이다. 대주주 견제 기능이 작동할 리 없었고, 45%에 이르는 일반주주들의 권리 보호가 안중에 있었을 리 없었다.
앞으로 누가 남양유업의 대주주가 되더라도 일반주주까지 포함한 전체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감사 선임에는 ‘3%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주주들의 뜻이 중요하다. 주주총회에서 상근감사 선임 표결을 할 때 지분 대량 보유자(대주주, 주요주주, 기관투자자 등)는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갑 주식회사(의결권 발행주식 100주)는 대주주 A가 40주, 기관투자자 B가 10주, 일반 소액주주가 50주를 보유하고 있다. 상근감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 행사 가능한 주식 수는 3% 룰에 따라 A 3주, B 3주, 일반 소액주주 50주 등 총 56주가 된다. 유효의결권 지분율로 따지면 A와 B는 각각 5.4%(3/56), 일반 소액주주는 89.3%(50/56)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일반주주 유효 의결지분율이 거의 90%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일반주주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남양유업의 현재 대주주는 홍 회장 일가로, 지분율이 53%다. 차파트너스 지분율은 3%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3% 룰을 대입해보면 주총 유효의결권 지분율 기준으로 홍 회장 일가와 차파트너스는 각각 6.4%가 된다. 일반주주 지분율은 87.2%에 이른다. 차파트너스가 내세운 상근감사 후보(심혜섭 변호사) 선임 여부는 한마디로 일반주주 손에 달려 있다.
차파트너스는 “법정 다툼이 어떻게 끝날지, 한앤컴퍼니가 이긴다면 경영권이 언제쯤 완전히 넘어갈 수 있을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며 “이 기간 동안 계속하여 주주가치는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과거 사례를 보면 한앤컴퍼니 같은 사모펀드들이 경영권을 인수한 후 일반주주를 배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을 한 사례 또한 많다”며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한앤컴퍼니 체제 이후에도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감사의 선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은 남양유업 이사회가 주총 안건으로 채택해야 의안 상정이 가능하다. 주주제안은 상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이사회에서 상정 의결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업들이 주주제안을 거부하는 사례가 꽤 있다. 최근 키스코(KISCO)홀딩스는 소액주주연대가 내놓은 12가지 주주제안(주주환원율 기준 설정, 자사주 매입소각 의무화, 감사위원 후보 선임 등)을 회사 쪽이 모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주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3% 룰 때문에 기업 경영 어렵다고?
202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른바 ‘모범회사법’을 제안하면서 ‘3% 룰’ 폐지를 주장했다. 기업의 자유로운 지배구조 구성에 걸림돌이 되고 해외 투기세력이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경제단체 관계자들은 3% 룰 때문에 경영권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필자는 당시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과거 증권거래법에 3% 룰을 도입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기업의 경영권이 투기세력에 넘어갔어야 했다. 이런 사례가 있는가? 3% 룰 때문에 자유롭게 지배구조를 갖추는 데 애로가 있다 하는데, 대주주 측근으로만 이사진을 구성할 자유를 말하는 것일까?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